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전대표 기소 法 형평성 논란 커져

"매개자 아닌 게시자 처벌 마닐라원칙 따라야"

인터넷입력 :2015/11/05 10:23    수정: 2015/11/05 15:40

검찰이 모호한 법적 기준으로 이석우 카카오 전 공동대표를 불구속 기소하자 여러 의문과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정보매개자에 무리한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전문가들의 지적과 함께 수사당국이 법적 형평성, 명확성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카카오가 서비스 하는 폐쇄형 SNS '카카오그룹‘에서 음란물 유통을 방치한 혐의로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를 기소했다.

이 전 대표가 카카오 재직 당시 미성년자들이 모인 카카오그룹 서비스에서 음란물이 공유되고 있음에도 이를 전송 제한, 삭제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측 주장이다.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가 정보통신망에서 아동 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한 적절한 기술적 조처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3년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을 물도록 돼 있다.

이석우 카카오 전 대표.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 회사 아닌 개인?

검찰은 해당 법률을 토대로 회사가 아닌 이석우 전 대표를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로 규정했다. 서비스 제공자를 ‘회사’가 아닌 ‘개인’으로 봄으로써, 음란물 유통에 대한 책임까지 개인에게 물은 것이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판단으로, 이 전 대표를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로 볼 수 있는지가 1차적으로 법원 판결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번 검찰 기소에 문제는 또 있다. 법에서는 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한 ‘적절한’ 기술적 조처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적절한 기술적 조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법에 규정돼 있지 않아 잣대에 따라 상이한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카카오 등 인터넷 업계에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를 요구해 왔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은 여전히 나오지 않은 상태다.

어떤 행위가 법에서 금지되고 그 행위에 대해 어떤 형벌이 부과되는지를 명확하게 예측 가능하도록, '법의 명확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적절할 기술적 조치'라는 애매모호한 규정을 들이대, 처벌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그룹의 음란물 유통 방지를 위해 성인 키워드를 금칙어로 설정, 해당 단어를 포함한 그룹방 이름이나 파일을 공유할 수 없도록 사전적 조치를 취해왔다. 또 이용자 신고 시 해당 이용자의 서비스 이용제한, 중지와 같은 후속조치를 통해 유해정보 노출을 차단해 왔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 같은 카카오의 조치가 적절한 기술적 조처 기준에 미흡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 서울중앙지검 (지디넷코리아)

■정당한 수사 vs 보복성 수사

부실한 법적 기준을 토대로 무리한 수사가 진행되고, 검찰이 음란물 방치라는 혐의를 씌워 이 전 대표를 법원에 넘김으로써 감청 불응에 따른 보복수사라는 의혹은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이석우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처벌을 받더라도 수사기관의 감청에 불응하겠다”고 밝혀 검찰 등 수사당국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같은 갈등은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해외 원정 도박설, 이석우 전 대표의 불구속 기소로 이어지며 보복성 수사의혹에 더 무게를 싣게하고 있다.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비정기적인 세무조사 역시 카카오를 겨냥한 정부의 압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검찰이 이번 기소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외산 SNS 플랫폼은 물론, 최근 음란물 방송으로 계속된 물의를 빚고 있는 아프리카TV 등으로 전방위로 수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가 선다.

이들 업체의 각사 대표들에 대한 소환 조사와 기소도 똑같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현재 핵심 서버를 해외에 뒀다는 이유로 관리 감독이 허술한 외산 플랫폼이야말로 오히려 음란물 유통이 가장 심각한 곳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기소와 함께 법 적용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10월 수사기관의 감청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석우 전 카카오 공동대표.

■“정보매개자책임에 관한 마닐라원칙 따라야”

인터넷 전문가들은 이번 검찰의 판단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보인권단체인 전자프런티어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EFF)은 지난 6월 ‘정보매개자책임에 관한 마닐라원칙’ 한글 사이트를 오픈하고 정보매개자 책임에 관한 마닐라원칙과 국내 법령의 수정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마닐라원칙의 핵심은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정보매개자에게 제3자 콘텐츠 정보에 대한 책임을 법적으로 부과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설사 인터넷에 명예훼손 글이나 불법 정보들이 게재되더라도 이 책임을 정보매개자가 아닌, 게시자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카카오그룹 음란물 유통 사건에 적용시키면 카카오나 이석우 전 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이를 유통 시킨 게시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시 방한한 제레미 말콤 EFF 선임 국제정책 담당관은 “위험을 피하려는 회사 특성상 조금이라도 콘텐츠를 검열할 동기가 부여되면 우려되는 게시물을 삭제, 차단할 것”이라며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기업에 면책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마닐라 원칙에 근거해 한국법이 개정돼야 세계적인 기준에 부합하게 된다”면서 “불법 판단을 받지 않은 콘텐츠를 삭제 또는 차단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거나, 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불법 콘텐츠를 찾도록 요구하는 것들은 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박 교수는 “진정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매체가 인터넷”이라며 “마닐라원칙의 목적은 정보매개자들이 불법 콘텐츠 모니터링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법적으로 의무화 하거나 강제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카카오측은 이번 검찰의 기소결정이 부당하다는 입장과 함께, 무죄 판결을 위해 법적 대응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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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관계자는 “현재 음란물 유통을 막기 위해 기업이 취해야 할 사전적 기술 조치와 관련한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실정"이라면서 “폐쇄형 서비스의 경우, 금칙어 설정과 이용자 신고 이외에 기업이 직접 모니터링 하는 것은 이용자 사생활 보호를 침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전직 대표 개인을 기소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카카오측은 “최종 판단은 법원에서 결정되겠지만, 카카오는 법적 대응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