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텔스타, 위성통신시대 열다 ⑥화이트룸

일반입력 :2013/12/28 19:32

이재구 기자

9■벨연구소의 화이트룸에서 태어난 텔스타

1962년 3월 미 동부 뉴저지 크로포드 힐의 한 건물.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의 기자가 이곳을 찾았다. 안내를 맡은 로버트 셰넘 책임엔지니어는 환자가 누워있을 것 같은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병원의 수술실 같아 보였다. 점하나 없는 모자와 가운을 쓴 의사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벽은 티끌하나 없이 깨끗했다. 마루는 잘 닦여져 있었다. 병원 수술실과 다른 점은 수술대가 없었다는 것 뿐이었다. 벨연구소의 헬텔레폰연구소(Hell Telephone laboratories)였다. 병원 수술실처럼 보인 곳은 위성조립용 연구실이었다. 벨은 이 연구실을 ‘흰방(White Room)’이라고 불렀다. 이상하게 생긴 공모양의 물체가 진공관과 전기선으로 어지럽게 난 미로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빛나는 흰색 공으로서 트럭의 타이어 크기만 했다. 3,600개의 보석같은 사각형이 날렵한 표면 위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주변에는 작은 창문이 나 있었다. 커다란 위성 꼭대기로 솟아올라 있는 마스트에는 전선줄이 솟구쳐 나와 있었다.

로버트 셰넘이 말했다.

“이제 잘 보세요. 일단 떠나면 당신은 볼 기회가 없을 겁니다.”

창문을 가진 공모양으로 설계된 빛나는 물체, 그것은 텔스타(TelStar)였다.

이 실험용 위성이 설계 목적을 달성하려면 적어도 발사 1년 후까지 살아남아 줘야 했다.

하지만 위성 조립 작업자들은 위성이 어떤 우주재난의 피해도 받지 않고 10~15년 간 견딜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먼지 하나없는 가운을 입고 텔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지문얼룩조차도 위성을 오염시켜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엔지니어들의 관심사는 온통 먼지에 민감한 텔스타 부품의 안전성이었다. 심지어 회의 때에도 먼지가 날리는 분필 대신 씻을 수 있는 크레이용을 사용했다. 이들은 손을 씻고 보푸라기가 없는 타월에 손을 말린 후 진공 신발을 신고 힐사이드의 화이트룸으로 들어갔다.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맡은 조립작업에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 켠에서는 지상에서 무선으로 보내지는 명령 수신장치를 체크하고 있었고, 다른 한 켠에서는 두사람이 위성에 명령어를 보낼 부호발생기(code generater)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또 다른 곳에는 태양에너지를 받아 텔스타에 전력을 제공할 청색 솔라셀이 있었다.

한 엔지니어가 태양의 표면 온도보다 3배나 뜨거운 이온화가스 불꽃을 내는 플라즈마 제트스프레이 총으로 작업중이었다. 불꽃은 산화알루미늄 입자를 녹여 플라즈마를 발생시켰고 이는 텔스타를 둘러싼 패널 표면을 머리카락 10분의 1 두께로 코팅시켜 주고 있었다. 엔지니어는 알루미늄 재킷을 입고 귀마개를 착용했으며 용접용 후드로 열을 막고 있었다.

AT&T는 이미 3,000만달러를 텔스타와 지상중계기지국에 사용했다. AT&T는 나사와 독특한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었다. 나사와는 토르 델타 로켓을 새로이 발사할 때마다 300만달러를 지급키로 계약돼 있었다. 발사 실패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통신선진국 미국과 유럽의 업체들에게 국제통화의 최대 장애는 여전히 대서양이었다. 미국만 하더라도 케이블에 무선통신까지 포함해 봤자 겨우 550개 채널 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간 처리해야 할 국제전화 통화량은 400만통에 이르렀다. 1961년 한 해에만 대서양을 오간 통화량이 15%나 증가했을 정도였다.

앨톤 디키슨 벨연구소 전송개발 담당이사는 “지난 10년간 미국은 75% 이상의 환상적인 전화통화량 증가세를 보여 왔으며 통신업체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낮이나 밤이나 일해야 했고, 계속해서 전화라인을 증설해야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텔레비전은 또다른 문제였다. 하나의 TV신호채널이 600개 이상의 전화 음성신호채널을 잡아먹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대서양 해저케이블을 통해 유럽과 미국을 잇는 단 하나의 TV생방송도 할 수 없었다.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텔스타는 위성 위쪽으로 난 창문처럼 생긴 안테나 벨트에서 런던에서 오는 메시지를 우주에서 받아 뉴욕으로 되쏘아주게 될 것이다. 런던-뉴욕 간 거리는 1만1,265km에 이르렀다.

기자가 물었다.

“하지만 왜 위성으로 돌렸습니까? 라디오햄같은 단파무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까?”

그러자 디키슨이사는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단파채널은 이미 넘치고 있습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단파 무선통신은 거울처럼 무선전파를 반사하는 대기권상층부 전리층(ionosphere)을 이용해 지구 상의 한점에서 보내진 신호를 튕겨낸 후 이 신호를 지구상의 다른 곳으로 보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태양풍이 불면 상황이 달라졌다. 태양의 흑점과 이에따른 자기장의 혼란은 단파사용 통신에 거의 재난 수준의 어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심지어 단파를 완전히 막기까지 했다. 이른바 델린저현상(Dellinger phenomenon)이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단파무선통신을 이용해 다른 나라로 무선전화 통화를 해 보면 통화음이 흐려지고 정전기가 발생하는 등 통신방해 현상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문제는 대서양을 지나는 수십만건의 통화를 신뢰성있게 중계해 주는 뭔가를 찾는 것이죠. 위성은 바로 그 역할을 해 줍니다.”

