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중견기업 사장 정씨는 아내와 자녀들에게까지 회사 임원 직함을 주고 법인 명의로 수억원을 호가하는 고가 수입차량을 3대 보유하고 있다. 업무용차 리스 금액은 전액 경비 처리된다. 정씨 입장에서는 같은 차급의 저렴한 국산차보다 수입 리스차를 사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훨씬 저렴한 셈이다.
대당 2억원을 넘어서는 고가 수입차를 업무용으로 구매, 탈세 꼼수로 악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 명의로 구입해놓고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면서 리스 비용이나 세금 등을 법인 경비로 처리해 세금을 탈루하는 것이다.
현행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에 따르면 사업자의 업무용 차량에 한해 차 값뿐만 아니라 취득세, 자동차세와 보험료, 유류비 등 유지비까지 전액 무제한으로 경비처리가 가능하다. 경비처리 금액이 늘어날수록 소득세와 법인세는 줄어들게 돼 탈세를 위한 방법으로 악용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지난 2011년 담철곤 당시 오리온그룹 회장 부부가 위장 계열사를 통해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포르쉐 카레라 GT, 메르세데스-벤츠 CL500 등 고급 수입차 3대를 리스해 자녀 통학용 등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처럼 개인사업자는 물론 대기업 오너들이나 고위 임원들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회사 돈으로 고급 차량을 구입하거나 리스해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접대용으로 사용하는 일이 관행처럼 여겨저 온 것이 현실이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는 무분별한 세제혜택을 줄여 이같은 부작용을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와 현대·기아자동차 등을 대상으로 정보공개 요청을 통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차 전체 판매량 19만6천359대 가운데 업무용 판매는 7만8천999대로 40%를 차지했다. 특히 2억원 이상 35종의 고가 수입차는 1만353대가 판매됐는데, 이중 업무용 구입이 1만183대(87.4%)에 달했다.
차종별로는 5억9천만원인 롤스로이스 팬텀의 경우 판매된 5대 모두 사업자의 업무용 구입으로 나타났다. 4억7천만원의 벤틀리 뮬산도 6대 모두 업무용으로 판매됐고 4억1천만원인 롤스로이스 고스트도 28대 모두 사업자가 구매했다.
총 판매금액에서 사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롤스로이스(97.9%)가 가장 높았고 이어 벤틀리 (84.8%), 포르쉐(76.5%) 등의 순이었다. 벤츠 (63.6%), 아우디(53.4%), BMW(51%) 역시 판매 차량의 절반 이상이 사업자가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산차 가운데 유일하게 자료를 공개한 현대·기아차의 경우 5천만원 이상인 에쿠스, K9, 제네시스의 판매량 4만9천602대 중 2만6천721대(53.9%)가 업무용으로 팔렸다.
고가차량의 사업자 판매가 다수를 차지하는 이유는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에 따라 차량 구입비부터 취득세·자동차세·보험료·유류비 등 유지비용까지 전액 무제한으로 경비처리가 가능해 세제 감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것은 고가의 차량을 업무용으로 구매한 뒤 사적으로 활용하면서 세제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일부 수입차 브랜드의 경우 세제혜택과 구매 리베이트 등을 내세워 판촉에 나서기도 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업무용 차량에 대한 과도한 세제혜택은 개인용으로 차를 구매하는 일반 소비자들과 비교할 때 조세형평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실련 권태환 간사는 "정부가 시민들의 혈세로 사업자들 차량가격 대신 내주는 셈"이라며 "심각한 조세형평성 훼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결국 과도한 고가 수입차 판매는 업무용으로 무용하나, 세제혜택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개인사업자들과 법인의 구매가 급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실련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차 BMW 520d(6천390만원)와 국산차 제네시스 330 프리미엄을 구입한 개인소비자들은 2만2천883명으로 5년간 취득세와 자동차세 등을 통해 약 4천700억원의 세금을 냈다. 반면 개인·법인사업자 구매는 총 2만446대로 약 6천300억원의 세금을 면제받았다.
자동차업계 전체로 보면 지난해 수입차 510종과 국산차 3종 등 10만5천720대의 총 판매금액 7조4천700억원에 달하는 차량이 업무용으로 사업자에게 판매됐다. 연간 약 1조4942억원씩 5년에 걸쳐 7조4700억원 모두를 경비처리 할 수 있으며 결국 이로 인해 차량 구입으로만 연간 약 4천930억원, 5년간 2조4천651억원의 세제 해택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차량 구입가격 3천만원을 기준으로 이를 초과한 금액에 대해서는 경비처리를 제한하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경실련 측 주장이다. 경실련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법인세법 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 입법청원할 예정이다.
경실련이 도입 모델로 삼은 캐나다의 경우 3만 캐나다달러(약 2천684만원)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경비처리가 불가능하다. 미국은 차량값이 1만8천500달러(약 2천만원)를 넘으면 세금 공제를 차등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일본도 300만엔(약 2천600만원)까지만 업무용 차량으로 비용처리를 해 줄 수 있다.
관련기사
- 수입차 잡는다더니...안방서 맥 못추는 국산 대형세단2015.07.08
- 상반기 수입차 판매 역대 최대...점유율 15.2%2015.07.08
- 실적부진-품질경영 악재...현대차 "안 풀리네"2015.07.08
- 펄펄 나는 수입차...하반기 국산 신차 通할까2015.07.08
정치권에서도 움직임이 감지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김동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업무용 차량 구입 세금 공제에 제한을 두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구입·리스·렌트 승용차에 대한 법인세법상 필요경비 인정액을 3천만원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지난 2007년 법인세법 개정안 등 법인 명의 로 구매한 업무용 승용차를 사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접대비 등 사업에 필요한 경비는 인정하면서 승용차만 따로 제한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정치권 내 반대 목소리에 부딪혀 불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