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또는 과몰입)을 마약 등 다른 중독 물질과 같은 선상에 놓고 치료의 대상으로 봐야하는가.”<이동만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장>
카이스트 연구진들이 게임을 둘러싼 편향된 해석과 오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여러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게임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주목된다.
이들은 ‘디지털 리터러시 3.0’이라는 개념을 도입, 게임을 포함한 디지털 미디어와 문화를 사용하고 생산하는 것뿐 아니라 이제는 비평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1일 서울 동대문 DDP에서는 ‘서울디지털포럼 2014’의 심화 세션 ‘게임병, 그리고 사회적 치유’ 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원재·박주용·도영임·이동만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연구진들이 참석해 게임 과몰입에 대한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분석 자료를 제시, 게임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강연을 펼쳤다.
먼저 카이스트 연구진들은 게임 과몰입 문제와 사회적 논쟁의 핵심으로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손인춘)과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신의진)을 들었다.
이어 “게임이 과연 중독 물질인가”란 질문을 던지며 게임에 대한 ‘중독’은 아직 명확한 진단 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이 같이 정의될 경우 정신의학적 약물 처방이 이뤄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또 기존 연구들을 봤을 때 “게임을 많이 한다고 해서 과몰입 혹은 중독단계로 필연적으로 이행되는 것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 시간과 상관없이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과몰입 혹은 중독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카이스트 연구진들은 뇌과학, 생리학의 연구 결과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신의진 의원 등 일부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중독 현상이 뇌 변화와 관계가 있다는 근거를 들어, 게임 중독의 심각성을 피력해왔다.
하지만 ‘게임뇌’ 근거로 제시된 ‘안와전두피질’ fMRI 촬영 영상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 카이스트 연구진들의 입장이다. 해당 활성화 부위는 인간의 동기와 욕구에 관여하는 것으로, 소위 음식 중독 혹은 쇼핑 중독이라 부르는 현상에서도 관측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게임뇌 논쟁을 근거로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해 규제하자는 논의는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발 나아가 정신약리학적 연구에서 중독에 대한 처방(6주)과 ADHD에 대한 처방(8주)을 게임 중독 증상 환자에게 처방했을 때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는 결과에도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향정신성 의약품의 처방 효과가 단지 게임 중독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정신적 문제를 완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착시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
이어 카이스트 연구진들은 “게임 중독의 정의에 대한 문제는 의학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와 연결돼 있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면서 “그 정의가 엄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과몰입만이 정말로 문제인가”란 질문을 던지며 함께 고민해볼 것을 요구했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순위가 자살이고, 자살하고 싶었던 가장 주된 이유가 ‘성적 및 진학 문제’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또한 왜 게임에 빠지게 됐는가에 대한 이유를 고민하지 않고 단순히 게임을 하나의 질환으로 이해하는 병리학적 관점으로 접근할 경우 실질적인 원인(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을 바라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도 꼬집어 말했다.
이와 관련해 도영임 교수는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사회적 함의를 비평할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그 문화를 이해하고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새로운 디지털 문화인 게임에 대한 이해, 이용자들의 욕망을 읽어내려는 노력 없는 통제와 단절은 전혀 효과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디지털 리터러시 3.0 관점에서 보면 청소년의 과잉 게임 행동과 문제적 게임 행동 중 대부분은 청소년의 발달적 전환기, 학업 스트레스, 개인의 가족적인 맥락 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발달 과업과 특정 생애 주기가 지나가면 자연 해소되는 것들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카이스트 교수진들은 게임의 순기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여러 사례와 근거들을 제시했다.
사회적 편견과 달리 ▲게임 이용자들의 비만지수(BMI)가 보통 사람들보다 낮았고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이용자의 경우 사회적 관계가 좋았으며 ▲익명의 공간에서 안전하게 그들의 성격을 진지하게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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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중독자들에게 우울감, 외로움, 낮은 자존감, 불안이 다른 게임 이용자 집단 보다 높게 나왔지만 이는 이런 심리학적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피난처로 게임을 선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면서 “과도한 게임 사용자는 사회성이 결여되고 사이버 세상에서만 제한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직접적인 증거를 결여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끝으로 카이스트 연구진들은 “온라인 게임 이용자들은 자기들끼리 자발적으로 기부 및 봉사활동을 결성하기도 하며 기부 자체가 게임 내 기능으로 반영된 온라인 게임 역시 존재한다”며 “온라인에서의 유대관계가 오프라인으로까지 선행을 발산하게 한 게임의 긍정적인 면도 함께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