삼성 사장단이 올해 받은 강연 48회 분석해보니…

인문학·저성장 해법 찾기·미래성장동력 화두

홈&모바일입력 :2015/12/23 15:59    수정: 2016/01/12 11:08

정현정 기자

올 한 해 악화된 글로벌 경영환경과 숨가쁜 사업구조 재편 속에서 바쁜 일정을 보낸 삼성그룹 사장단이 정호승 시인의 시를 들으며 잠시나마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23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사장단 회의에는 정호승 시인이 강연자로 나서 ‘내 인생의 힘이 되어주는 시(詩)'란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삼성 사장단 회의는 지난 1월 7일 송호근 서울대 교수의 ‘2015년 한국 사회 키워드’를 시작으로 올해 총 48회의 강연을 열었다. 설 연휴(2월 18일)와 여름휴가 기간(7월 29일, 8월 5일)을 제외하고는 매주 빠짐없이 회의가 열렸다. 올해는 저성장 시대 해법 찾기와 미래성장동력 발굴에 초점이 맞춰졌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인문학에서 해답을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주어졌다.

회의는 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해 주제에 대한 강의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강연 주제는 경영 현안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국제, 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울렀다.

지디넷코리아가 삼성 사장단 회의 강연 주제를 분석한 결과 총 48회 강연 중 인문·사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19회로 가장 많았고 경제·경영 12회, 과학·기술 12회, 국제정세 5회 등이 뒤를 이었다.

올해도 역시 강사진은 대학교수들이 주를 이뤘다. 그 외에도 언론인, 시인, 만화가, 바둑기사 등 다양한 외부 인사들이 초청됐다. 분야도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강연자에 포함된 외부 기업인은 '평판사회, 기업경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를 주제로 공동 강연에 나선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와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가 유일했다. 전체 48명의 강사 중 34명이 교수로 가장 많고 유일하게 포함된 기업 대표 역시 위기관리 컨설팅을 주로 하는 업체인 탓에 삼성 사장단 회의가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하는 장이 되기 위해서는 강연자의 외연을 보다 확대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초에는 삼성 내부 인사들이 대거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2월 초 백재봉 삼성안전환경연구소 부사장이 '2015년 그룹 안전환경 추진전략'을 주제로 강연한 것을 시작으로 손영권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SSIC) 사장은 '새로운 도약의 전략 및 방향'을, 전동수 당시 삼성SDS 사장(現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장)이 '그룹 IT 체계 혁신 방안'을 주제로 잇따라 강연을 진행했다.

세부 주제로 보면 경영 현안에 대한 화두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올해는 저성장 시대 해법을 찾기 위한 방안이 주로 모색됐다. 4저(低) 시대의 불확실성 및 글로벌 리스크(서울대 안동현 교수), 저성장 시대 기업의 유통전략(숙명여대 서용구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첫 강연자였던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올해 삼성은 물론 한국사회가 직면하게 될 '3대 메가 트렌드' 중 하나로 저성장을 꼽기도 했다. 강연 영역에 대한 금기도 없는 편이다. 지난 9월에는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진보 경제학자인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대표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과학기술과 관련된 주제는 빈번하게 등장했다. 특히 로봇, 바이오, 사물인터넷(IoT) 사용자경험(UX), 디자인, 디지털 금융, 인공지능 등 삼성의 미래 성장 동력과 관련된 강연들이 많았다. UX로 보는 현재와 미래(연세대 조광수 교수), 디자인이 미래다(KAIST 배상민 교수), 스마트 빅뱅과 비즈니스 모델 변화(연세대 이준기 교수), 금융혁명 : 디지털화폐에 길을 묻다(고려대 인호 교수), 초(超) 연결시대의 성공전략, 매개하라(연세대 임춘성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도 생명과학과 인간의 미래(송기원 연세대 교수)와 바이오산업 전망과 미래 비전(권영근 연세대 교수) 등 IT, 금융과 함께 미래 성장 동력의 3대 축으로 분류되는 바이오 관련 주제도 많이 등장했다. 로봇이나 인공지능관련된 강연도 눈에 띈다. 뇌 과학과 인공지능의 기회와 리스크(KAIST 김대식 교수), 휴머노이드 로봇과 미래(KAIST 오준호 교수), 로봇, 인류의 행복과 동행하나(UCLA 데니스 홍 교수) 등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통일과 남북경험(이화여대 조동호 교수), 최근 중동지역 정세 및 향후 전망(한국외국어대 유달승 교수), 최근 북한 정세(연세대 김용호 교수), 중국 경제 동향 및 전망(서울대 정영록 교수) 등 싱가포르와 한국 - 다른 모델, 비슷한 성공, 그리고 미래(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등 특히 북한과 중국의 최근 정세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강연 외에도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교양 강의들도 적지 않게 진행됐다. 행복한 공동체의 조건(한양여대 김수영 교수), 마음으로 사진 읽기(연세대 신수진 교수), 느리게 걷는 삶(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 등 강연이 눈에 띈다. 바둑 기사 조훈현, 허영만 화백, '태양의 서커스' 공동 창업자인 질 생크로와 등 특이한 이력의 강연자들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 ‘수요회’를 모체로 하는 삼성 수요 사장단 회의는 2010년 이건의 회장의 경영 복귀와 함께 현재와 같은 공부모임 형태를 띄게 됐다. 삼성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사장 직함을 갖고 있는 임원진 50여명이 대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사업부 사장 등 오너 일가는 참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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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은 매주 수요일 아침 8시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모여 약 1시간 동안 초청연사의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과 토론을 진행한다. 삼성 사장단 회의는 공식적으로 경영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자리는 아니지만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모두 모이는 만큼 재계 안팎의 관심을 받는다. 사장단 회의가 열리는 매주 수요일마다 서초사옥 로비가 취재·사진 기자들로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미래전략실에서 담당하는 강의 주제와 강연자 선정에도 삼성그룹의 관심사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올해 수요 사장단 회의를 마친 삼성그룹 사장단은 오는 28일 경기도 용인 인력개발원에서 열리는 최고경영자 세미나로 일정을 마무리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