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내로라 하는 IT기업에서 활약하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개발자들에게 이들의 스토리는 여전히 먼 나라 얘기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스탠포드나 UCLA 같이 미국 명문대에서 받은 석사학위 정도는 있어야 실리콘밸리 기업에 이력서라도 내밀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아예 틀린 말도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한국 엔지니어들도 유학은 실리콘밸리에 입성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추천한다.
그러나 능력을 입증해도 기회는 충분하다.
한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에릭 킴 '스트림라이저(Streamlyzer)'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어느 학교에서 뭘 전공했는지 아무도 안 물어본다”며 “'내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만 보여 주면 어디든 좋은 몸값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주대학교에서 전자공학 학사·석사를 마치고 한국에서 ‘웹게이트’라는 스타트업과 외국계 회사 한국법인에서 근무하다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튼 토종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는 한국을 떠난뒤 실리콘밸리에서도 최고 연봉으로 유명한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에 입사했고, 결국 직접 회사까지 차렸다.
최근 실리콘밸리 한인네트워크 '베이에어리어 K그룹' 멤버 자격으로 한국을 찾은 에릭 킴 대표를 만나 창업 스토리를 물었다.
그가 미국으로 간 계기는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R&D센터가 있는 미국으로 근무처를 옮기게 되면서다. 2006년 미국으로 취업 이민와서 커넥선트(Conexant), NXP, 트라이던트 마이크로 시스템즈(Trident Microsystems) 등 시스템 반도체 회사에서 SW엔지니어로 근무했다.
링크드인을 보면 그는 한국에 있을때나 미국에서 일할때나 모두 영상 재생과 관련된 기술을 주특기로 했다. 그는 넷플릭스에 입사하기 전까지 약 14년의 관련 경력을 쌓았다.
채용과정이 까다롭다고 정평난 넷플릭스에 입사할 수 있었던 비결도 영상 재생 기술 때문이었다. 한 우물을 파면서 쌓은 실력 덕이 크다.
그는 “넷플릭스는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을 뽑는 경우가 거의 없고 시니어급 엔지니어만 채용하는데 공석이 난 자리에 최고 수준 엔지니어를 찾지 못하면 계속 공석인 채로 남겨둔다”고 설명했다. 그가 채용된 자리도 해당 기술을 가진 사람들 찾지 못해 1년6개월간 그냥 비워두고 있었다고 한다. 또 “입사하기까지 총 11번 인터뷰를 봤고 그 때마다 면접관들의 100%동의가 없으면 통과하지 못하도록 돼 있었다”고 만만치 않은 채용과정을 소개했다.
“엔지니어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았다”는 그의 말처럼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대우는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입사 2년여 만에 넷플릭스를 박차고 나왔다. 신의직장같은 회사를 왜 나왔냐는 얘기를 수시로 듣는 모양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도 넷플릭스는 내부 경쟁이 아주 치열한 회사”라며 “이렇게 힘들게 일하던 어느 순간 내가 회사를 위해서만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일단 막연히 이런 건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쉬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창업을 하고자 했을 때 넷플릭스에서 경험은 그에게 엄청난 자양분이 됐다.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는 것부터 회사를 운영하는 것까지 넷플릭스에서 겪은 경험이 큰 영향을 줬다.
그가 스트림라이저에서 만들고 있는 솔루션은 시청자의 경험을 분석해주는 시스템이다. 어떤 동영상 서비스 회사가 스트림라이저 솔루션을 연결시켜 놓으면 사용자 기기에서 영상이 재생될 때 잘 되고 있는지 알수 있다. 스트림라이저는 자사 빅데이터시스템에서 동영상 서비스 업체 상황을 분석한 뒤 결과물을 알려준다.
스트림라이저 솔루션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로 업체들은 분석 결과를 웹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재생이 잘 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버퍼링이 발생했는지 같은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서 훨씬 복잡한 기준들이 마련돼 있다.
그는 “사용자들이 동영상을 볼 때 짜증 나는 상황이 다양하게 발생할 수 있는데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업자들은 잘 모르고 있고 왜 발생하는지도 모른다”면서 이런걸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가 이전까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에릭 킴 대표는 기존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과는 다른 DNA를 갖는 영상 플랫폼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는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 업체들은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치중했다면 우리는 여기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솔루션들을 추가해 플랫폼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것도 그의 우선순위에 올라 있다.
좋은 회사 만들기는 넷플릭스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는 “전세계 어느 회사도 은퇴할 때까지 책임져주는 회사는 없다며 복지 좋고 밥 잘나오고 것도 물론 좋은 회사의 조건이지만, 제일 좋은 회사는 직원들 몸값을 높여주는 회사다”고 정의했다. 그래서 직원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열정을 다해 일할 수 있게 모든 지원을 다 해주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그는 넷플릭스에 처음 입사했을 때 보스 허락 없이 업무에 필요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바로 주문해서 본인의 책상을 세팅했던 일을 소개하면서 “넷플릭스에는 연봉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많은데 컴퓨터를 사려고 프로세스에 따라 허락 받으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고민도 물론 있다.
우선 사람이다. 같은 비전을 공유한 사람들을 찾아 좀 더 '나이스'(Nice)한 팀을 꾸리는 게 큰 관심사다.
지금까지 꽤 순탄하게 좋은 팀을 꾸렸다고 한다. 그는 한국 사람이다 보니 한인 네트워크에 많이 의존하는 부분도 있다. 또 우리가 쓰는 오픈소스 빅데이터 시스템 메인 엔진을 만든 분이 우리 사업 비전만 보고 무보수로 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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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스타트업들이 사업의 전환기를 맞이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투자 유치에 대해서도 고민할때가 왔다.
그는 글로벌 서비스를 론칭해야하는 타이밍이 왔기 때문에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 펀딩을 추진 중이며 지금까지 반응은 좋은 편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