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의 가계 통신비를 실질적으로 경감하려면 출고가를 인하하는 게 최선책일까, 아니면 보조금을 상한액을 확대하는 게 더 나은 대책일까.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시행을 앞두고, 휴대폰 보조금 상한선 조정을 놓고 방송통신위원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일 방통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단통법 시행 이후 적용될 보조금 상한액과 관련한 논의를 두 차례 진행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내부 논의를 다시 진행한다. 보조금 정책 방향에 따라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쉽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이르면 내부 의견 조율을 마무리짓고 내주 전체회의에 안건을 상정한다는 계획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보조금 상한액을 올리든 내리든 합리적 정책 결정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장상황이 예측 가능해야 하는데 이번 사안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며 “상한액이 말 그대로 상한을 정하는 것이지 보조금의 액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보조금 상한액 높이면 출고가 상승 우려
현행 27만원의 보조금 가이드라인은 4년전에 마련됐다. 스마트폰이 확산되기 이전에 생긴 기준이다. 현재 시장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스마트폰 가격이 전반적으로 비싸졌기 때문에 보조금도 상향 조정되는 게 맞다는 논리가 여기에서 나온다.
반대 논리도 일리가 있다. 상한액을 늘린다 해도 이통사가 그만큼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보장도 없고 늘어난 만큼 제조사가 출고가를 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법적으로 정한 보조금 액수가 그리 높지 않다면, 제조사들이 최소한 출고가를 현재보다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방통위 상임위원간 의견 합치를 본 상황은 아니지만, 김재홍 방통위 상임위원은 “보조금이 오르면 단말기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 이유도 이와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과거 피처폰 시절에 만들어진 상한 규정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맞춰 이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스마트폰의 출고가 인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비싼 요금제를 쓰는 가입자 대부분이 휴대폰 보조금을 많이 받으려고 자신의 이용 패턴에 맞지 않는 고가 요금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계통신비 상승의 요인이 비싼 단말기 가격에서 시작돼 보조금이 집중된 고가의 요금제를 써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됐다는 뜻이다.
단통법 아래에서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다. 휴대폰 보조금과 제조사 장려금 규모 등이 고시되고, 분리 요금제 등으로 출고가를 인하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 이후 휴대폰을 구입하고 통신서비스를 고르는 방식이 많아지는데 지나치게 비싼 단말기는 시장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며 “보조금에 따라 단말기 출고가 인하 경쟁이 펼쳐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단말기 출고가 인하에 대해서는 정부 의지도 높은 편이다. 미래부는 가계통신비 경감 정책을 발표하면서 이통사와 제조사를 대상으로 기존에 출시된 단말기 및 신규 출시되는 단말기 모델의 출고가 인하를 지속적으로 유도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단통법 제도 상 보조금 공시와 제조사 장려금 규모 확인, 분리 요금제 등으로 출고가를 인하할 수밖에 없는 요건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기본적으로는 국내 시장에 더 비싼 값에 출고되는 역차별을 막는 것을 우선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단말기 보조금 상한액은 출고가와 맞물려 고민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실제 상한제 형식의 보조금이 3년 일몰제의 단통법 아래에서 단말기 출고가 인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냐가 정책 입안자들을 고민케 하는 부분이다.
■통신사-제조사가 주는 보조금을 구분한다면?
단통법에서는 휴대폰 구입 당시 제공되는 보조금을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보조금 공시’ 제도가 운영된다. 암호처럼 지급되고 소비자 입장에서 제값을 받았는지 의심케 하는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생긴 제도다.
보조금은 통신사의 마케팅 및 가입자 확보비용,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 유통 현장의 자체 판매비용 이익 등 복잡한 경우의 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일반 소비자가 보조금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고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흐름을 쫓아가기 어렵다. ‘호갱’이 구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복잡하게 설계된 보조금은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 이통사뿐만 아니라 제조사 역시 증가 추세다. 이통사가 포화된 시장에서 경쟁사의 가입자를 뺏어오기 위해 보조금을 투입한다면, 마찬가지로 제조사도 스마트폰 교체 수요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려금을 많이 지급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조금 공시를 통해 일반 소비자는 복잡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값을 쉽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최근 들어 이통사의 보조금과 제조사의 장려금 즉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 보조금을 구분해서 소비자들이 알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부가 이통사의 불법 보조금 경쟁을 막고 요금경쟁을 유도하고 있는 것처럼, 제조사 역시 장려금 경쟁을 통한 불법 판매행위를 근절시키고 출고가 인하 경쟁으로 유도하자는 논리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정부의 보조금 규제는 이통사와 제조사의 보조금과 장려금을 구분하지 않아 제조사가 스마트폰 가격을 높게 책정한 뒤 유통망에 장려금을 지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방비였다”며 “이는 규제의 실효성도 떨어지고 지속적으로 스마트폰의 출고가를 높이는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삼성·LG·팬택 보조금 상한액 왜 갈렸나2014.07.02
- “출고가 낮춰라” vs “보조금 올려라”2014.07.02
- 야간 온라인 휴대폰 판매, 방통위 눈뜬장님?2014.07.02
- 단통법, 이통사 가입자당 매출 올리는 법?2014.07.02
보조금이 늘어날수록 부풀려진 스마트폰 출고가격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실제로 단말기와 서비스 비용을 모두 지불할 때 붙는 보조금을 소비자가 파악하게 하고, 적절한 값을 치르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보조금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할 경우 휴대폰 가격인하와 함께 가계통신비를 낮추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며 “따라서 보조금의 상한선 규제는 보조금과 장려금의 주체인 이통사와 제조사를 구분해 공시하는 것이 보조금의 투명성 확보와 단통법의 취지에도 맞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