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승용차에 대한 취득세 부활 여부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올해 12월 31일로 일몰 예정인 '지방세특례제한법(제67조) 상 경차에 대한 취득세 면제' 조항을 연장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진 것이 단초가 됐다.
주무부서인 행정자치부가 부랴부랴 '검토 중이나 결정된 바 없다'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경차에 대한 세제 혜택의 연장 여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이 기본적으로 조세 감면 철폐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몰 시점인 연말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경차의 가장 큰 혜택 중 하나인 취득세 면제는 정부의 검토 여부를 떠나 사안 그 자체만으로 비난 여론에 직면해 있다.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기 위한 서민 증세라는 지적이다. 고가의 법인차량 세제 혜택과 맞물려 조세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온다.
자동차 업계 역시 좌불안석이다. 국내 완성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경차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경차 취득세의 부활은 경차 판매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체 입장에서 경차는 마진 폭이 크지 않은 차종의 특성상 많이 팔아야 수익이 늘어난다. 만약 경차 취득세가 부활될 경우 구매자들은 차량 가격의 4%에 해당하는 취득세를 부담해야 한다. 국내 경차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약 40만~60만원 정도를 더 내야 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취득세 액수의 많고 적고를 떠나 경차의 주요 구매층인 서민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기업 입장에서도 판매 감소를 우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기아차 모닝·한국GM 스파크 타격 불가피
29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와 에너지관리공단 등에 따르면 2001년 8만2천대에 불과했던 국내 경차 판매량은 지난해 18만7천대까지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 자동차 총 판매량 중 차지하는 비중도 약 12%에 달한다.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배기량 1천cc 미만 경차는 기아자동차 모닝과 레이, 한국GM 스파크 등 총 세 가지다. 특히 모닝과 스파크는 각 업체에서 판매고가 가장 높은 차종이다.
기아차는 지난해 모닝 국내시장 판매량은 9만6천89대다. 2008년부터 7년째 경차 판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작년 국내에서 판매된 기아차 차량 46만5천200대 중 20%를 모닝이 담당했다. 레이의 작년 판매량(3만113대)까지 합하면 내수 판매의 약 3분의 1을 경차가 견인한 셈이다.
기아차는 특히 내년 상반기께 풀체인지(완전변경)된 '신형 모닝'을 선보일 계획인 만큼, 경차의 세제 혜택 연장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상품성 강화에 따른 가격 인상 폭이 불가피하지만 만약 경차의 세제 혜택이 중단될 경우 가격 책정을 놓고 고심에 빠지게 된다.
한국GM은 지난해 내수 판매량(15만4천381대) 중 약 40%(6만5천대)가 스파크다. 내달 3일 신형 스파크의 본격적인 판매도 앞두고 있다. 내년 경차 취득세 면제가 없어질 경우 지속적인 판매 확대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경차에 취득세가 다시 매겨질 경우 연간 판매 감소 폭이 약 15%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취득세 면제 혜택이 처음 도입됐을 당시 경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4.8% 늘어난 바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취득세는 연장 기한이 다가올 때마다 논란이 돼왔다"며 "정부의 정책 결정에 딱히 기업 입장에서 언급할 것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만약 경차의 세제 혜택이 사라질 경우 고객의 상당수가 서민층인 만큼 모닝은 물론 경차시장 자체의 축소가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시대에 뒤떨어진 '경차 기준' 확대돼야
업계 일각에서는 현실과 맞지 않는 경차의 기준을 확대, 궁극적으로 시장 경쟁을 활성화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의 2004년 경차보급 활성화 대책의 배경은 가격(소비 합리화)과 효율성(에너지 절약), 친환경성(온실가스 감축) 등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의 경차는 사실상 메리트를 잃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가격 측면을 봐도 레이와 모닝, 신형 스파크의 최고가는 각각 1천574만원과 1천455만원, 1천499만원으로 국산 준중형 승용차와 큰 차이가 없다. 현대차 '아반떼'와 기아차 'K3', 한국GM '크루즈'의 가격대는 각각 1천410만원, 1천403만원, 1천750만원부터 시작된다. 디자인과 성능, 편의·안전사양 등이 예전보다 크게 향상된 점을 감안해도 '경제적인 차'의 범주에 집어넣기에는 다소 억지스럽게 보인다.
소비자들은 보다 성능 좋은 경차를 원하고 이에 따라 상품성을 개선시키다 보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제조사들의 입장이다.
효율성 측면에서도 크게 이득이 없다. 시중에 팔리고 있는 국산 차종의 연료효율 순위 10위권에 경차는 찾아볼 수 없다. 디젤 엔진을 장착한 배기량 1.6리터 이하의 준중형·소형 차량들이 대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경차의 경우 성능이나 가격대가 이미 '무늬만 경차'"라며 "현행 경차 기준을 확대해 기아차와 한국GM이 양분하고 있는 시장 경쟁을 활성화시키면 소비자 선택 폭은 물론 가격 억제와 효율 경쟁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에서 경차로 분류된 차량에는 취득세와 등록세가 면제되고 통행료, 보험료 등에서 할인 혜택을 받는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기준은 규격이다. 현재 국내에서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상 경차로 분류되려면 배기량 1천cc 미만으로 차체가 전장 3.6m, 전폭 1.6m, 전고 2m 이하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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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르노 트윙고는 너비가 국내 기준보다 4cm가량 넓어 르노삼성자동차가 국내 수입을 포기했다. FCA코리아 역시 피아트 친퀘첸토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국내에서는 경차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알고 900㏄ 모델 대신 아예 1천400㏄ 모델을 소형차로 들여오기도 했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경차 기준을 포함한 분류기준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