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폭로엔 왜 자유의 냄새가 나는걸까

[신간소개] 내부 고발자들, 위험한 폭로

인터넷입력 :2015/09/11 18:18    수정: 2015/09/12 09:3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스>에 엄청난 폭로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엔 미국이 베트남전쟁 참전의 구실로 내세운 ‘통킹만 사건’이 사실은 조작된 것이란 내용을 비롯해 어마어마한 비밀이 담겨 있었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훗날 ‘펜타곤 문서’로 널리 알려진 비밀 문건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었다. 이 문건은 분량만 7천 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었다.

‘펜타곤 문서’를 유출한 대니얼 엘스버그 박사는 이 문건을 비밀리에 복사하는 데만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아날로그 시대였던 만큼 비밀을 폭로하는 데 걸린 시간도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그로부터 약 40년 뒤인 2010년엔 또 다시 초대형 폭로가 뒤따랐다. 이라크 참전 중이던 브래들리 매닝 일병이 기밀 문서 약 70만 건을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넘겨줬다. 이 문건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되면서 미군이 이라크에서 저지른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하지만 매닝이 미군의 비밀 문건을 폭로하는 과정은 믿기 힘들 정도로 간단했다. 불과 몇 분만에 CD에 담는 것으로 모든 작업이 끝났다. 엘스버그가 1년 여에 걸쳐 완성했던 국방부 비밀 문건을 복사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란 말조차 어색할 정도였다.

<와이어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앤디 그린버그가 쓴 <내부 고발자들, 위험한 폭로>는 해킹과 암호화 기술로 세상의 정보를 가로챈 이들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 1970년대 펜타곤 문서 폭로와도 깊은 연관

이 책은 폭로 저널리즘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위키리크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위키리크스는 어느날 혜성처럼 등장한 사이트였다. 줄리언 어산지라는 백발의 호주인이 설립했다는 사실 외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위키리크스가 한 엉뚱한 사람의 일탈이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저자는 곧바로 위키리크스 얘기로 들어가지 않는다. 폭로 저널리즘의 원조나 다름 없는 1970년대 펜타곤 문서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들을 중심으로 하면서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개발된 현대적 암호화 기술을 비롯해 1990년대를 달군 해커 집단 사이퍼펑크, 그리고 사이퍼펑크를 보고 자라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커가 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 등을 무대에 등장시킨다. 폭로의 역사를 이끌어온 산증인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자취를 돌이켜본다.

이 책은 많은 등장 인물들을 정교하게 연결해놓고 있다. 이를테면 초반부엔 엘스버그 박사가 펜타곤 문서를 폭로하는 과정과 매닝 일병이 위키리크스에 기밀 정보를 넘기는 과정이 교차 편집돼 있다. 언뜻 보면 폭로란 점 외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인물. 하지만 엘스버그 박사는 매닝이 체포된 뒤 10개월 뒤인 2011년 3월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인다. 매닝을 비인간적으로 감금하는 데 반대하는 시위였다.

당시 79세였던 엘스버그가 CNN 기자와 인터뷰에서 “내가 바로 저 젊은이였소. 내가 브래들리 매닝이었단 말이오.”라고 외친다.

2장에선 갑자기 인텔 초기 멤버였던 팀 메이 얘기가 나온다. 메이가 인텔에서 활약하던 시절을 다룬 짧은 얘기 뒤엔 그가 1992년 에릭 휴즈, 존 길모어 등과 함께 해커 집단 ‘사이퍼펑크(cypherpunk)’를 결성하는 얘기로 이어진다. 이들은 동료 해커들과 온라인에서 암호화 기술에 대한 정보와 생각을 나눴다.

갑자기 사이퍼펑크 얘기는 왜 나올까? 그 무렵 지구 반대편 호주 멜버른에는 사이퍼펑크의 메일링 리스트를 기웃거리며 해커의 꿈을 키우던 소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위키리크스를 만든 줄리언 어산지였다.

■ "가면을 주어라, 그러면 진실을 말할 것이다."

이런 얼개로 구성된 는 장점이 많은 책이다. 대중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경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정보를 감추려는 자와 널리 알리려는 자 사이의 숨바꼭질을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한 편의 첩보 영화를 보는 듯한 리얼한 서사 구조로 구성돼 있어 독자들이 쉽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단순한 폭로 역사가 아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왜 그토록 ‘폭로’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아울러 그들이 어떤 철학을 갖고 움직였는지를 조리 있게 설명해준다는 점이 더 매력적이다.

위키리크스 창업자인 줄리언 어산지의 다음과 같은 말 속에 이들의 철학적 기반이 담겨 있다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관련기사

“가면을 씌워 주어라. 그러면 진실을 말할 것이다.” (202쪽)

(앤디 그린버그 지음/ 권혜정 옮김, 에이콘 2만원)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