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1년여가 좀 지난 단말기유통법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단말기유통법을 최초 발의한 당사자인 미래창조과학부·방송통신위원회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부처간 의견조율은 물론 현재 시장 구조에 대한 이해는 물론 소비자 측면에서도 고려되지 못한 주장들이 쏟아지면서 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기획재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2016년 경제정책방향’이다. 내년도 경제활성화 정책을 위한 43페이지 보고서중, 단말기 유통법과 관련해 추가적인 부연설명도 없는 단 두줄의 내용이 발단이 됐다.
기재부는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단말기 유통법 성과를 점검(3월)하고, 지원금을 포함한 전반적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6월)한다”고 밝혔다. 극심한 내수 침체를 만회하고 경제활성화를 위한 자구책인 셈이다.
그러나 이렇듯 일상적인 단말기 유통법 개선 내용이 하루 뒤에는 단말기 할인 지원금 상한액이 두배 가까이 오를 것이라는 익명의 정부 관계자 발언이 나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현재 33만원대인 단말기 지원금 상한선을 두배수준인 70만원대로 확대해 침체된 단말기 내수를 살려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언의 진위를 떠나 논란이 확대되자, 기재부는 통신 산업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와 공동으로 상한액 두배 인상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세 부처는 공동으로 해명자료를 내고 “휴대폰 보조금 상한 인상과 관련해서는 전혀 검토한 바 없다”며 “2016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추진키로 한 단말기 유통법 제도개선 방안은 그간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점검한 후 마련될 예정으로, 현재로서는 구체적 방향이 없다”고 일축했다.
실제 미래부와 방통위는 지원금 상한을 인상하는데에 부정적이다. 통신사들이 현재 33만원의 상한액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최고 상한액만 올려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결국 상한액을 올린다 해도 실제 소비자에 쥐어질 수 있는 금액은 제한적이란 것이다.
특히 정부가 단말기 지원금 대신 내세운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 제도가 시장에서 어느정도 반영되고 있는 만큼, 이를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이미 두 부처는 이해관계 당사자들과 정기적으로 법 개선을 위한 협의회 또는 협의체를 운영해왔다. 이같은 활동으로 얻어지는 제도개선 사항은 향후에 언제든지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자세를 취해왔다.
단말기 유통법 안정화 기조 위에서 통신비 인하 효과라는 정책적 목표를 추진해온 미래부, 방통위 등은 기재부發 단말기 상한액 인상 논란에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일방적으로 여과없이 제기되고 있는 단말기 유통법 개편안이 실제 시장상황 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다는데 있다.
■ 휴대폰 소비 지원이 내수 회복?
전문가들은 단말기 유통법, 특히 지원금 제도를 일부 개선한다고 해서, 휴대폰 소비가 다시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
현재 통신시장에서 신규 단말기 시장이 위축된 것을 단순히 단말기 유통법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통사 한 관계자는 “전세계 스마트폰 판매 증가율도 한자릿수로 떨어질 것이란 조사 결과가 나오고, 특히 우리나라는 이미 스마트폰 포화 시장이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판매량으로 다시 끌어 올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실제 국내에서 이통 서비스에 가입된 스마트폰 대수는 4천300만대에 육박하고 있다. 몇 년 전처럼 신규 스마트폰 구매 수요는 기대하기 어렵고, 교체 수요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내수 경기가 회복되고, 휴대폰 할인 금액이 커져도 스마프톤 소비를 과거 2년전 수준으로 확대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 3년 한시법, 절반이 지난 시점에 '칼질'?
가장 크게 논란이 된 부분은 단말기 지원금 상한 33만원을 70만원까지 끌어올릴 것이란 익명의 정부 관계자 발언이다. 기재부의 발표처럼 연초 소비 둔화 가능성에 대응하고 회복세를 지속시킨다는 목적 아래 내년 6월경 지원금 제도를 개선할 경우 적지 않는 혼란이 예상된다.
단말기 유통법상에 휴대폰 할인 지원금은 출시 15개월이 지난 단말기를 제외하고 통신사가 지급하는 할인 지원금 최대 액수를 33만원으로 정하고, 이를 방통위 소관으로 세부 고시에 담고 있다.
고시는 25만원부터 35만원의 범위 내에서 시장 상황을 판단해 방통위가 정한다. 법 시행 초기 30만원에서 지난 4월 33만원으로 인상했다.
일각의 주장처럼 상한액이 70만원이 되려면 고시를 우선 개정하고, 방통위가 미래부와 함께 시장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지원금 상한은 그냥 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부 소관인 선택약정할인 요금할인율과도 함께 고민해야 할 사항이기 때문이다.
기재부 발표대로 내년 6월에 지원금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당장 시장에 적용해도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지원금 상한 규제는 법 시행일로부터 3년간 효력을 가지는 즉, 3년 일몰제 법이다.
지난해 10월 시행된 이 법은 내년 6월이면 1년하고도 8개월이 지난다. 일이 빠르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남은 1년 4개월을 위해 법을 뜯어 고쳐 시장에 적용하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시장에 이같은 갑작스런 변화는 소비자부터 유통망, 통신사에 이르는 전 생태계에 큰 혼선을 줄 것이다.
■ 포퓰리즘으로 시장 황폐화 시킬까
현재 제기되고 있는 논란들이 비현실적이지만, 그럼에도 일부에서 우려하는 이유는 단말기 유통법 개편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카드로 휘둘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야는 지난 봄부터 이동통신사의 데이터 요금제 도입이 서로 자신의 공이라며 플랜카드 등을 동원한 여론몰이를 하기도 했다. 이동통신은 전국민이 쓰는 보편적인 서비스인 만큼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만큼, 유권자인 이동통신 사용자들에 기대기 위한 것이다.
이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정부 행정당국에 압박을 가하는 모습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말기 유통법만 하더라도 기존에 논의되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 특별법 제정으로 방향을 잡고 이를 제정하기 까지 몇년이 걸렸다. 제조사와 통신사의 갈등부터 유통과 소비자의 반발을 거쳐 시행 된 이후에도 위약금 제도 등 추가로 손을 본 것이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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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입법 당시의 정책적 목표를 달성했는가는 일부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단말기 유통법이 시장에 안착해 시행 초기보다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문이다. 이를 무시하고, 자칫 정치논리에 휘말려 고민과 철학없는 정책으로 이어지면 단말기 유통법 초기보다 더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가계통신비 인하를 주된 골자로 통신 정책을 이끌어왔는데, 돌연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성과를 구체화 한다면서 소비를 늘리는 정책으로 갑자기 선회할 수는 없다”며 “규제산업이지만, 시장 위축을 막아야 하는 정부의 고민은 있지만 이번 논란은 시장 현실도 소비자들의 입장도 반영하지 못했다”고 질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