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열린 개발자 커뮤니티 OKJSP 13주년 기념 컨퍼런스의 원래 부제는 ‘개발자 몸값 올리기’ 였다. 그런데 막상 행사가 열릴때는 몸값을 올리자는 메시지가 쏙 빠졌다.
대신 '개발자 몸값 안 올리기'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붙은 강연이 마련됐다. 고단한 세상인데, 몸값을 올리지 말자고?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따지고 싶은 분들도 있겠다.
이에 대해 강연의 당사자는 할말이 많다는 표정이다. 몸값이 개발자의 성공을 의미하는건 아니며, 몸값이 올라가면 개발자의 만족도는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까지 던진다.
개발자 몸값 안올리기라는 제목으로 자기 계발 세계의 키워드를 부정하는 강연을 한 주인공은 김창준 애자일컨설팅 대표였다.
기자는 컨퍼런스가 끝난뒤 김창준 대표를 다시 만나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돈과 만족도 그리고 개발자를 주제로한 의미있는 메시지가 나올것 같아서였다.
김창준 대표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시작하기 앞서 ‘왜 몸값을 올리려고 하는가’를 생각해보자고 했다.
바야흐로, 몸값이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는걸 부정하기 힘든 시대다. 그렇다면 몸값이 높을수록 성공적인 삶을 사는 걸까? 김 대표는 꼭 그렇진 않다고 말한다. 본인 스스로 느끼는 심리적인 만족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도덕책 들고하는 거룩하고 지당한 얘기처럼 들린다. 이런 메시지로 몸값 상승을 바라는 개발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점점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그는 몸값 상승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몸값이 올라 가는 만큼 행복이 계속 동반 상승하지 않고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한계효용이 발생한다는 것. (한계 효용)에 이르는 몸 값이 미국 중산층 가정의 평균 수익 정도인 5만달러 정도고 생활비와 GDP를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에선 4천5백 만원 정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연봉 4천5백 만원 이상부터는 몸값이 올라가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만족이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지출도 함께 커지기 때문에 만족은 상쇄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하면 급여가 4배 오른 만큼의 행복이 생기고 좋은 친구를 사귀면 3배 급여가 오른 만큼의 행복을 느낀다”며 행복한 삶을 위해 더 중요한 요소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또 몸값이 오른 후 삶 전반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행복하다고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나, 어제 얼마나 행복하게 보냈느냐는 질문에는 영향이 별로 없었다는 연구도 인용했다. 즉, 몸 값이 올라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고 해도 실제 하루하루 삶에서 더 많은 행복을 경험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결과다. 오히려 몸값을 올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경력상으로는 성공하나 개인적으로는 실패하는 현상에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했다.
몸값을 올리려는 노력이 경력에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는 특히 이직할 때 몸값을 올리는 데만 집중하다가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이직 한 이후 최소 5년은 지나야 이전 회사에서 하던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이직하는 회사서 제시하는 몸값만 따졌지 회사의 문화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아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전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던 인적자본(휴먼캐피탈)이 이직 후 끊어지는 것도 문제다. “실제 개인의 성과라고 생각하는 일도 실은 주변의 도움이 합쳐진 결과이기 때문에 인적자본이 끊긴 새로운 직장에서는 이전의 성과를 그대로 내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는 “월가에선 바로 근처 회사로 옮기면서 기존 고객들까지 모두 데리고 간 애널리스트가 이직 전보다 성과가 떨어진 것을 확인한 실험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직한 회사입장에선 몸값을 더 쳐주고 데려왔는데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실망하게 되고, 본인도 더 위축돼 성과를 내기 어려운 악순환에 빠질 위험도 있다.
김 대표는 “결론적으로 몸값을 올리려고 할수록 몸값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며 “객관적인 성공보다 스스로 만족감을 높이는 주관적인 성공에 초점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업무에서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업무를 디자인하는 ‘잡 크래프팅’을 소개했다. 주어진 업무에서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자유선택범위를 찾고 스스로 일을 설계하는 방법이다.
잡크래프팅을 통해 내가 하는 일의 난도와 업무 범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난도가 낮은 일을 할 때는 시간적으로 제한을 줘서 더 빨리 처리해본다든가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업무 범위를 넓혀서 해보는 것이 몰입도를 높이고 업무 만족도를 높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업무적으로 만날 일이 별로 없는 사람도 엮어서 만나보는 등 관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도 도움이 되고 자신의 업무를 루틴한 것으로 보지 않고 다른 각도로 바라보며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 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하루하루 만족하며 즐겁게 보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1%더 생산적이고 3배 창의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가 있다고 소개했다. 잡 크래프팅 같은 방법을 적용해 주관적인 성공이 먼저 선행된다면 객관적인 성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연봉이나 직위 같은 객관적 경력 성공이 직무 만족도 같은 주관적 경력 성공에 영향을 주지는 못하지만 반대로 주관적 경력 성공이 선행하면 객관적 경력 성공이 따라온다는 여러 연구가 있다고 한다. 즉, '행복해지기 위해' 몸 값을 올리는 전략보다 '행복해져서' 몸 값을 올리는 전략이 더 유효함을 역설했다.
관련기사
- 빅데이터 시대, 애자일 방법론이 통하는 이유2013.12.24
- 페이스북 개발자, 어느 나라가 가장 많나2013.12.24
-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영어의 힘2013.12.24
- 오픈소스를 넘어서...개발자의 재능기부2013.12.24
‘몸값 안 올리기’ 얘기를 듣고 보니 개발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것 같다. 김창준 대표는 개발자들이 이직이 수월하기 때문에 이직할 때 몸 값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아 이 이야기가 좀 더 의미 있을 것이며 몸값을 올리는 것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창준 대표의 관련 글을 더 보고 싶다면 ‘성공한 개발자와 행복한 개발자', '당신이 제자리인 이유'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