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만원 원음 재생기 “값어치 할까?”

아이리버 AK240 리뷰

일반입력 :2014/03/20 11:52

권봉석

“어떤 소리가 좋은 소리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귀가 아플 정도로 중저음을 올려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톡 쏘는 고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소리를 들어도 그 상황이나 컨디션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나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가 상대방에게는 단순한 잡음으로 들릴 수도 있다.

반면 “어떤 음원이 보다 원음에 가까운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MP3나 AAC, OGG 등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음원은 통계적으로 사람이 귀로 잘 구분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고주파수 대역을 걸러내거나 큰 소리에 묻혀서 잘 안 들릴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을 잘라내면서 용량을 줄인다. 휴대기기에 간편하게 많은 곡을 넣어다닐 수 있지만 분명 원음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리버가 지난 1월 출시한 아스텔앤컨 AK240(이하 AK240)은 ‘좋은 소리’보다는 음원이 품은 소리를 최대한 충실하는 데 초점을 맞춘 하이파이 플레이어다. 고급형 DAC를 두 개 내장해 좌우 소리 분리도를 높이고 최대 24비트, 192kHz 음원 재생이 가능하다. SACD에 쓰이는 음원 포맷인 DSD도 지원해 현존하는 거의 모든 음원을 재생할 수 있다.

의외로 무거운 본체

AK240 패키지 안에는 수제 가죽 케이스와 AK240 본체, 그리고 마이크로 USB 케이블만 들어 있다. MP3 플레이어나 스마트폰에 흔히 따라오는 이어폰도 없다. 물론 본체 가격만도 270만원이 넘는데다 구매자층도 음악을 즐겨 듣기 때문에 이미 즐겨 듣는 헤드폰이나 이어폰은 하나쯤 가지고 있을 법하다. 번들 이어폰이 있다 해도 장롱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므로 큰 문제는 아니다.

디스플레이는 3.31인치 AMOLED이며 해상도는 800×480 화소로 초창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비슷한 수준이다. 웹서핑이나 소셜네트워크 활용, 동영상 감상이 주된 용도가 아니라 곡명과 재생목록, 커버아트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이므로 큰 문제는 아니다. 터치 기능을 담아 곡 선택이나 설정 등 거의 모든 기능을 화면을 눌러 처리할 수 있고 화면 아래에는 초기 화면으로 돌아가는 홈 버튼을 달았다. 곡 넘김 버튼 등 재생을 제어하는 버튼은 왼쪽에, 볼륨 조절 다이얼은 오른쪽에 달았다.

크기는 가로 66mm, 세로 107mm로 한 손에 잡고 쓸 수 있을 수준이다. 케이스는 두랄루민을 깎은 다음 다이아몬드 커팅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렸고 뒷면에는 탄소섬유 소재를 썼다. 두랄루민과 탄소섬유 모두 가벼운 소재지만 제품 무게는 185g으로 상당히 무겁다. 음원 재생을 위한 각종 부품, 특히 재생 시간을 늘리기 위한 리튬폴리머 배터리(3,250mAh)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CD 400장 담아 들고 다닐 수 있어

AK240은 운영체제로 안드로이드를 썼다. 상단 알림바나 설정 화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PC와 연결했을 때 미디어 장치로 연결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처럼 구글플레이를 통해 추가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영상 재생도 불가능하며 음악재생에 집중했다.

FLAC 등 무압축 음원은 CD 음질의 경우 앨범 한장당 500~600MB를 쓰며 24비트, 48kHz로 만들어진 음원은 4분에 70MB, 60분에 1GB를 넘어선다. DSD로 만들어진 음원은 한 시간당 3GB에서 4GB를 훌쩍 넘는다. 이 때문에 넉넉한 용량을 갖추지 않으면 많은 음원을 넣어 다니기 힘들다. AK240은 256GB 플래시 메모리를 달았다. DSD 음원이라면 최대 64장, CD 음질 음원은 400장 이상 들고 다닐 수 있다. 왼쪽의 SD카드 단자를 이용하면 최대 128GB까지 용량을 늘릴 수 있다.

