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속에서 무르익는 레노버 서버 사업

일반입력 :2014/06/18 17:41    수정: 2014/09/22 10:04

황치규 기자

IBM이 솔직히 상대하기 편했는데, 레노버가 들어오면 피곤할 겁니다.

지난 1월 레노버가 IBM으로부터 x86서버 사업을 인수한다는 발표가 나왔을때 글로벌 서버 업체 국내 지사 담당자 A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IBM은 국내 x86서버 시장에서 HP나 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품을 비싸게 팔았는데, 중국 업체인 레노버는 공격적인 가격 카드를 꺼낼 것이란 우려가 섞인 발언이었다.

레노버의 IBM x86서버 사업 인수 발표가 나온지 이제 5개월이 지났건만 A씨의 우려는 아직도 우려로만 남아 있다. 레노버의 서버 사업 시나리오는 여전히 베일속이다.

레노버 본사 차원에서 IBM x86서버 사업 인수가 최종 마무리되지 않은 탓에, 수면위로 올라온 사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수면아래에도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들은 많다. 레노버의 x86서버 사업 인수는 이미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시장에서 초대형 변수다. 일각에선 차이나 디스카운트를 말하며 평가절하하는 시선도 있지만 경쟁 업체들의 시선은 다르다. 한국HP나 델코리아 내부 관계자들 사이에선 레노버를 의식하는 분위기가 진하게 풍긴다. 전사적으로 예의주시 모드다.

수면아래 있는 사실들을 살짝 끄집어 내보자면 레노버의 IBM x86서버 사업 인수는 하반기에는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디테일은 그때가서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선 레노버가 IBM x86서버 사업 인수를 마무리했다고 해서 갑자기 HP나 델을 상대로 가격 전쟁을 선포할 것 같지는 않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얘기들에 따르면 레노버는 IBM x86서버 사업을 인수하고 나서 당분간은 큰 변화없이 기존 시스템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 소비자와 달리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시장은 기업 정책이 너무 갑자기 바뀌면 고객들이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아무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레노버가 과거 보였던 행보와 IBM x86서버 사업 인수를 함께 바라보면서 향후 서버 시장에서 펼쳐질 레노버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것이 현재로선 적절해 보인다.

레노버는 PC 업체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PC만 안 판지는 오래됐다.

스마트폰, 태블릿, 스마트TV에 스토리지까지 만드는 회사로 성장했다. 서버도 IBM x86서버 사업 인수를 통해 데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전부터 레노버는 서버를 팔던 회사였다. IBM x86서버 사업 인수와 상관없이 올해는 한국 시장서도 레노버 브랜드의 서버를 판매할 계획이었다.

2012년 EMC와 스토리지 합작 법인인 레노버 EMC를 세운 것도 x86서버 사업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서버와 스토리지는 대단히 궁합이 잘 맞는 사이다. 레노버는 2012년 x86서버 환경에서 돌아가는 클라우드 SW업체인 스톤웨어도 인수했는데, 요즘은 이것 역시 서버 사업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레노버의 IBM x86서버 사업 인수는 이런 상황을 밑바탕에 깔고 성사됐다.

중국 회사는 국내에서 저가형으로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레노버 서버 사업에도 이같은 인식을 적용해도 될까? 고정관념을 무조건 들이내밀기 보다는 레노버가 이미 진행중인 PC나 태블릿 전략을 통해 레노버의 서버 사업 스타일을 예상해 보는 것이 적당할 듯 싶다.

PC나 태블릿을 보면 레노버는 광범위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프리미엄 시장은 프리미엄 제품으로, 저가 제품이 통하는 곳은 저가 제품으로 치고들어가는 방식이다. 레노버 PC중에는 300만원대는 물론이고 500만원이 넘는 제품도 있다. 싼 것은 또 엄청 싸다.

IBM으로부터 PC사업을 인수하면서 레노버는 프리미엄 시장의 빈구멍을 메웠다. IBM 싱크패드 PC 기술을 자사 기존 제품에도 적용해 저가 제품의 가격 대비 성능을 강화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이를 기반으로 HP를 제치고 세계 랭킹 1위 PC업체가 되었다.

레노버는 서버 사업에서도 PC와 유사한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철저한 세분화 전략이다. 저가 제품만이 아니라 사실상 IBM x86서버 사업 전체를 손에 넣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레노버가 박스 장사만 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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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SW업체를 인수하거나 EMC와 합작법인을 설립한 것을 보면 레노버식 솔루션 전략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PC나 태블릿 시장에서 펼친 플레이를 갖고 예상한다면 레노버는 서버 시장에서 IBM보다는 유연한 전략을 들고 나올 수 있다. 경쟁 업체 입장에서 보면 가격적으로 IBM보다는 까다로운 상대일 수 있다는 얘기다.

레노버는 또 중국 회사 치고는 현지화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화웨이나 ZTE는 해외 각국에 중국 사람을 보내지만 레노버는 그렇지 않다. 한국 지사도 한국 사람이 지사장이다. 레노버 엔터프라이즈 사업을 총괄하는 사람도 중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다. 레노버가 펼치는 이같은 현지화 중심주의도 경쟁사들에게는 껄끄러운 대목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