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정보화 사업 발주제도 확 바꿔야"

용역 중심보다 민간 참여 모델 등 고민해야

컴퓨팅입력 :2015/10/28 17:07    수정: 2015/10/28 17:46

황치규 기자

"지금처럼 시스템통합(SI) 구축 중심의 발주 체계에 집중하는건 무리가 있다. 패러다임 전환에 부합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클라우드와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새로운 IT 패러다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SI 구축 중심의 공공 정보화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각론을 놓고선 갑론을박이 있지만 큰틀에선 달라진 패러다임이 정부 제도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 관계자들 다수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에는 SI 구축 중심의 공공 발주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김진형 SW정책연구소장은 "클라우드 등 IT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도 한국 공공 발주는 정부가 SW를 소유하고 책임지는 용역 기반 SI 방식이 여전히 대부분"이라며 "이는 글로벌 IT트렌드와 거리가 멀고, 혁신을 이루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공 정보화 시장, 장기 침체 우려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에는 답보 상태에 빠진 공공 정보화 시장의 현실과 무관치 않다. 원인에 대한 인식은 제각각일 수 있지만 공공 정보화 시장이 침체되고 있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국내 공공 정보화 시장은 대략 3조5천억원 규모다. 이런 가운데 신규 사업 규모는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이다. 신규 발주 규모가 연간 1조원 밑으로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제값받기 힘든 구조가 여전한 상황에서 발주 물량 자체가 줄고 있으니, 공공 정보화 시장에서 뛰는 업체들의 채산성 악화는 당연한 수순이란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국SW정책연구소 유재홍 선임 연구원은 "공공 정보화 시장이 유지보수 중심으로 사업 예산이 편성되다보니, 시장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17개 IT서비스 업체들의 영업 수익성이 3.75% 미만인 상황이고, 매출 50억원 이하 기업이 전체의 76%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업계는 정부의 세수 부족을 감안할 때 신규 공공 정보화 예산은 줄었으면 줄었지 더 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가 없다는 것도 최근 공공 정보화 시장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예산이 부족하다보니 공공기관들은 리스크가 큰 사업을 추진하는데 점점 소극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전자정부 분야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4~5년을 보면 국가 정보화 사업에서 전자정부쪽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슈를 이끌어 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럴만한 역량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공공 서비스 품질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스마트폰 시대, 뛰어난 UX를 갖춘 민간 서비스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에게 지금의 공공 웹서비스는 한물 간 서비스로 비춰진다는 지적이 많다. 꼭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공공 웹서비스를 자주 쓰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기자도 만나는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쓰는 공공 웹서비스나 모바일 앱이 있느냐?"고 자주 묻지만 그렇다는 대답을 들은 적이 없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공기관 홈페이지는 1만2988개, 앱은 1222개가 운영되고 있다. 행자부는 이 가운데 방문자 수가 한 달에 5천명이 안 될 정도로 이용률이 저조하거나 기능이 중복되는 홈페이지 456개를 올해 안에 폐지하고 3천726개는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통합하기로 했다.

■"제도 개선해 문제 풀어보자"

김진형 SW정책연구소장의 지적대로 국내 공공 정보화 시장은 정부가 주도하는 용역 중심의 SI 사업이 대부분이다. 또 SW산업진흥법에 따라 대기업 계열 IT업체는 공공 정보화 시장 참여가 제한된다. 현행 SW산업진흥법은 정부 공공정보화사업에 참여하는 IT서비스 업체를 매출액으로 구분해 참여토록 하고 있다. 매출액 8천억원을 기준점으로 삼아 8천억원 이상 대기업은 80억원 이하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8천억원 이하 대기업은 40억원 이하 규모의 사업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40억원 이하 사업은 중소기업(종업원수 300명 이하)만이 참여할 수 있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들은 이러한 기준과 상관 없이 참여 자체가 제한된다. 이에 따라 삼성SDS, LG CNS, SK C&C, 포스코ICT 등은 공공정보화 사업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공공 정보화 제도 개선의 목소리도 SW진흥법과 정부 발주 방식에 초점이 맞춰진다. SW진흥법 관련 부분은 대기업 참여를 원천 봉쇄하는 것보다는 중소 기업과의 상생을 조건으로 법을 개정해 시장의 파이를 키우자는 것이 핵심이다. 대기업이 나서면 아무래도 공공기관들이 대형 사업을 추진하는데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현재 시점에선 일부 학계와 일부 공공 시장 진입을 원하는 대기업들이 SW진흥법 개정 논의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SW진흥법을 개정은 업계에서 워낙 예민한 사안이라 공론화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개정 논의 자체를 불편해 하고, 개정을 둘러싼 대기업과 중견 IT서비스 업체, 그리고 중소 SW업체들 간 이해관계도 엇갈려 있다. SW산업진흥법이 개정된지 2년여밖에 안된 만큼, 대기업이 빠져서 공공 정보화 시장에 침체됐다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반면 발주 방식 개선 목소리는 대기업 참여 제한 여부를 벗어나 공공 정보화 발주 방식을 다양화하자는 것이 기본틀이다. SI 구축에 초점이 맞춰진 발주 제도를 개선해 다양한 발주 스타일을 필요와 상황에 따라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필요하면 민간 기업들과의 합작 사업 또는 민간이 인프라를 구축하고 정부는 이를 임대해 쓰는 방식도 적용하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서는대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나름 공감대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김진형 SW정책연구소장은 "대기업 참여 제한은 기업 크기에 기반한 참여 규제론인데, 이걸로는 생태계 혁신이 없다"면서 "민간 참여 서비스 모델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 정부도 공공 정보화 사업에 민간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 김숙경 동국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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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의 경우 재정압박, IT투자 비효율성 해결, 기민성 확보, 산업 발전 측면에서 민간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민간에서 만든 서비스를 빌려 쓸 수 있는 IT/SW 구매 플랫폼도 구축했다. 미국도 오바바 케어 같은 혼란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연방 IT조달 개혁법을 추진중이다.

발주 제도 개선 논의는 자연스럽게 대기업 참여 이슈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민간 참여 서비스 모델을 추진할만한 회사는 현실적으로 대기업 뿐이기 때문이다. 민간 참여 서비스 모델 도입을 위해 SW산업진흥법을 개정하자고 할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결렬한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행 제도 하에서도 발주 제도 다양화는 가능해 보인다. 한 관계자는 "SW산업진흥법을 개정하지 않고 민간투자활성화법에 SW를 포함시키거나 클라우드 발전법을 활용하면 적용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