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몰락에도 '엡손'이 승승장구하는 이유

프린터, 프로젝터, 센서 트로이카로 최대 매출 달성해

일반입력 :2014/10/07 07:49

권봉석

<나가노(일본) = 권봉석 기자> 엡손은 단순한 프린터 회사가 아니다. 우리 목표는 우리 기술이 요긴하게 쓰여 고객과 사회,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일본 현지 시간으로 6일, 엡손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담당 이안 캐머런 부장이 나가노현 시오지리 시에 위치한 엡손 히로오카 사업소에서 이와 같이 소개했다.

한국 시장에서 엡손은 잉크젯 프린터·레이저 프린터로 알려져 있다. 홈시어터나 A/V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화질 LCD 프로젝터로 엡손을 기억한다. 하지만 엡손은 프린터나 영상 제품 이외에도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한 센서와 로봇 기술은 물론 웨어러블 기기에도 강점을 가진 전형적인 기술 기업이다.

낭비없이, 작게, 정밀하게

엡손의 기술과 제품을 관통하는 세 가지 한자는 바로 '省·小·精'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낭비없이, 작게, 정밀하게'다. 엡손은 70여년 전 나가노현 작은 시골 마을인 스와에서 종업원 아홉명으로 '유한회사 야마토공업 제1공장'으로 출발했다. 당시만 해도 손목시계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제품이었지만 엡손은 작고 간결하며 오래 쓸 수 있는 손목시계로 인기를 얻었다.

여기에 '모노즈쿠리'로 대변되는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이 결합하며 빚어낸 여러가지 제품은 엡손을 전세계 7만명을 고용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지난 2013년 한 해 일본 나가노현에 위치한 R&D 센터를 포함해 전세계 각지에서 연구·개발에 소요된 비용만 해도 하루에만 약 1억 3천만원이다. 핵심 가치를 이어나가기 위한 비용 역시 만만치 않은 셈이다.

기획부터 수리까지 철저한 수직계열화

HP·캐논·삼성전자 등 프린터 제조사는 제품 개발과 생산을 분리한다. 프린터 드라이버나 각종 프로그램은 자체 개발하지만 실제로 인쇄를 맡는 핵심 부품인 엔진은 다른 회사 제품을 쓰기도 한다. 이에 비해 엡손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모든 제품을 자체 생산한다. 이안 부장은 엡손은 제품 기획부터 설계, 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수직계열화해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잉크젯 프린터의 헤드, 프로젝터의 LCD 패널 등 핵심부품도 직접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 과정을 제어하고 관리해 제품 품질을 높이고 보다 신속한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수직계열화는 또 하나의 장점을 지닌다. 바로 한 제품에 쓰이는 핵심 기술을 다른 제품에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잉크젯 프린터에서 잉크를 뿜어내는 헤드는 1초에 4천만개 이상 잉크 입자를 뿜어 그림과 글자를 찍어낸다. 인쇄 품질의 핵심인 '프리시전 코어'는 가정용 잉크젯 프린터는 물론 각종 라벨을 찍어내는 산업용 프린터까지 커버한다. 또 미세하게 헤드를 제어하는 데 필요한 센서 기술은 산업용 로봇 제어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30년 이상 축적된 프로젝터 기술 역시 엡손이 올해 출시한 스마트 글래스, 모베리오에 투입되었다.

선택과 집중으로 10조원 매출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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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산업의 강자로 불렸던 일본 기업들이 21세기 들어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엡손은 2005년 이후로 매출이 감소하고 2008년 리먼 쇼크를 겪기는 했지만 지난 한 해 1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디스플레이 등 한국·대만 등지 기업과 가격 경쟁에서 밀려난 품목을 과감히 정리한데다 무한잉크 프린터가 시장에서 호응을 얻은 덕이다. '선택과 집중'이 낳은 결과다.

현재 엡손이 주력하는 분야는 프린터, 프로젝터, 센서 등 세 분야다. 이 중 프린터는 전체 매출의 77.3%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프리시전 코어 기술의 바탕이 된 마이크로 피에조 기술은 엡손 우스이 CEO가 엔지니어 시절에 직접 개발했고 1980년대에서 1990년대 프린터 사업의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최근 엡손이 힘을 싣는 분야인 센서·로봇 분야는 원래 엡손이 자체 공장에서 쓰기 위해 개발한 로봇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현재 한국, 중국을 비롯해 각국 공장에서 엡손 로봇이 움직인다. 엡손 관계자는 현재 한국 스마트폰 제조사, 자동차 회사에 로봇을 이용한 공장 자동화 설비를 판매하려고 준비중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