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특정 기업 제품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정PC용 독자 운영체제(OS)를 만들 계획이 있다는 미래창조과학부 고위 관계자 발언이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관련 업계가 시끌벅적해지는 장면이 연출됐다. 정부 계획은 '한국형 OS 사업'으로 포장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부 계획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새로운 OS를 만든다는 계획은 단기, 저예산이 특징인 정부 SW사업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미래부에서 계획을 주도하고 있지만 정작 시행 주체가 될 안전행정부에서 호응할 가능성은 낮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상용화된 데스크톱 리눅스를 바탕으로, 일반 기업이나 개인도 가능한 변종 배포판을 제작하는 계획이 그나마 합리적이라는 평가다.
2일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미래부는 독자OS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최근 민관합동으로 2개 TF팀을 구성했고 몇차례 비공개 회의를 진행했다.
정부는 TF팀 각각의 논의를 통해 일명 '탈(脫)윈도 OS'를 확보하겠다는 것, '윈도가 아닌 PC에서도 돌릴 수 있는 전산 업무용 소프트웨어(SW)'를 만들겠다는 것, 2가지 계획을 함께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정부의 독자OS 개발 사업은 바로 저 탈윈도OS 확보 계획에 해당한다. 미래부는 연내 OS 개발과 기존 윈도 기반 행정PC 환경을 전환하는 단계별 계획을 갖추고, 하반기나 내년부터 R&D 사업을 통해 실제 개발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민관합동 TF팀 활동에 미래부와 일부 산하기관, 시스템 소프트웨어(SW) 제품을 보유한 국내 업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공개SW산업협회 등의 관계자가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만드는 게 아니라 쓰는 게 문제
현재 상황에서 행정PC용 OS 개발 사업은 중국의 '우분투 기린'처럼 유명 데스크톱 리눅스 배포판을 개조하는 형태로 이뤄질 전망이다.
국내 사업자의 데스크톱 리눅스 배포판을 기반으로 행정PC 용도에 알맞은 문서 편집SW 등 오픈소스 애플리케이션을 통합한 '정부용 배포판'을 만드는 방향으로 추진될 개연성이 많다는 얘기다.
이 경우 아시아눅스를 보유한 한글과컴퓨터와 정부지원 사업으로 '부요리눅스'라는 자체 배포판을 만든 경험이 있는 ETRI 내부 인력 등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번 미래부 행보를 무리수라 진단하는 시각도 있다. 이 사업은 OS 개발 이후 공무원들의 업무용 PC를 비롯한 정부 전산 시스템의 대대적인 교체 작업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정부 전산 인프라를 책임지는 주무부처는 안행부다. 따라서 미래부 행정PC용 OS를 도입하는 사업에는 안행부 예산이 필요하다. 문제는 안행부에 그럴만한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부부처에서 추진하는 SW사업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미래부는 일을 크게 벌여야 하는 입장인 반면 안행부는 예산 줄이고 사업을 축소하는 분위기라며 미래부가 아무리 독자OS를 잘 만들어 내놔도 안행부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집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안행부가 미래부의 독자OS를 대체 도입할 경우 상당한 예산을 지출해야 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대규모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이유는 2가지로 요약된다.
일단 기존 행정 업무용 PC OS는 대부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인데, 업무용 SW도 딱 거기에 맞춰 개발됐기 때문에 OS를 바꾸려면 업무용 SW도 뜯어고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피하려면 윈도 데스크톱을 가상화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100% 정상 작동을 보장할 수는 없다.
게다가 정부가 쓰는 행정 업무용 SW는 주민센터를 포함한 지방자치단체, 관공서 쪽에서 쓰는 것보다 훨씬 종류가 많고 뒷단에 연결된 인프라 구성도 복잡하다.
하나의 정부부처 안에서도 각 조직마다 쓰는 프로그램과 물려 있는 서버, 데이터베이스(DB)가 제각각이다.
소식통은 안행부가 집행 가능한 현실적인 예산 규모를 놓고 보면, 독자 OS 도입은 잘 해봐야 안행부 내부 몇몇 부서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을 전환하는 정도라며 연내 만들어질 내년도 정부 예산안 내용을 지켜보면 미래부 독자OS 개발 사업이 실효성 있는 얘기인지 판단할 수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독자OS 추진계획, 국방부식 '성동격서'?
전혀 다른 시각도 있다. 미래부의 의도가 따로 있다는 분석이다.
미래부를 포함해 각 정부부처는 오픈소스SW로 독자OS 개발을 추진한다는 다수의 언론 보도에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유력 정치인들의 인적사항이나 도덕성에 관련된 의혹 확산에는 민감한 태도와 대조적으로, SW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유독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업계 이해관계자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윈도와 오피스SW 독점 공급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를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 입장에서 독자OS 도입이 실현 불가능하다면 유일한 대안은 기존 업무용 SW를 유지하면서 윈도 및 오피스를 업그레이드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MS에 신제품 구매를 포함한 대규모 전산시스템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발주하면서 행정용PC OS와 업무용SW를 함께 교체할 수 있다. 이 때 대량으로 신규 윈도 제품 라이선스 구매계약을 체결하면 된다. 부분적으로 한국MS와 그 SW개발 파트너들의 도움도 기대할 수 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 정부는 MS와 신제품 윈도 구매 계약을 체결시 최대한 저렴한 비용을 들이려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여차하면 오픈소스SW 기반의 독자OS 개발을 추진해 MS같은 업체의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전례도 있다. 지난해 5월 국방부는 MS와 1년을 끌어 온 SW라이선스 사용료와 관련된 분쟁에 합의했다. 지난 2012년 MS는 본사차원에서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육해공군이 윈도서버와 윈도PC간 접속라이선스를 불법 사용중이라며 자체 추정치에 따른 추가 사용료 2천100억원을 청구했다.
당시 우리 군에서는 MS의 추산 비용이 일방적, 임의적이라며 합의를 거부했다. 그해 11월에는 국방부가 172억원 규모의 한컴오피스 제품을 기증받으며 MS같은 글로벌 SW 제품 수요를 단계적으로 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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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국방부 관계자도 한글과컴퓨터가 보유한 오픈소스OS 등 국산SW 사용 확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반년뒤 국방부는 결국 MS와 SW라이선스 사용료 관련 분쟁을 끝내고 사실상 화해했다. 한컴오피스를 대량 기증한 한글과컴퓨터의 오픈소스OS 도입을 검토한다던 국방부 관계자의 발언은 현실화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