파일 전송과 배터리 충전, USB DAC 연결은 마이크로USB 단자를 이용한다. 파일 전송 모드를 이용하면 윈도 운영체제에서는 따로 드라이버를 설치할 필요 없이 탐색기 창으로 데이터를 복사할 수 있고 OS X는 ‘안드로이드 파일 전송’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용량 제한이나 파일 갯수 제한은 없지만 파일 이름이나 폴더 이름이 너무 길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USB 2.0 규격을 따라 용량이 큰 파일을 전송할 때는 속도가 떨어진다.

PC 메인보드에 내장된 사운드카드는 HDD나 USB 저장장치의 동작에 따라 잡음이 끼고 소리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AK240을 USB로 연결하면 디지털 방식으로 음원을 전송받기 때문에 잡음에 따른 영향이 적고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하는 DAC의 품질이 높아 같은 음원이라도 좀 더 나은 음질로 들을 수 있다. 윈도 운영체제에서는 따로 드라이버를 설치해야 하고 OS X는 드라이버 설치 없이 바로 쓸 수 있다.

PCM・DSD 방식 모두 재생 가능해

AK240이 재생할 수 있는 음원은 MP3나 웨이브 등 기존 PCM 방식 음원과 SACD에 쓰인 형식인 DSD 음원 등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손실압축된 음원은 MP3, WMA, OGG, AAC 등 널리 쓰이는 모든 형식을 지원한다.

무압축 음원은 WAV, FLAC, APE, 애플 로스리스 등을 지원한다. 재생 가능한 범위는 24비트, 192kHz까지이며 이 범위 안에 포함된 음원(24비트 48kHz, 16비트 44.1kHz, 24비트 96kHz 등)이라면 모두 원음 그대로 재생할 수 있다.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도 24비트 192kHz 음원을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AK240 뿐만 아니라 LG전자 G2,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 등 이를 지원하는 기기에서 재생 가능하다.

반면 DSD 음원은 소니와 필립스가 만든 규격인 SACD에 음원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형식이며 기존 음원과 압축 방식이나 재생 방식이 전혀 다르다. 가장 널리 쓰이는 DSD64 방식은 초당 282만 개의 샘플을 이용해 음원을 기록한다. 이 때문에 표현 가능한 소리 폭이 넓어지고 담을 수 있는 주파수도 최대 100kHz까지 높아진다. 이런 압축・재생 방식이 실제로 더 나은 소리를 듣는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있지만 녹음시 현장감을 살리는 데는 기존 PCM 음원보다 낫다는 의견도 있다.

문제는 이 DSD 음원을 재생할 수 있는 기기가 드물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제일 구하기 쉬운 기기는 플레이스테이션3이며 DVD-R에 DSD 음원을 구우면 ‘DSD 디스크’로 인식되어 재생 가능하다. PC에서 재생할 경우에도 DSD 음원을 변환 없이 재생할 수 있는 USB 방식 외장형 DAC과 별도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DSD 음원을 판매하는 곳도 찾기 드물다. AK240은 DSD 음원을 기기 내에 저장해 재생하는 방식과 PC와 USB로 연결해 재생하는 방식을 모두 지원한다.

좌우 분리도 높고 명료한 소리 위치

PCM 방식 무손실압축 음원(FLAC)과 DSD 방식 무손실압축 음원(DSF)으로 소리를 직접 들으며 평가했다. 평가에 이용한 리시버는 뱅앤올룹슨 A8(이어폰)과 소니 MDR-1R MK2다. 먼저 두 가지 음원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일반 PC나 스마트폰으로 음원을 재생했을 때보다 악기나 보컬이 맺히는 위치가 좀 더 정확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하는 DAC칩으로 고가형 오디오 기기에 흔히 쓰이는 CS4398 칩을 두 개 쓴 것, 그리고 좌/우 채널을 분리해 이 칩 두 개로 나누어 처리하는 탓이 크다. 적어도 휴대용 기기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무손실압축 음원이라 해도 16비트 음원과 24비트 음원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절대적 정보량이 CD(16비트 44.1kHz)는 초당 172.3KB인데 비해 24비트 48kHz 음원은 초당 288KB를, 24비트 96kHz 음원은 그 두배인 초당 576KB를 써서 소리를 재현한다. 이 때문에 48kHz, 96kHz, 192kHz등 샘플링 주파수에 관계 없이 좀 더 풍성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24비트 음원을 CD 수준인 16비트로 떨어뜨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음의 손실이나 변화 없이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상태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음원이 CD 음질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묻힌 악기 소리가 온전히 들리는 일도 경험할 수 있다.

