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결코 받을 수 없는 애플의 각서 요구

두 회사 소송서 ‘反복제 조항’ 핫이슈로 부상할 듯

일반입력 :2014/01/21 11:22    수정: 2014/01/22 13:05

김태정 기자

“그동안 아이폰-아이패드 등을 베낀 것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 조항에 동의하라.”

애플이 최근 특허소송 합의 조건으로 삼성전자에 제시했다는 내용의 골자다. 삼성전자가 그간 구축해온 모바일 분야 기술력을 통째로 ‘표절’로 몰아가겠다는 전략이 숨어 있다. 이를 삼성이 받아들이면 “갤럭시는 아이폰의 표절작”이라는 애플의 주장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삼성은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했지만 애플의 제안이 오만하기 그지 없다며 분노하는 분위기다.

■“배상금은 깎아줘도 표절 인정은 받아내겠다”

20일(현지시간) 특허 전문 사이트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삼성전자에 이른바 ‘반(反) 복제 조항(anti-cloning provision)’ 동의를 요구해왔다.

두 회사는 미 법원 명령에 따라 다음달 19일까지 마무리 해야 할 양사 최고경영자(CEO)간 협상에 앞서 최근 실무급 논의를 시작했고, 여기서 ‘반 복제 조항’이 이슈가 됐다.

애플 변호인인 BJ 와트러스는 협상과 별개로 법원에도 이 내용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포스페이턴츠는 삼성전자로부터 받아 낼 배상금은 협상에 따라 줄일 수 있지만 ‘반 복제 조항’만은 양보 못한다는 게 애플 입장이라고 전했다.

애플의 이 같은 행보는 “삼성전자가 애플 제품을 베껴왔고, 앞으로 조심하겠다”는 항복 선언을 받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결국 삼성전자의 양보가 없다면 양사 간 특허 공방전은 향후 수년 더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법리 검토를 면밀히 진행 중”이라며 “회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삼성이 받아들일 경우 우려되는 사안들

가정이지만 삼성전자가 ‘반 복제 조항’을 인정할 경우 산업계에 미칠 여파가 엄청날 전망이다.

우선 삼성은 장기적으로 이미지 마케팅에 타격이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를 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송을 마무리하기 위해 애플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입으로 표절을 인정하는 셈이다.

또 비슷한 소송으로 애플과 다시 만날 경우에도 ‘반 복제 조항’은 족쇄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제품은 아이폰 표절작이라는 전제가 깔릴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가뜩이나 “카피캣”이라는 애플의 여론전에 고전해 온 터다.

향후 제품을 만들 때마다 애플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도 문제다. 제품 성능과 디자인 개선보다는 애플 제품과 최대한 다르게 만드는 데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특히 삼성 차기작을 놓고 “우리와 비슷하니 조항 위반”이라는 억지를 부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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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HTC의 경우 지난 2012년 11월 애플과 특허 분쟁을 끝내면서 ‘반 복제 조항’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HTC의 몰락했고 다는 아니지만 ‘반 복제 조항’ 영향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애플의 ‘반 복제 조항’ 카드는 자사에 최대 위협인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을 좌지우지하겠다는 뜻”이라며 “삼성전자에 이기면 다른 제조사들에도 칼을 겨눌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