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가 PC 및 프린터 사업을 기업용 제품 및 서비스 조직과 분리해 2개 회사로 갈라서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란 해석이 나왔다.
미국 지디넷은 5일(현지시각) PC 및 프린터 등 소비자용 제품 사업 조직과 기업용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SW)와 서비스 사업 조직이 2개로 쪼개지는 것은 놀랍지 않은 행보이며, 업계가 던져야 할 물음은 왜 이제서야, 이를 실행하느냐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작부터 필요한 결단이었다는 얘기다.
래리 디그넌 미국 지디넷 편집장은 그 이유로 5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기업 분할로 인해 산만했던 HP 사업은 집중력을 가질 수 있다.기존 HP는 어느 한 곳에 명확히 집중할 수 없는 구조였다. 3D프린팅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고 PC 시장 1위 타이틀도 중국 레노버에게 빼앗겼다.
반면 기업용 비즈니스에서 HP는 저전력 서버 '문샷' 시리즈로 시장의 관심을 모았고 성장세가 빠른 빅데이터 제품 및 SW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둘째, 기업 분할은 연구개발부문 투자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멕 휘트먼 HP 최고경영자(CEO)는 감축했던 연구개발비 지출을 지난 8월 2008년 수준인 매출 3%까지 되살렸다. 하지만 문제는 이 투자금을 성장 여지가 큰 엔터프라이즈 부문에 온전히 집중하는 게 아니라 혁신을 부르짖는 PC 및 프린터 사업 조직과 나눠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직이 갈라서면 HP는 성장세가 분명한 사업에 보다 적극적인 투자를 감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분할된 조직 가운데 한 쪽은 '상장폐지'를 할 수도 있다. 현재 프린팅 사업 조직은 회사 자금줄 역할을 한다. 그런만큼, 비상장 회사로의 전환을 고려해 볼만 하다. 지금 HP는 회사 덩치를 고려할 때 비상장 기업으로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분할된 회사 둘 중 어디든 비상장 회사로의 전환은 현실적인 고려 사항이 될 수 있다. 비상장 전환시 델, 팁코, BMC처럼 증시 영향을 걷어내고 회사를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넷째, HP는 SW와 '클라우드' 전략의 비중을 늘려야 하는데 기업 분할이 여기에 도움이 된다. 특히 SW는 현재 HP의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HP는 사업 분할을 통해 SW 사업을 육성함으로써 매출 규모를 키울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HP가 SW 사업으로 매출을 크게 늘리려면 지금 구조로는 어렵다. 레드햇이나 다른 클라우드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업체를 인수함으로써 엔터프라이즈 사업에서 SW비중을 확 띄우는 방식도 가능해 보인다.
다섯째, HP 엔터프라이즈 조직은 별도 회사가 될 경우 더 큰 사업자와의 합병이 더 쉬워진다. 앞서 증권가에서 기업용 스토리지 거인 EMC와의 대등합병 가능성이 대두된 바 있는데, 분할 이전의 HP라면 해당 계획이 실행되더라도 복잡한 사업구조 때문에 양측이 계약 내용을 협의하기가 쉽지 않다. EMC가 HP의 프린터나 PC 사업을 원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이다. HP가 이런 조직을 떼어내고 엔터프라이즈 사업부라는 몸뚱이로 EMC와 합병을 논할 경우 훨씬 유리한 조건에 협상에 임할 수 있다.
앞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HP가 PC 및 프린터 사업부문과 엔터프라이즈 조직을 별도 회사로 쪼개는 계획을 이르면 6일 공식화할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현지 6일은 한국시각 기준으로 오는 7일 오전 2시 이후부터다. 다만 실제 공식 발표가 자정 이후 즉각 이뤄질 것이란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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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외신들은 이를 보도하며 휘트먼 CEO가 3년전 경질된 레오 아포테커 전 CEO의 비전을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묘사했다. 아포테커 전 CEO는 기업용 SW 전문업체 SAP 출신으로, 지난 2010년 11월 HP CEO로 발탁됐다. 아포테커는 2011년 3월 HP를 퍼블릭클라우드, SW전문업체로 변신시키는 구상을 내놓고, 그해 8월 스마트폰 사업을 정리한 직후 PC사업을 분사하겠다고 선언했다.
해당 결정은 PC사업 조직의 매출 대비 낮은 이익률과 모바일 기기에 밀려 위축되고 있는 시장 상황이 HP의 성장에 부담이 됐기 때문에 내려진 것이었지만, 이에 반발한 주주들은 그 계획이 나온지 한달만에 아포테커를 해임하고 현 CEO인 멕 휘트먼을 선임했다. 다만 당시 아포테커가 이사회와 의견 조율 없이 PC사업 분사 계획을 언급하고 이를 철회할 수 있다고 발언하는 등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줌으로써 경질을 자초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