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용 자체 3D그래픽 기술과 경쟁 관계인 '오픈GL(OpenGL)' 표준화를 주도해온 크로노스그룹에 참여하기로했다.
닐 트레벳 크로노스그룹 의장은 지난 11일 트위터 계정을 통해 MS가 웹3D2014 컨퍼런스에서 크로노스에 가입했고, '웹GL(WebGL)' 작업반 활동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크로노스그룹은 웹GL와 오픈GL이라는 3D그래픽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를 표준화하는 단체다. 오픈GL API는 윈도, 리눅스, OS X 등의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을, 웹GL API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웹애플리케이션을 만들 때 쓰인다.
MS는 오래 전부터 자체 3D그래픽API를 만들고 오픈GL과 생태계 싸움을 벌여 왔다. 오픈GL은 윈도용 멀티미디어 처리 프레임워크 '다이렉트X'에 포함된 다이렉트3D(Direct3D)와 경쟁 관계다. MS 다이렉트X 기술은 관련 개발도구, 전문지식, 커뮤니티 모두 오픈GL과 별개로 제공된다. 오픈GL과 호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이렉트X같은 독자 기술을 고집하던 MS가 경쟁 상대인 오픈GL을 표준화하는 크로노스그룹에 가입했다는 점은 의외의 행보로도 비칠 수 있다. 트레벳 의장이 크로노스그룹에 합류한다는 MS의 뜻을 전했을 때 온라인 기술전문 매체들이 주목한 이유다.
하지만 MS의 크로노스그룹 가입은 단순한 '적과의 동침'이 아니다. 트레벳 의장이 전달한 소식 중 나머지 부분에서 이를 짐작 가능하다. 그에 따르면 MS는 크로노스그룹에서 웹GL 작업반 활동에 참여할 계획이다. 사실 이는 3년전의 입장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MS는 지난 2011년 HTML5로 불리는 최신 웹표준 기술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인터넷익스플로러(IE) 9 버전을 내놨는데, 거기에 웹GL 기능은 없었다. 오히려 그해 MS는 보안 취약성을 문제삼아 웹GL을 적극 밀고 있던 모질라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관련기사1, 2)
MS가 보안 우려를 제기하며 이래저래 웹GL을 지원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치는 동안 모질라, 구글, 오페라 등 경쟁 브라우저 개발업체는 웹GL 지원을 강화했다. 해당 기능을 부분적으로만 지원했던 애플도 최근 개발자용 iOS8 시험판과 OS X용 사파리에 구현 항목을 대폭 늘렸다.
이제 와서 MS가 입장을 뒤집은 것은 아무래도 웹GL이 가장 널리 통용될 수 있는 브라우저 기반의 3D그래픽 기술이라는 점을 인정한 모양새다. MS에게 다이렉트X는 윈도 플랫폼의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기술이지 웹 환경에 적용할만한 기술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버즐' 등을 만든 모바일 게임 전문개발업체 엔필의 윤형근 연구소장은 14일 다이렉트X는 웹 환경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아니다고 말했다. MS에게 웹용 3D그래픽을 처리할만한 자체 기술은 마땅치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크로노스그룹 안에서 MS는 웹GL을 통해 플랫폼 중립적인 웹용 3D그래픽 기술을 함께 발전시킬 계획으로 보인다.
물론 MS가 다이렉트X를 포기한 건 아니다. 오픈GL과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그 규모는 과거에 비해 많이 축소되는 분위기다. 이는 윈도 플랫폼의 네이티브애플리케이션과 게임 프로그래밍 환경에 쓰이는 3D그래픽 기술에 한정된 싸움이기 때문이다.
MS가 꾸준히 윈도 태블릿과 윈도폰 스마트폰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지만 몇년간 선두권인 애플 iOS, 구글 안드로이드와의 격차를 좁히진 못했다. PC 플랫폼 운영체제(OS) 시장의 위축된 입지를 회복하긴 어려워 보인다. 즉 윈도 전용 기술인 다이렉트X만으로 다양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MS는 오픈GL과 다이렉트X의 상호운용성을 높여 예전같지 않은 윈도 3D그래픽 기술 생태계에 활기를 더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최근 크로노스그룹이 그래픽기술 컨퍼런스 시그래프2014에서 공개한 오픈GL 4.5 버전 내용 가운데 일부가 이를 짐작케 한다.
오픈GL 4.5는 다이렉트X11버전의 에뮬레이션 기능을 탑재한 게 특징이다. 이는 오픈GL과 다이렉트3D 기반으로 만들어진 애플리케이션간의 이식을 더 쉽게 만들어 준다. 이런 오픈GL 4.5 버전 출시 시점은 웹용 3D그래픽 기술 웹GL 작업반 활동을 함께해 나가겠다는 MS의 크로노스그룹 합류 시기와 묘하게 겹친다.
이를 전한 개발자 대상 IT뉴스 사이트 아이프로그래머는 과거 MS가 다이렉트X에 대해 보여준 태도는 그 기술을 (오픈GL같은) 여타 그래픽시스템에 거의 허용(호환)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거였는데, 이번 (오픈GL의 다이렉트X 에뮬레이션 기능 관련) 소식은 일종의 유턴(입장반전)이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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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다른 IT사이트 익스트림테크는 MS는 (3D그래픽 API를) 자체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반면 오픈GL 차세대(NG) 버전은 현존하는 오픈GL의 표준규격처럼 모든 OS와 하드웨어 제조사를 위한 크로스플랫폼 솔루션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영국 더레지스터에 따르면 크로노스는 PC뿐아니라 가전이나 여러 단말기용 칩과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제조사를 아우르는 조직이다. 구글, 모질라, 애플같은 거대 브라우저 업체와 인텔, ARM, IBM, 후지쯔, 소니를 회원으로 두고 있었다. 사실 MS에 인수된 노키아도 이전부터 크로노스 멤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