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은 이어폰보다 부피도 크고 거추장스럽지만 그럼에도 같은 가격에 더 나은 음질을 들려준다. 하지만 이어폰과 달리 헤드폰은 임피던스가 높다. 헤드폰 상품 정보에서 ‘옴’으로 표기된 것이 바로 임피던스인데, 음악 신호 안에 섞여 있을 수 있는 노이즈를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저음이 깎여 나가는 현상도 많이 줄어든다. 고급형 헤드폰일수록 임피던스가 높아지기 마련인데 대부분 300옴 이하다.
그런데 이렇게 임피던스가 높은 헤드폰을 연결하면 대부분 소리가 작아지거나 얇아지는 현상을 겪는다. 소리는 듣기 좋게 정돈되지만 실제 출력이 낮아지는 것이다. 물론 재생하는 기기의 볼륨을 올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무작정 볼륨을 높일수록 만족스럽지 못한 소리가 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의 출력이 고급 헤드폰이 가진 높은 저항을 제대로 뚫어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음원과 헤드폰 사이에서 소리를 증폭해 주는 기기인 헤드폰 앰프가 필요하다. 하는 일은 단순하지만 임피던스가 높은 헤드폰을 쓰기 위해서는 빼 놓을 수 없는 제품이다. 젠하이저 HDVA 600(이하 HDVA 600) 역시 고임피던스 헤드폰을 쓰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하이엔드 헤드폰 앰프다.
■금속 질감 인상적…인테리어 효과 ‘굿’
HDVA 600은 본체를 알루미늄 재질로 만들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전원을 넣으면 스위치 주위에 파란색 불이 들어오며 작동 상태 표시등도 파란색 고휘도 LED를 썼다. 볼륨 조절 손잡이도 금속 재질로 만들어졌고 내부의 가변 저항이 돌아가는 모습을 유리창으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입력 단자 전환 버튼을 돌릴 때 손에 오는 느낌도 적당히 묵직하고 볼륨 조절 손잡이를 돌릴 때 느낌도 나쁘지 않다.
HDVA 600은 상위 기종인 HDVD 800에서 DAC를 빼고 값을 낮춘 제품이다. DAC는 디지털 신호를 입력받아 귀로 들을 수 있는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PC 메인보드에 내장된 사운드카드는 내부 작동에 따라 잡음이 낄 수 있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은 대량 생산에서 원가를 낮추기 위해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HDVA 600은 소리를 출력하는 원본 기기의 DAC 품질에 따라 크게 소리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입력 단자는 아날로그 RCA와 XLR 등 총 2개이다. 3.5mm 헤드폰 잭을 통해 연결하고 싶다면 변환 케이블을 통해 연결하면 된다. 출력 단자는 전면에 헤드폰 잭이 두 개 있고 XLR(밸런스) 출력 단자가 앞에 두 개, 뒤에 두 개로 총 네 개다. 헤드폰 임피던스에 따라 게인을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는데 보통 앰프가 로우/하이만 조절 가능한 것에 비해 총 5단계로 세밀한 조절이 가능하다.
소비 전력은 9W에 불과하며 전원 케이블은 PC 전원공급장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구 방식이다. 남아 있는 케이블이 있다면 그대로 써도 잘 작동한다. 하지만 콘센트를 타고 들어오는 노이즈나 주위 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자파까지 막고 싶다면 차폐 처리가 된 케이블을 쓰는 것이 좋다.
■단단하고 명확한 중저음
HDVA 600에 맥미니와 넥서스5, 아이폰5s 등 다양한 기기를 이용해 재생해 봤다. 같이 연결한 헤드폰은 젠하이저 HD 650이며 50만원 전후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먼저 중저음은 헤드폰을 바로 기기에 연결해 들었을 때보다 훨씬 단단하고 안정적으로 변한다. 고음역대 소리도 상당히 정돈된다. 하지만 소리 성향은 음원을 따라간다. 특정 음역대를 강조하는 ‘착색’이 적어 젠하이저 헤드폰 이외에 다른 헤드폰을 꽂아 써도 큰 지장은 없다.
이런 성향은 음원 사이트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44kHz, 16비트 음원보다 24비트, 96kHz 음원이나 192kHz 음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반대로 일부 대충 만든 음원 역시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특히 특정 음원은 듣는 사람에게 피로감을 안겨 줄 정도로 형편 없어서 오래 들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이어폰으로 들었을때는 묻혀서 듣기 힘들었던 소리가 헤드폰을 통해 보다 명확히 들리면서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여기에 헤드폰 앰프를 거치면서 소리가 더 명확해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HDVA 600만 갖췄다고 해서 무조건 듣기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이 제품의 역할은 PC나 음향기기, 스마트 기기 등 음원에서 전달받은 소리를 키워 헤드폰에서 듣기 쉽도록 해 주는 것이다. 물론 일반 기기에 들어간 앰프보다 더 나은 성능을 보여 주는 것은 맞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진 음원까지 더 나은 소리로 바꿔 주지는 않는다. 또 헤드폰 앰프가 좋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귀에 소리를 전달하는 헤드폰 음질이 떨어지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소리는 좋지만… 비싼 가격 아쉽다
HDVA 600은 상당히 우수한 축에 꼽히는 헤드폰 앰프다. 고가 기기 뿐만 아니라 일반 PC나 스마트폰, 태블릿과 연결해서 들어도 균형잡힌 소리를 들려주고 착색도 적어 여러 헤드폰을 두루 활용할 수 있다. 굳이 단점을 하나 꼽자면 가격이다. HDVA 600의 가격은 230만원 전후인데, 헤드폰 앰프 기능 하나만 보고 이 정도 돈을 선뜻 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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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디오 기기의 가격을 일반 전자제품 가격처럼 가격 대비 성능으로 쉽게 평가할 수는 없다. 비싸도 마음에 안 드는 소리가 날 수 있고, 싼 기기를 사도 듣기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소리를 들으려면 헤드폰 앰프 뿐만 아니라 음원과 헤드폰에도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HDVA 600처럼 XLR・헤드폰 단자를 모두 갖추고 헤드폰 앰프 뿐만 아니라 USB DAC까지 연결해 쓸 수 있는 제품을 100만원이 안 되는 값에 충분히 살 수 있다. 남은 돈을 헤드폰이나 음원에 투자하면 더 나은 소리를 들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층 비싸게 매겨진 가격도 아쉽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HDVA 600은 16만엔(한화 약 170만원), HDVD 800은 22만엔(한화 약 230만원)에 팔린다. HDVA 600의 한국 가격인 230만원과 비교해도 60만원 이상 차이난다. 소리보다는 가격이 더 아쉬운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