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한다고 실리콘밸리에 학생이나 정부 관계자들이 엄청나게 와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는 구글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가죠. 스타트업 한다면서 구글을 보러 가는 건 아니라고 봐요.
스타트업을 배출하러 요람을 찾았다면 밑바닥부터 훑어야 한다. 그런데 그 밑바닥을 찾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야 할지 처음 실리콘밸리를 찾는 이들에게 어려운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왔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며 부딪힌 현실을 날 것 그대로 전달한다면 도전하는 이들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개인이 아닌 팀의 이야기라면 신뢰도도 높다. 실리콘밸리 한인 모임 '베이에어리어 케이그룹(K그룹)'의 구성원들이 한국을 찾은 이유다.
25일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연 '실리콘밸리의 한인' 컨퍼런스에서 윤종영 K그룹 회장을 만났다. 실리콘밸리에서 나름의 성공과 실패를 맛본 K그룹 멤버들이 단체로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T 컨설팅을 하면서, 수많은 한인 기업을 봤죠. SNS, 앱 개발, 게임,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그런데 이 회사들이 그 다양한 장르를 모두 한 포트폴리오에 담더라고요. 공통점은 정부 주도 사업이라는 거예요. 정부에서 이게 대세다, 이러면 지원금이 그리로 몰리니까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것 저것 다하게 되는 거죠.
안타까운 부분이다. 못하는게 없는 기업은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법이다.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창업 신화들은 오랜 시간 한 우물을 파서 얻어낸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성공시킨 것들이다. 이들의 성공 바탕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정부 지원이 없었다. 대신 정부 간섭도 없었다.
윤 회장에 따르면 현지에서 창조경제로 실리콘밸리를 찾는 이들을 보는 시선도 엇갈린다. 더 큰 무대인 실리콘밸리로 한국인들이 입성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정부 주도하에 보여주기식 창업은 세금 낭비다. 제대로 된 창조경제라면 '창업 경진대회'보다는 창의적인 교육을 우선해야 한다. 이렇게 성장한 인재들이 실리콘밸리에 많이 진출한다면 한인들도 더 탄탄한 네트워크를 가질 수 있다.
윤 회장을 비롯해 이날 강연에 참여한 K그룹 참여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네트워킹'이다. 공감하는 사람도 많았다. 정부 지원도, 후원도 받지 않는 자발적 모임인 K그룹의 회원이 초기 30명에서 지금 2천600명으로 늘어난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미국에 가면 미국 사람이 되라고 하는데, 맞는 이야기지만 실리콘밸리에선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뭉쳐야 되고, 더 모여서 가야 해요. 유태인은 물론이고 중국, 인도계도 확실하게 서로 끌어줍니다. 한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영어도 약한데, 문화적 장벽을 넘기 위해서라도 네트워킹이 매우 중요하죠.
네트워킹이 탄탄해질수록 실리콘밸리를 민낯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화려하게 성공한 벤처 신화가 실리콘밸리라는 빙산의 일각이라면, 수면 아래 잠긴 생태계가 시사하는 바는 더 크다. 페이스북 이라는 앱을 하나 돌리는데 6천~7천명의 직원이 필요한 이유를 잘 생각해야 한국인도 벤처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밑을 보고 겪어봐야 알아요. 말로는 성공이 쉽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거든요. 기본 실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앱을 하나 만들기 위해 그 회사들이 들이는 공이 대단해요. 페이스북도 앱을 만드는 직원보다, 데이터 분석 전공자들이 더 많아요. 메이저리그가 잘 되려면 마이너리그부터 만들어쟈야 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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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오랜 시간 미국에서 일했다. 대학 졸업하고 국내 대기업을 다니다 29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지금은 IT 컨설팅 회사에서 페이스북에 기술 경영 자문을 하고 있다. 때문에 그는 창업을 생각하는 대학생, 젊은이들에게도 우선은 부딪히고 도전하라고 조언한다.
실리콘밸리에 한국인이 더 많아져야 시너지도 생기고 네트워킹도 하고 힘도 생기죠. 대학 졸업하고 바로 올 돈이 없다면, 3~4년 일해서 번 돈으로 도전해도 돼요. 미국은 기회의 땅이에요(웃음). 학력보다는 실력이 우선인 곳이 실리콘밸리니까, 미국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도전을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