실제로 텔스타는 지구에서 쏘아지는 마이크로웨이브신호를 받아서 이 신호를 증폭한 후 지상에서 수신할 수 있는 강력한 신호로 받아 되쏘아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력은 위성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3,600개의 태양전지(slolar cell)가 공급할 예정이었다.

존 피어스박사가 보충 설명을 했다.

“1,000~1만메가(Mega)사이클 대역의 광범위한 무선주파수를 사용하는 위성은 기존 케이블이나 TV보다 더많은 전화채널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비유하자면 지방도와 초고속도로의 차이와 같습니다.”

77kg짜리 텔스타위성에 붙어있는 3,600개의 반짝이는 작은 사각형들이 태양빛을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솔라셀이었다. 이들은 비쌌다. 태양전지판은 단단한 합성 사파이어로 돼 있어 방사선을 막을 수 있었다.

텔스타는 살아남을 것이며 가장 심한 방사선 층으로 알려진 밴앨런대를 견뎌낼 것이다.

오닐 이사는 텔스타가 얼마나 오랫동안 날아가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 모델은 965~5,632km의 고도를 날아 지구를 2시간 40분마다 돕니다. 추후에는 9,656~1만1,265km 상공의 궤도를 날도록 할 겁니다. 50대의 텔스타가 지구를 돌게 되면 이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언제라도 2개의 대륙에서, 그러니까 사실상 언제라도 통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기자가 “신호가 도중에 끊기면 어떻게 하지요?”라고 묻자 그는 “2.5와트였던 신호출력이 1조 분의 1와트로 떨어지지요”라고 대답했다.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면 어떻게 이 신호를 잡나요?“

이 걱정은 기우였다. 피어스의 텔스타연구팀은 이 신호를 잡기 위한 준비도 마쳐 놓고 있었다. 이미 클로포드힐에서 시험을 마친 혼 안테나는 메인주 앤도버에도 설치되고 있었다. 수신기(Hearing Aid)인 혼 안테나시스템은 14층 높이에 무게가 340톤에 이르며 궤도위성에서 오는 아무리 작은 전파라도 노이즈를 제거시키고 수신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꼭대기의 안테나 무게만 18톤이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사각형 트럼펫 모양의 이 안테나기지국은 알루미늄과 철로 만들어졌다. 혼안테나에서 가장 경이로운 장치는 찰스 타운스가 만든 메이저였다. 이것은 텔스타 팀은 물론 외부사람들에게 놀라움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메이저의 심장은 합성루비로서 전기적 충격을 방해 전파(노이즈)없이 증폭시켜 줄 기기였다. 루비는 15cm 길이의 붉은 색을 띠는 얇은 수정계 광물로서 영하 235℃도인 액체헬륨 수조 속에서도 끄떡없이 작동했다.

텔스타는 25년 동안 벨연구소에서 개발된 16가지 기술개발 성과가 총체적으로 결합된 기술의 결정체였다.

텔스타가 궤도에서 전송하는 신호를 수신할 미국 메인주 앤도버 지상기지국은 전기간섭이 없는 곳인데다 대서양을 지난 위성을 지켜볼 수 있는 동쪽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었다. 그야 말로 최적의 안테나기지국 자리였다. 텔스타가 계획된 궤도상으로 들어오면 오닐이사는 팀을 이끌고 최초의 앤도버기지국 송수신범위내에서 송수신테스트를 할 예정이었다.

텔스타의 신호는 메인주 앤도버 외에 벨연구소가 있는 뉴저지 홈델(Holmdel), 프랑스의 브리타니 플뤼무르 바두기지국, 그리고 영국 콘월에 있는 군힐리 다운스(Goonhilly Downs)기지국에서 수신될 예정이었다.

텔스타에게는 지상기지국 수신범위 지역을 지나가는 20~45분밖에 송수신시간 밖에 없었다.

이 때 프로젝트팀의 작은 추적안테나는 텔스타를 재빨리 잡아내 주 안테나를 타깃으로 삼아 전송기 상에서 신호테스트를 하게 된다. 이어 여러 가지 전화 메시지 시험을 한 후 TV신호로 실험하는 수순이 준비돼 있었다. 제어실 TV모니터 스크린에 멋진 그림이 뜨면 텔스타가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뉴저지 크로포드힐 연구실에서 조립된 텔스타는 뉴저지주 윕패니에 있는 벨연구소와 머레이힐기지에서 테스트를 거쳐 플로리다 주 케이프 커내버럴로 옮겨졌다.

1962년 6월 둘째주로 예정된 발사를 앞둔 토르 델타(Thor Delta) 로켓이 기다리고 있었다. 텔스타는 축구공을 연상시키는 모양이었다. 72개의 면으로 나뉘어진 표면은 마치 거대한 보석처럼 보였다. AT&T의 오설리번이 이끄는 텔스타팀은 위성을 6대나 조립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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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률을 50대 50으로 보았죠.”

프로젝트 책임자인 오설리번은 훗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