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법적 공방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양상으로 시작됐다. 삼성물산은 엘리엇의 합병 제동 목적을 단기적 차익을 취하려는 투기 행위로 규정했으며, 엘리엇은 철저히 오너 일가의 승계를 목적으로 합병이 추진되고 있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판사 김용대)는 19일 오전 11시 엘리엇이 제기한 총회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과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 대한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심문기일에서 삼성물산과 엘리엇의 법률대리인으로 나선 김앤장과 넥서스는 약 1시간 30분 동안 합병비율 산정과 합병 추진 목적, 자사주 매각 등 쟁점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엘리엇 “불공정한 합병 무효” vs 삼성 “합법적인 절차”
엘리엇은 이날 삼성물산을 겨냥해 지나치게 불공정하게 산정된 합병비율을 문제 삼아 합병 결의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양사 간 합병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추진됐다고 반박했다.
엘리엇 측 법률대리인인 넥서스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식 가치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1.16 : 1 수준으로 최소한 제일모직 주식의 1배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1 : 0.35로 불리하게 정해진 비율로 합병이 이뤄진다면 삼성물산 주주들은 원래 가치의 18~22% 정도에 불과한 제일모직 주식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불공정한 합병비율은 향후 합병 무효의 소송 원인이 되고 소가 제기되면 합병 무효로 귀결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면서 “이는 주주를 비롯한 이해 관계인들에게 많은 혼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합병을 중지시켜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 대리인 김앤장은 “합병비율과 관련해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하도록 한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병비율을 산정했다”면서 “주가는 복잡하고 많은 요소들로 형성되는 것으로 엘리엇 측이 주장하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가 과소·과대 평가됐다는 주장은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또 “무엇보다 주주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주주들의 정당한 의결권 행사 기회를 원천봉쇄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엘리엇 “지배권 승계 목적 아닌가?” 삼성 “시나리오 쓰지 말라”
특히 이날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삼성 오너 일가의 지배권을 공고히 하고 3세 승계를 원활히 하려는 목적만을 위해 추진되고 있다고 정면 공격했다.
넥서스는 “합병은 삼성물산 자체의 이익이 아닌 소위 오너일가의 지배권 승계를 원활히 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특히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언젠가는 전부 처분해야하는 상황에서 오너일가는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4.1%는 어떤 형태로든 확보해야만 하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제일모직 주가가 과대평가 된 이유에 대해서도 “제일모직은 대주주인 오너 일가가 50%가 넘는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제일모직의 주가는 실제 가치를 반영했다기 보다 지배권 승계와 관련돼 오너들이 주가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은 “엘리엇이 시나리오와 추측에 의지한 주장을 하고 있다”면서 “이는 언론의 관심을 끌 수는 있겠지만 법적인 변론과는 무관하다”고 응수했다.
또 “엘리엇은 지난 3일 주주제안서를 내 주식자산 일부 등 전부를 현 주주에 현물배당하자고 했는데 이는 주식자산을 다 빼서 삼성물산을 껍데기로 만들자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엘리엇은 회사의 지속적 성장이나 발전은 고려하지 않고 당장 자산을 처분해서 단기 이익을 취하자는 것”이라고 엘리엇의 의도를 공격했다.
■엘리엇 “자사주 불공정 처분” 삼성 “주주 보호 필요성”
이날 심리에서는 삼성물산이 자사주 899만주(5.76%)를 우호관계에 있는 KCC에 매각한 것이 불법적인 자사주 처분으로 주주들의 의결권을 희석시킨다는 취지로 엘리엇이 추가로 낸 주식처분금지 가처분에 대한 심리도 이어졌다.
엘리엇 측은 “합병의 필요성에 대해 주주들 간 의견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부당하게 그 결의를 왜곡시키는 방식으로 자사주를 처분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면서 “합병안에 대해서 반대 의사를 갖는 주주들이 주총에서 합병 승인 결의에 대해서 다퉈볼 여지를 아예 근본적으로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자사주 처분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또 “KCC 입장에서는 본건 주총에서 합병안에 대해 찬성표를 던질 것이 명약관화하다”면서 “자사주 처분은 오너일가가 주총 결의 내용까지도 미리 컨트롤해서 결과를 도출하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이에 삼성물산은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의견을 표명하면서 주식매수 청구권 행사에 대비하고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 합병을 추진하기 위해 자사주를 매각한 것”이라며 “적법한 절차를 모두 지켰으며 단기차익을 요구하는 엘리엇에 대비해 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도 고려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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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 역시 “삼성물산과 KCC에 이득이 된다고 판단해 거래한 것이지 배임의 의도가 있어서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합병비율이 맞지 않다고 주장하려면 다른 주주들을 설득하는 것이 맞지 법에 없는 내용으로 정상적인 회사의 영업을 혼돈에 빠뜨릴 필요는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이날 심문을 끝으로 엘리엇의 신청을 인용할지, 아니면 기각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주주총회 소집 공고일이 다음달 2일로 예정돼 있는 만큼 1일 오전까지는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