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PC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신호탄일까? 아니면 '선택과 집중'을 위한 결단으로 봐야 할까?
휴렛패커드(HP)가 한 때 핵심 역할을 했던 퍼스널 시스템 그룹(PSG)을 마침내 떼어냈다. HP는 지난 6일(현지 시각) 기업용 솔루션 부문을 담당하는 HP 엔터프라이즈와 PC 및 프린팅 사업 부문이 주축을 이룬 HP Inc로 회사를 쪼개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발표 직후 HP의 이번 결단을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유력한 설은 B2B와 B2C 영역을 나눔으로써 효율적인 경영을 하겠다는 것. 반면 포화 상태에 다다른 PC와 프린터 부문을 떼어낸 뒤 성장산업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해석도 만만치 않다.
특히 HP의 얼굴인 멕 휘트먼이 HP 엔터프라이즈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B2C 영역인 HP Inc는 다이언 웨즐러가 사장 겸 CEO로 경영을 책임진다. 휘트먼은 HP Inc 비상임 회장 역할을 하기로 했다.
■ 규모는 비슷하지만 향후 수익 전망은 큰 차이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일부 외신들은 “사양 산업인 PC와 프린터 부문을 떼낸 뒤 성장 사업 쪽에 힘을 집중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한 때 HP의 핵심 수익원이었던 프린터 사업이 최근 들어 내리막길로 접어든 부분도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외형만 놓고 보면 이런 분석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HP가 이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HP 엔터프라이즈와 HP Inc는 규모나 실적 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매출 규모도 584억 달러(HP 엔터프라이즈)와 572억 달러(HP Inc)로 큰 차이가 없다. 수익 역시 6억 달러와 5억4천만 달러로 대동 소이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려면 숫자 뒤에 감춰진 부분을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3년 전 PC 사업 매각을 추진했던 레오 아포테커 전 CEO의 논리를 꼼꼼히 살피는 것도 괜찮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아포테커는 당시 PC 매각 이유로 마진을 꼽았다. PC 쪽이 매출 규모는 크지만 마진 면에선 형편없었다는 것. 그 당시 PC 사업을 떼낼 경우 HP 전체 마진이 12%에서 16%로 상승할 것이란 게 아포테커의 논리였다.
물론 아포테커는 주주들의 반대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 때 아포테크가 제기한 논리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부분을 한번 살펴보자.
일단 PC 사업이 ‘끝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비롯한 ‘포스트 PC 시대’가 열리면서 영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한 때 PC 최강으로 군림했던 HP도 직격탄을 맞았다. HP의 PC 평균 판매가격과 마진은 각각 557달러와 24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마진율이 5%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다. 더 이상 PC 산업을 떠안고 있다가는 HP 전체가 위기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 프린터 부문도 2009년 이후 급속한 하락세
한 때 알짜 사업이었던 프린터 부문도 최근 들어 여의치 않다. 이 부분은 가디언의 테크놀로지 편집자인 찰스 아서가 그림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HP의 프린터 부문은 2005년에서 2008년 사이에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09년 무렵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프린터 부문이 큰 타격을 받았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2009년 들어 사업 규모가 크게 축소됐다. 문제는 금융 위기가 끝나고 난 뒤에도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생긴 걸까? 잘 아는 것처럼 2010년대 들어선 태블릿을 비롯한 포스트 PC 제품들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전통적인 PC 관련 제품들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당연한 얘기지만 종이에 뭔가를 출력하려는 유인 자체도 많이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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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 변화는 곧바로 HP 프린터 사업에도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프린터 사업이 더 이상 극적인 상승 곡선을 그릴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분석도 가능하단 얘기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몇몇 업체들이 이번 조치에 대해 “사양 사업을 떼어내고 성장 산업에 주력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을 내놓는 것도 이런 근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