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분사 반대했던 HP CEO의 변심 이유

일반입력 :2014/10/07 15:35    수정: 2014/10/07 16:45

HP가 일반 소비자를 겨냥한 PC 및 프린터 사업 조직을 'HP인크(HP Inc.)'라는 별도 회사로 분리한다. 클라우드 및 소프트웨어(SW) 등 기업용 제품 및 서비스 영역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를 보여주듯 PC와 프린터 사업을 떠내내고 새로 출범하는 회사 이름도 'HP엔터프라이즈'다.

HP는 6일(현지시각) 기업 분할 계획을 내놓으며 HP엔터프라이즈가 '새로운 IT스타일'로 차세대 기술 인프라, SW, 서비스를 정의할 것이라며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킹, 컨버지드시스템, 서비스, SW와 오픈스택 헬리온 클라우드플랫폼에서 선도적 입지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HP의 기업분할 시나리오는 3년전 '불명예 퇴진'한 전임 최고경영자(CEO) 레오 아포테커의 구상을 연상시킨다. SAP CEO 출신은 레오 아포테커는 2010년 11월 HP 지휘봉을 잡았고 이듬해 8월 HP를 퍼블릭클라우드 및 SW전문업체로 탈바꿈하겠다는 비전을 위해 PC사업 분사를 선언했다.

■아포테커 前 CEO의 유지?

당시 아포테커 전 CEO가 이런 카드를 뽑아든 배경엔 주력 제품인 PC 사업이 매출 비중은 큰 반면 이익률이 낮다는 판단에서였다. HP가 스마트폰과 태블릿 사업에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할 때라, 성장 한계를 드러낸 PC 사업을 털어낸다고 해서 아쉬울 건 없어보였다.

그러나 레오 아포테커 CEO의 구상은 이사회와 의견 조율을 거치기 전에 나온 것이었다.

아포테커 전 CEO는 PC사업 분사 계획을 공개한 후 주주들의 반발에 부닥쳤다. 이것은 주주들이 아포테커 CEO를 해임하고 지금의 멕 휘트먼 CEO를 끌어들이는 결과로 이어졌다.휘트먼 CEO는 지난 2011년 10월말쯤 전임자의 PC 및 프린터 사업 분사 계획을 철회했다. 당시 HP는 '퍼스널시스템그룹(PSG)'으로 대표되는 소비자 제품 사업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고객, 제휴 업체, 주주, 직원, 모두에게 옳은 결정이라며 HP는 PC 사업에 열중하고 그와 함께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휘트먼 CEO가 3년전 분사 계획을 철회한 것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캐시 래스잭 당시 HP 최고재무책임자(CFO)에 따르면 PC관련 사업 덕분에 공급 유통망과 부품 구매력에 실질적 이득이 존재했다. 또 HP는 당시 15억달러로 추산된 분사 비용과 PC사업부를 정리할 경우 발생하는 연간 손실액 10억달러를 감수해야 했다.

3년후 멕 휘트먼 체제의 HP 노선은 레오 아포테커가 추구했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섰다.

다수 외신들은 HP가 기업 분할 계획에 대해 '이제서야 실행된다'는 식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미국 지디넷도 2011년 아포테커 전 CEO의 PC사업부 분사 구상은 전반적인 브랜드 가치와 HP 포트폴리오 구성 면에서 '함께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가진 휘트먼 CEO에 의해 폐기됐다면서 그뒤 HP는 '구조조정을 통해 분사가 가능해졌다'고 이제 휘트먼 CEO는 '민첩성만이 승리하는 유일한 길'이라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HP 지금은 분사의 최적기…구조조정과 중장기 비전

하지만 HP는 지금이 분사를 위한 최적기라고 주장한다. PC 및 프린터 사업과 엔터프라이즈 클라우드 및 SW 사업을 분리하는 게 3년 전이 아니라 지금이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3년 전과 지금의 차이는 뭘까?

HP가 투자자에게 내놓은 분사계획 설명 자료에 따르면 그 이유는 '3년에 걸친 구조조정과 안정화'로 요약된다.

HP는 미국 증권거래소(SEC)에 제출한 HP 분사계획 설명 자료 중 18쪽짜리 프리젠테이션에서 분사 실행에 대해 실적 회복을 가속할 움직임이라 강조하고, 3년간 '일(work)'한 결과로 고객, 투자자, 직원의 신뢰도를 높이고 채널사와 관계를 다졌으며 재정적 기반을 예측 가능하고 더 탄탄하게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휘트먼 CEO가 HP에 온 뒤 가장 두드러졌던 활동은 대규모 구조조정과 중장기적인 비전 제시였다. 대량 해고를 통해 무리한 기업 인수로 부실해진 재정 상태를 가다듬고 부진한 실적으로 쌓인 주주들의 불만을 회사가 보유한 신기술 기반 제품화로 달래는 전략을 동원한 것이다.

실제로 휘트먼은 CEO를 맡은 이래로 직원 가운데 1차로 3만4천명을 줄였고 올 상반기 2차로 1만1천~1만6천명을 감원하는 계획을 내놨다. 이어 이번 기업 분할 소식과 함께 3차로 5천명의 일자리를 정리해 최대 5만5천명을 내보내려 한다.

관련기사

다만 기업 분할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내년 10월말까지인 회계기준 2015년말로 제시된 것과 달리 구체적인 감원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HP가 삭감했던 연구개발비를 지난 2008년 수준인 매출 3%까지 되살린 뒤 추진한 '더 머신' 연구개발 프로젝트도 휘트먼 CEO의 야심작이다. 분사 계획에 따라 HP연구소 조직도 나뉘게 되지만 프로젝트는 지속 추진될 전망이다. 이는 HP 자체 메모리소자, CPU, 운영체제, 데이터전송 기술을 결합해 오는 2019년 제품화한다는 내용으로, 지난 6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HP 디스커버' 현장에서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