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정보화 사업에 대기업 참여 제한을 골자로 하는 SW진흥법을 개정은 SW업계에서 쉽게 꺼내기 힘든 예민한 이슈다.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개정 논의 자체를 불편해 하고, 개정을 둘러싼 대기업과 중견 IT서비스 업체, 그리고 중소 SW업체들 간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엇갈려 있다. 파고들면 대기업 간 속마음도 각양각색이다.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SW산업진흥법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괜히 말했다가 뜨거운 논쟁의 불쏘시개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지금의 분위기다.
그럼에도 개정을 둘러싼 논란은 알게 모르게 물밑에서 확산 중이다.
한국경영정보학회(회장 이호근 연세대 교수)는 8월초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 실효성 연구 발표회'를 갖고 대기업 참여를 제안한 법 개정 이후 중견 중소 SW업체들의 생산성은 오히려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SW산업협회 관계자는 "현상만 보면 SW생태계 상황은 예전에도 나빴고 지금도 그런데, 이게 대기업 참여 제한 때문에 나빠진 것이냐에 대해서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맞불을 놨다. 이 관계자는 또 "법개정 때부터 1~2년 사이에서 효과가 나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란은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의원은 대기업은 물론 중견 IT서비스 업체도 공공 사업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까지 내놨다. 이같은 상황에서 다양한 SW산업 현안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해온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김진형 소장의 의견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를 만나 SW산업진흥법 개정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SW산업진흥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의 틀이 너무 좁아요. 대기업 참여시키고 말고를 넘어 SI 중심의 용역에 집중된 발주 구조를 확 뜯어 고치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야 공공 IT서비스 질을 개선하고 생태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봐요."
김진형 소장은 대기업 참여에 초점이 맞춰진 SW산업진흥법 개정 논의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두자는 쪽에도 부정적이다. 대기업이 빠져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대기업 참여 제한 이후 SW생태계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는 이유에서다. 김 소장은 상황이 이러니 무턱대고 옛날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라고 못밖았다.
"IT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IT를 도입하는 프로세스는 그동안 내부에서 직접 개발하는 이른바 인하우스(In house), 이후 용역을 주는 SI 개발 형태로 발전했다가 요즘은 이미 개발된 패키지 SW를 쓰거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특히 큰 변화가 클라우드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공공 발주는 여전히 용역 기반 SI가 대부분입니다. 정부가 SW를 소유하고 책임도 지는거죠. 이건 글로벌 IT트렌드와는 거리가 멉니다. 영국은 정부를 위한 SW마켓플레이스까지 있어요. 민관 합작으로 만든 겁니다. 대기업 참여 제한은 기업 크기에 기반한 참여 규제론인데, 이걸로는 생태계 혁신이 없다고 봐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용역 중심 SI구조를 넘어 정부 사업 발주 모델을 다양화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IT가 필요하면 요구사항을 제대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지, 굳이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가 있을까요? 필요하면 서비스도 빌려 쓸 수 있어야죠. 용역 구축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혁신해야겠다는 동기도 사라집니다. 국토부 콜택시 서비스를 보세요. 카카오 택시보다 잘 나갈 수 있을까요?"
국토교통부는 2013년부터 6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콜택시 통합관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국적으로 1200여개에 달하는 콜택시 번호를 '1333'으로 통합·운영하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김진형 소장은 정부 IT사업이 이런식으로 진행되면 곤란한다고 강조한다. 혼자해서도 잘하면 상관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민간 서비스들과 수준 차이가 점점 벌어지면서 이대로 가다간 공공 웹서비스가 사람들이 쓰지 않는 외로운 섬과 같은 존재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진형 소장이 대안으로 정부의 변화를 요구하는 이유다.
정부 주도형 용역 외에 어떤 발주 모델이 있을까? 구축식 용역 외에도 임대, 위탁 용역, 임대형 민간 투자 사업인 BTL(Build-Transfer-Lease), 민간 자본투자, 조인트벤처 등 다양한 모델이 나와 있다. 정부 상황과 사업 성격에 따라 적합한 모델을 활용해야 한다는 게 김 소장의 생각이다. 특히 그는 BTL을 주목했다.
BTL은 민간 자본으로 IT시스템을 만들고 정부는 그걸 임대해 쓰는 방식이다.
"BTL의 경우 부족한 정부 재정은 물론 혁신 측면에서도 유용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이미 이렇게 하고 있고 미국도 관련 법이 통과됐어요. 강조하고 싶은건 SW생태계 발전을 위해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SW를 소유만 하려하지 말고 라이선스해서 쓰거나 필요하다면 민간 자본을 투자받을 수도 있어요. 정부 주도형 발주 모델을 벗어나 민간 참여형 서비스 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구축 중심의 계약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임대나 위탁이 혁신 측면에선 잠재력이 상대적으로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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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참여 서비스 모델은 자연스럽게 대기업 참여 이슈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민간 참여 서비스 모델을 추진할만한 회사는 현실적으로 대기업 뿐이기 때문이다. 김진형 소장은 조심스럽게 현행 SW산업진흥법에 명시된 참여 제한의 조건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기업 참여 시 중소 기업과의 상생을 요구하는 방안도 추진해 볼만 하다고 했다.
한국SW정책연구소는 현재 민간 참여 서비스 기반 발주 모델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중이다. 10월초 초안을 내놓고 10월말에는 토론회도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