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양치에 대한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하루 세 번 꼬박 꼬박 닦아야 하는 것도 모자라서 조금이라도 건성으로 닦는 날에는 어김없이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지금도 파블로프에 개 마냥 양치를 하면 입안이 상쾌해져서 기분이 좋아지기는 커녕 뭔가 영문 모를 스트레스를 받는다. 단지 이제는 철이 들어서 양치하는 습관이 들었을 뿐이다. 아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임플란트를 세 개나 할 정도로 치아 건강이 엉망인 점도 양치를 강제로 하게 하는 요인이다.
귀찮고 스트레스 받는 양치를 좀 더 재미있고 청결하게 해줄 수 있는 대안은 전동칫솔이다. 특히 치과 의사들이 권장하는 위아래로 칫솔질 하기를 아주 손쉽게 할 수 있다. 전동 칫솔을 한 번 써본 사람들은 그 매력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한다. 단지 일반 플라스틱 칫솔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가격도 많이 내려서 10만원 이하 제품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필립스와 함께 전동칫솔 양대 브랜드인 브라운 오랄비가 작심하고 값 비싼 전동칫솔을 내놨다. 오랄비 블랙 7000의 정식 판매 가격은 무려 27만원이다. 여러 할인행사를 통해 좀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일단 처음부터 비싼 가격임에는 이견이 없다. 카메라나 노트북에 플래그십 제품이 있듯 이 제품도 오랄비의 모든 기술력이 집약된 플래그십 전동 칫솔이기 때문이다.
오랄비 블랙 7000의 가장 큰 특징은 블루투스 지원이다. 칫솔과 함께 제공되는 액정 장치와 블루투스로 연결돼 양치 정보를 실시간 전송한다. 양치 과정에서 지나치게 압력을 가하면 칫솔에 붉은 불이 들어오고 싱글싱글 웃고 있는 액정 장치도 인상을 찡그린다.
양치가 끝나면 얼마나 잘 했는지를 별 숫자로 평점을 매긴다. 테스트 결과 평점에 굳이 목숨을 걸지 않아도 대체적으로 충실히 양치를 하면 최고 평점인 별 5개를 받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권장 양치 시간인 3분을 넘어 6~7분 이상 하면 평점이 다소 깍일법도 한데 그래도 별 5개다.
심지어 중간에 수차례 압력을 가해도 양치시간 3분만 넘기면 별 5개다. 양치 시간이 지나치게 짧지만 않으면 언제나 만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후하다. 좀 더 정교한 측정을 통해 올바른 양치 습관을 기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에 비하면 다소 부족하다.
전동칫솔 본연의 기능은 꽤 만족스러운 편이다. 양치 모드는 크게 6단계로 나뉜다. 일반세정, 정밀세정, 부드러운 세정, 미백, 잇몸케어, 혀세정 등이다. 모드에 따라 칫솔모가 회전하는 강도나 리듬이 달라진다. 특히 혀 세정나 잇몸 등은 별로 간지럽지 않으면서 깨끗하게 세정되는 느낌이다. 스스로 압력을 제어하는 기능으로 치아 및 잇몸에 부드럽게 밀착된다.
자신의 치아 구조나 혹은 취향에 맞게 다양한 칫솔모가 나오는 점도 좀 더 양치에 관심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마치 DSLR 카메라에서 렌즈를 교환하듯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칫솔모로 교체 사용할 수 있는 점이 재미있다.
충전은 요즘 스마트폰 분야에서 많이 채택되는 무선충전 방식이다. 전동칫솔 특성상 습기가 많은 욕실에서 감전의 위험 없이 대단히 안정적이다. 물론 이는 그간 나온 대부분 전동칫솔이 채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함께 제공되는 여행용 케이스는 튼튼하고 편리해 보이지만 조금 무거운 것이 아쉽다. 여행을 갈 때 들고가기에는 부피도 상당하다. 단기 여행이나 출장이라면 그냥 보통 칫솔이 좀 더 간편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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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블루투스 연결을 지원하는 김에 전용 애플리케이션이 함께 제공됐더라면 좀 더 활용도가 높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가령 자신의 블루투스로 연결되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본인의 양치습관을 기록할 수 있다거나 혹은 부모의 스마트폰과 연결해 자녀들이 양치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이 접목될 수 있다. 아직 오랄비 블랙7000을 스마트 칫솔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런 점에서 다소 부족하다.
그럼에도 플래그십 전동칫솔이라는 타이틀은 최신 전자 IT기기를 선호하는 직장인 남성들에게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담배나 술로 인해 망가지 치아 건강을 되찾고 미백과 같은 기능을 통해 만든 새하얀 치아는 좀 더 멋진 남성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무엇보다 오랄비 블랙7000은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된다는 만물인터넷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커져가고 있는 요즘 칫솔도 예외일 수 없다는 가능성으로 보여준 제품으로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