AK240으로 DSD 음원을 재생할 때는 메인 CPU 이외에 DSD 신호를 해석하는 칩(XMOS)이 추가로 쓰인다. 기존 PCM 음원만 재생하다 DSD 음원을 재생할 때는 이 칩을 잠자기 상태에서 깨워야 한다. 이 때문에 1초 미만의 지연이 생기지만 다음부터는 지연이 생기지 않는다.

같은 음원을 기존 CD에서 추출한 16비트 44.1kHz FLAC과 DSD 형식으로 비교해서 들어보면 재미있는 점을 느낄 수 있는데, 현악기나 관악기가 남기는 잔향이나 여운이 보다 깔끔하게 살아난다. 공연 실황을 들어보면 현장감도 극대화된다.

가장 작은 음과 가장 큰 음의 소리 크기를 데시벨(dB)로 나타내는 다이나믹 레인지가 넓어지면서 갑갑함이 사라지는 효과도 있다. e-onkyo.com에서 구입 가능한 DSD 음원인 ‘MOON PHASE(Suara)’를 예로 들자면, 기존 CD에서는 후렴구에서 반주와 보컬이 한데 뭉쳐 상당히 듣기 괴롭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컬에 반주가 눌리면서 전체적으로 소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결국 소음 아닌 소음이 되며 듣기 괴로운 나머지 볼륨을 낮추게 된다. 하지만 DSD 형식으로 새로 만들어진 곡을 들어보면 이런 현상이 많아 사라진다. 프로듀서의 의도 탓인지 보컬이 전반적으로 강조되어 있는 성향은 여전하지만 보컬과 반주가 뒤죽박죽이 되어 피로감을 주지는 않는다. 코러스도 보다 명확하게 살아난다. 하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서 디테일의 차이를 찾아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며 중저음이 약간 가라앉는 느낌도 있다.

좋은 소리 들으려면 음원과 헤드폰에도 투자해야

AK240은 일반 소비자용 휴대용 기기에서는 최고급의 음질을 뽑아낼 수 있는 하이파이 플레이어다. 좌우 분리도와 음 재현도가 높고 특정 음역을 강조하거나 업샘플링하는 일 없이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물론 좋은 소리를 즐기고 싶다면 재생하는 기기 뿐만 아니라 음원과 이를 귀로 전해주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에도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 음원은 최소한 CD 내용물을 있는 그대로 추출한 FLAC이 바람직하며 헤드폰 역시 표현 가능한 주파수 폭(응답 주파수)이 넓은 제품을 골라야 한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보인다. 먼저 DSD 음원을 재생할 때 배터리 소모가 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DSD64보다 DSD128 포맷을 재생할 때는 3분에 1퍼센트 이상 배터리가 줄어들고 미약하지만 발열 현상도 볼 수 있다. DSD 음원을 내부 변환 없이 재생하기 위한 XMOS 칩이 가동되며 메인 CPU와 XMOS칩, DAC 2개 등 네 개의 칩이 한꺼번에 작동하면서 전력소모가 높아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또 FLAC 파일을 재생할 때 트랙별 제목과 재생시간을 담은 큐시트 파일(*.cue)을 읽어와 재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모든 트랙이 FLAC 하나에 담겨 있다면 이것을 푸바2000(foobar2000) 등의 프로그램으로 한 트랙씩 일일이 분리해 넣어 주어야 한다. 일부 24비트, 48kHz WAV 파일을 재생할 때 0.5초 가량 앞부분이 잘리는 버그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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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음악 재생 기능 뿐만 아니라 USB DAC 기능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한계도 보인다. AK240이 내장한 USB DAC 기능은 USB 2.0 규격에서만 제대로 작동한다. 그런데 DSD 포맷으로 만들어진 앨범 한 장의 용량은 대략 3GB에서 4GB를 오가는데 USB 2.0 인터페이스로 곡을 전송하다 보면 짧게는 7분에서 길게는 10분 가량 걸린다. 여러 곡을 한꺼번에 복사하고 지울 때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가격은 280만원 선인데 단순히 음악을 담아서 재생 가능한 기기 치고는 상당히 비싸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저장된 음악을 고음질로 즐기고 돌아와서는 USB DAC 기능을 활용해 고음질 음원을 즐기는 등 최대한 활용하겠다면 나름대로 본전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최상위급의 음원을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 제품의 진정한 의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