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관계자를 자주 만난다. 주로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최근에도 몇몇 기업의 대표를 만났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해외로 진출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원하고 있다. 한 두명이 시작해서 세계적인 회사가 된 뉴스를 보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국내에서 일단 인지도를 쌓고 고객을 확보하여 캐시카우를 만든 후에 이를 기반으로 해외 진출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냥 국내 시장에서 허덕대다가 그저그런 기업으로 남거나 문을 닫는다.
물론 처음부터 해외시장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국내 시장에서만 승부를 보는 전략도 있고 분야에 따라서 나쁜 전략도 아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이 세계 시장의 2~3%에 불과하지만 지역특성이 강한 분야도 있어서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를 발판으로 해외로 나가보자는 전략이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알아보자.
A사는 기업용 서비스를 개발하는 회사인데 처음부터 글로벌 서비스를 목표로 시작을 한 회사다. 충분한 자본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국내에서 몇몇 기업과 계약을 맺어 서비스를 제공했고, 상당 기간 고객들이 원하는 기능에 매달리느라고 글로벌 서비스에 필요한 준비를 별로 하지 못했다.
글로벌 서비스는 모든 프로세스가 완전히 자동화 되어 사람의 수동 개입이 거의 없어야 하는데 국내 고객에 대응을 하다 보니 상당 부분 사람의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반자동 서비스가 되었다. 지금은 고객이 100배로 늘어도 큰일이며 시스템의 구조를 바꾸려면 추가로 개발을 매우 많이 해야 한다. 이미 개발해 놓은 것이 많으므로 시스템 복잡도는 점점 증가하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이 미래 개발의 큰 부담이 되고 있다.
B사는 기업용 웹 솔루션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국내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았다. 그리고 정부 지원을 받아서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해 글로벌 버전을 새로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서 영업이 꽤 잘되어서 매출액이 급격히 늘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을 지원하느라고 개발자를 많이 채용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개발자의 월급을 주려면 상당한 매출을 계속 일으켜야 했다. 그렇게 계속 국내 고객을 발굴하고 기업들의 요구사항에 매달리다보니 처음에 계획했던 글로벌 솔루션에 투자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국내 고객이 캐시카우라서 포기할 수도 없고, 이를 위해서 많은 개발자는 계속 필요하고 이런 고리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C사는 유럽의 작은 나라 소프트웨어 회사다. 지원수는 30명 정도지만 전세계 수많은 고객을 가진 글로벌 기업이다. 이 회사의 솔루션은 매우 단순하다. 비즈니스 전략도 단순하다. 구매도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정보는 인터넷에 공개가 되어 있다. 고객지원도 온라인으로만 이루어진다. 서비스데스크 시스템을 통해서 기술문의나 사용문의를 처리하고 있다.
고객이 전세계에 흩어져 있어서 지원을 요청한다고 방문을 할 수도 없고, 전화 지원도 언어 장벽 때문에 어렵다. 따라서 제품에 대한 문서화가 잘 되어 있고, 모든 지원은 자동화된 프로세스가 잘 구축되어 있다. 그래서 적은 개발 인원과 지원 인력으로 수많은 고객을 지원하는 것이 가능하다.
글로벌 기업이 목표인 회사에게 국내 시장은 우선 공략 전략은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 될 수 있다. 지역이 국내라서, 국내 고객들이 괴팍해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로컬 비즈니스 전략으로 고객별 커스터마이징과 오프라인 지원에 매달리는 전략이 문제라는 것이다. 일단 이런 전략으로 시작한 기업은 '개미 지옥'에 빠진 기업과 같다. 처음에는 이렇게 돈을 번 후 멋지게 빠져나가서 성장을 하고 싶지만, 일단 발을 들여 놓으면 처음에 생각한 것과 다르게 점점 더 깊게 빠져 들어가는 '개미 지옥'이 된다.
기술적으로도 로컬 제품을 먼저 만들었다가 글로벌 제품으로 성장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패러다임을 완전히 달리 해야 하는 것이라서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어렵다.
글로벌 제품의 특성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첫째, 소프트웨어 국제화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소프트웨어 국제화란 여러 언어와 국가를 지원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든다는 것인데 국제화 전문가의 도움 없이 제대로 국제화를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10년 이상의 소프트웨어 국제화 경험이 있어야만 제대로 국제화를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는 처음에 개발을 시작할 때부터 국제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국제화가 안된 소프트웨어도 처음에 영어를 기반으로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나중에 국제화가 용이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국제화가 힘들어진다. 또한 영어로 개발된 제품은 국제화를 하지 않아도 영어를 받아들이는 전세계 모든 회사에 판매를 할 수가 있다.
소프트웨어 자체는 훌륭하지만 국제화에 발목 잡혀서 실패한 회사가 꽤 된다. 번역이 잘 못되거나 해당 국가의 문화나 표기 방법을 고려하지 않거나 개발 비용이 너무 과도하게 들어가서 실패를 하게 된다.
둘째, 유지보수와 고객지원이 용이하며 거의 온라인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소프트웨어 품질이 높아서 장애와 지원요청이 별로 없어야 한다. 소프트웨어 장애 시 몇 번의 클릭으로 장애 리포트를 전송할 수 있도록 하고, 개발사에서는 자동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고객과는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모든 이력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어서 미래의 고객 지원에 활용된다.
요즘은 고객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서 고객지원에 들이는 노력을 더욱 절약하는 기업들이 있다.
셋째, 기업 내부적으로는 개발에 필요한 문서가 잘 작성되어 있고, 고객에게는 충분한 정보를 문서로 제공한다. 개발 시에 꼭 필요한 문서를 충분히 잘 작성하므로 고객에게 제공되는 사용자 매뉴얼, 기술 백서 등의 문서가 자연스럽게 잘 만들어진다. 그래서 고객들은 문서를 통해서 충분히 정보를 제공 받으므로 지원 요청이 줄어든다. 물론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문서화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개발 시에 필요한 문서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가장 빨리 개발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문서를 잘 적는 것이다.
넷째, 개별 고객의 요구사항에 흔들리지 않고 개발사가 제품의 로드맵을 주도한다. 고객의 요구사항에 귀를 기울이지만 전체를 파악하는데 노력을 하고 한 고객이 원하는 것에는 휘둘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잃게 되는 10%의 고객보다는 나머지 90%의 고객을 유지하는데 집중한다. 따라서 소프트웨어를 급하게 개발하지도 않는다.
다섯째, 고객이 아무리 많아도 소스코드는 한벌인 경우가 많다. 국내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가장 많이 빠지는 함정이 슈퍼 고객을 지원하기 위해서 소스코드가 갈라지거나 국제화를 위해서 별도로 개발을 하는 것이다. 눈앞의 이득만 쫓다가 수십배의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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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회사를 계획했지만 캐시카우를 만들기 위해서 로컬 비즈니스와 커스트마이징 또는 SI를 해야 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개미 지옥"과 같다는 것을 명심하자. 절대로 빠져오지 못할 만큼 깊게 빠지지는 말아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만 않으면 영원히 못 빠져 나온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마약에 빠지지 말고 처음부터 글로벌 전략을 펼치는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