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질라가 도입을 반대했던 웹표준 '암호미디어확장(EME)' 기능을 결국 파이어폭스 브라우저에 넣기로 했다. 우선 데스크톱 파이어폭스 브라우저에 적용할 예정이다. 모질라가 DRM을 거부하다 도입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오픈소스 진영에선 논란도 일고 있다. 모질라의 행보로 모든 브라우저 업체가 웹에서 디지털저작권관리(DRM) 기술을 받아들이게 됐다.
DRM은 콘텐츠 보호 기술이다. 평상시에는 열람에 제한을 걸고,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용자에게만 보여주는 식으로 쓰인다. 상업적인 동영상, 음원 서비스에 널리 쓰인다.
이를 브라우저가 쓸 수 있도록 만든 월드와이드웹컨소시엄(W3C)에서 제정한 표준이 EME다. 액티브X, 실버라이트, 플래시 없이 상업적인 콘텐츠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이 표준화를 주도한 EME 기능에 대해 W3C, 웹 창시자 팀 버너스 리, 주요 브라우저 업체는 찬성표를 던져 왔다.
모질라는 예외였다. 그러나 최근 EME를 모질라 제품에 도입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꿨다.
지난 14일 미첼 베이커 모질라재단 의장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DRM 기능을 좋아하진 않지만 파이어폭스에 DRM으로 제어되는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같은날 안드레아스 갈 현직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모질라핵' 블로그에 EME 표준을 지원하게 된 배경과 그간 비판했던 개방성과 프라이버시 문제를 어떻게 기술적으로 보완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모질라의 뜻을 바꾸는 데 3가지가 작용했다. 사용자 비중이 큰 구글과 MS의 브라우저에 EME가 탑재됐고 이미 여러 콘텐츠 공급업체가 이를 지원하며 이대로 가면 파이어폭스 사용자만 북미기준 트래픽 30% 이상을 차지하는 넷플릭스, 아마존 비디오, 훌루 등 대형 서비스의 DRM 콘텐츠를 못 즐길수 없다는 점이 고려됐다.
모질라는 W3C EME 기능을 파이어폭스에 구현하지 않으면 사용자들이 떠날지도 모른다고 봤다. 결국 고집을 꺾었다. 모질라가 추구하는 개방성, 사용자 보호와 선택권 존중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제품을 누군가 써주지 않으면 헛수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파이어폭스의 EME 구현 방식은 개인 식별정보를 생성하고 사용자가 이를 통제할 수 없게 만든 MS나 구글의 방식과 기술적으로 약간 다르다. 마지못해 DRM을 지원하긴 하지만 사용자 보안과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의도다.
16일 윤석찬 한국모질라커뮤니티 리더는 모질라는 EME 구현을 위해 '샌드박스'를 둬서 (타 브라우저에선 불투명한) 콘텐츠복호모듈(CDM)의 역할 중 일부를 투명하게 대신한다고 설명했다.
CDM은 콘텐츠를 통제하기 위한 기술이라 사용자에게 열려 있지 않다. 그 기술이 엄밀하게 DRM 기능만 수행하는지, 상업적인 목적에서 엉뚱한 일을 함께 벌이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제공을 원치 않는 사용자 시스템 정보에 접근하거나 그 식별 정보를 허술하게 보관하더라도 말이다.
보통 CDM은 폐쇄적으로 작동해서 사용자의 운영체제(OS)나 하드웨어 등 식별 정보를 마음대로 수집할 수 있지만, 모질라 샌드박스 안에서 돌아가는 CDM은 파이어폭스가 길을 열어 주는대로만 데이터를 받고 결과를 표시하게 된다. 사용자 하드디스크나 네트워크에 직접 접근할 수 없다.
샌드박스는 오픈소스로 공개되기 때문에 식별정보 처리, 스트리밍데이터 사용 제한, 사용자 콘텐츠 저장 제한 등의 과정을 CDM 개발사, 콘텐츠 제공업체들이 확인하고 사용자들이 그 투명함을 믿게 할 수 있다. 샌드박스 시스템은 파이어폭스와 함께 배포된다.
어도비에서 만든 CDM이 모질라 샌드박스 환경에서 돌아가는 첫 CDM 구현체로 제공될 예정이다. 어도비CDM은 과거 플래시 기술처럼 어도비 사이트에서 배포된다.
다른 업체의 기술로 제어되는 콘텐츠를 지원하려면 해당 업체의 CDM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은 기존 플러그인 기술을 연상시킨다. 그렇다고 파이어폭스 샌드박스가 타사 CDM으로 제어되는 콘텐츠를 못 보여주는 건 아니다.
윤석찬 리더는 모질라가 첫 구현체로 어도비를 선택한 거고, 샌드박스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식별정보를 활용하는 모든 DRM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다며 (DRM 솔루션 업체가) 오픈소스인 샌드박스 환경에 맞게 소스코드를 제공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샌드박스 방식을 통해 사용자가 DRM콘텐츠에 접근시 투명성과 사용자 결정권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지만, 모질라가 그간 거부했던 DRM을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함께 DRM을 반대했던 시민단체 전자프론티어재단(EFF)과 자유소프트웨어재단(FSF)에 등을 돌린 것처럼 비칠 수도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 14일 FSF는 모질라가 어도비와 손잡고 DRM을 위한 W3C EME를 공식 지원한다는 소식에 모질라의 발표에 매우 실망했다며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중요한 원칙을 타협해버리는 잘못된 처방을 내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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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질라는 지난해 10월 EME 규격을 지지한 W3C의 입장을 거세게 비판했던 적도 있다. 모질라는 EME API를 통한 상업적 DRM 기술을 쓰는 대신 워터마킹 콘텐츠를 배포하는 것을 대안으로 주장해 왔다. 워터마킹을 사용하면 DRM처럼 특정 기기에서 콘텐츠 사용을 제한하지 않는다.
미국 지디넷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제프 자페 W3C 최고경영자(CEO)는 DRM을 (웹표준화 대상에서) 배제하면 콘텐츠 소유자들이 그들의 콘텐츠를 인터넷에서 없애버리는 기회만 주는 격이라는 견해를 통해 EME 표준의 필요성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