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텔스타, 위성통신시대 열다②통신위성 아이디어 계승자

일반입력 :2013/12/01 23:05    수정: 2013/12/24 00:23

이재구 기자

3■지구궤도 무선통신 아이디어의 계승자

...이 통신위성은 지상에서 쏘아보낸 마이크로파를 받아 증폭시킨 후 지상으로 전송해 줍니다. 수신한 신호를 수동적으로 지상에 단순히 반사시켜 주기만 하는 방식의 위성도 있습니다.”

1954년 10월 프린스턴대. 이마가 훤칠한 한 남자가 청중들을 향해 하늘에 떠있는 위성통신 기지국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우주에 대해서' 강연해 달라는 통신엔지니어협회(Institute of Radio Engineers)의 연례모임 강연회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강연이 우주여행같은 SF식 얘기여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회원중에 많은 수는 자신과 같은 엔지니어들였다. 잘못하면 웃음거리가 될 터였다. 그가 정한 강연 제목은 ‘궤도 무선통신 중계(Orbital Radio Relays)’였다.

청중들은 놀랐다. 그것은 그 때까지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아이디어였다.

“하늘에 위성을 띄워 통신중계기지국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니...”벨연구소에서 온 이 강연자는 오스트리아 출신 엔지니어인 친구 콤프턴이 발명한 진행파관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미 음극선과 통신장비,정보이론,트랜지스터 등에 대해 많은 글을 쓴 인물이었다. 윌리엄 쇼클리, 월터 브래튼, 존 바딘의 벨연구소 3총사가 만든 반도체에 ‘트랜지스터’라고 이름지어 준 주인공이기도 했다. 10대 이후 쭈욱, 그리고 벨연구소에서 일하면서도 과학잡지에 SF를 기고해 온 작가였다. 그는 J.J.커플링으로도 알려진 AT&T 자회사 벨 연구소의 연구이사 존 피어스박사였다.

그의 수많은 관심사 가운데는 세계최대 통신회사인 AT&T의 통신기지국 설비비용을 줄이는 방안도 빠질 수 없었다. 피어스박사는 그 대안을 위성에서 찾고자 했다.

1954년 미AT&T는 마악 프랑스통신회사 및 영국우정청과 대서양 횡단 케이블 구축작업에 착수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겨우 36개 전화채널을 위해 향후 4년이라는 긴 시간과 힘든 작업 속에서 실패의 부담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피어스박사의 눈은 대서양 해저가 아닌 지구 상층부 우주궤도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청중들을 향해 말했다.

“마이크로파는 지구의 곡률을 따라 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이크로파를 미대륙 건너편으로 보내려면 통신사들이 중계탑을 이용해 전국통신망을 구축한 것처럼 약 48km마다 기지국을 건설해야 합니다.해양이라면 150km마다 배에 중계기지국을 실어 연결해야 합니다....위성통신은 무인우주선이 궤도를 돌면서 지구에서 날아오는 통신(라디오, 전화 텔레비전등)전파를 중계해 다른 곳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보낸 신호는 우주에 있는 궤도 위성으로 전달되고, 신호를 받은 위성은 거울처럼 지구의 다른 쪽으로 그 신호를 다시 보냅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지구 궤도에 쏘아올린 정지위성에서 지상의 전파를 받아 단순히 반사시키거나, 이를 수십억배로 증폭시켜 지상기지국으로 전송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음성,텔렉스는 물론 TV화면까지 보다 경제적으로 받아볼 수 있을 것이었다.

피어스는 자신이 이 개념의 창시자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지구궤도를 도는 위성을 띄워 대륙을 무선통신으로 연결하자는 영국 작가 아서 C. 클라크의 구상과 같았다.

그럼에도 세계최대 통신회사 AT&T의 벨연구소 이사인 그의 말은 단순한 아이디어 이상의 무게감으로 청중들에게 다가갔다. 비록 그의 지적대로 몇몇 기술적 한계가 나타나고 있긴 했다.

■능동형과 수동형 위성에 대해 얘기하다

피어스는 이 날 연설에서 이른 바 능동형 통신위성과 수동형 통신위성의 장단점, 그리고 당시 기술수준에 따른 통신위성 실현 가능성에 대해 얘기했다.

“능동형 중계기의 경우 내부에 전력공급원을 가져야 신호를 방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성 사용의 이점과 함께 드러나는 커다란 단점으로 전지입니다. 위성에 전지를 싣는 것으로는 짧은 시간동안 밖에 통신을 할 수 없습니다.”

1954년은 벨연구소가 막 태양전지를 발명해 놓은 해였다.

존 피어스는 이미 2년 전인 1952년 어스타운딩 사이언스픽션에 ‘편지보다는 전보로(Don’t Write; Telegraph)‘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능동형 통신위성의 전파세기 계산까지 설명해 놓은 적이 있었다. 그런 터라 연설은 막힘이 없었다.

“지구와 달, 행성, 별까지 신호를 전송하는데 드는 통신신호의 파워를 계산해 봤습니다. 위성통신을 이용해 지구표면의 한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신호를 보내는 데드는 전력을 계산하는 것은 쉬웠습니다. 내 계산에 따르면 통신신호를 단순히 튕겨주는 거대한 풍선타입의 위성신호가 보내는 10억분의 1의 10억분의 1에 불과한 미약한 신호도 지구의 안테나로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나왔습니다. 무선신호 수신기,증폭기,전송기가 있는 저궤도, 그리고 3만2천km 이상 높이에 떠 있는 정지궤도 위성에 대한 계산도 해 봤습니다.....”

피어스는 강연에서 수동방식인 반사형 통신위성 컨셉트도 함께 제시했다.

“수동형 반사 위성은 내부 전력원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수동형 위성에 평평한 거울이나 반사기를 다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그 대신 공모양을 한 단일한 반사체의 장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름 31미터짜리 풍선형 위성이 지상 1천600km상공에 있게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성공적으로 메시지를 중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만일 지구궤도에 풍선형 통신위성을 띄운다면 이 수동위성은 지구 상공을 돌면서 지상에서 쏘는 전파를 반사시켜 줄 전리층 역할을 할 것이었다. 특정한 궤도에 배치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피어스는 이 풍선형 통신위성이 신호를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까지 최대한 반사시켜 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이 수동위성을 만들어 줄 물질로 알루미늄을 제안합니다”라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통신위성을 쏘아올린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상당히 우호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마틴 서머필드 프린스턴대 교수가 이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출판하라고 요청했다. 피어스는그는 강연내용을 수정해 로켓학회지 제트프로펄션(Jet Propulsion) 1955년 4월호에 게재했다.

피어스는 이 논문을 통해 결국 5년 후의 에코(ECHO)프로젝트를 정확히 예언한 셈이 됐다.

하지만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런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로켓을 만드는 사람들로부터 위성을 만들고 궤도에 배치하기 위한 정보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정부가 주목하다

2차대전 후 전쟁 후 트루먼 행정부는 통신위성 개발을 위한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존 피어스의 프린스턴 강연을 계기로 수많은 미국의 기관이 통신위성의 가치, 그리고 민간 및 공공분야에의 활용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점점 현실화와 가까워지고 있는 듯 했다.

당시까지 지구상의 어떤 국가도 이런 위성을 쏘아 올릴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다.

존 피어스의 강연이 이뤄진 지 반년이 지나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대통령에게도 이 아이디어가 전달됐다.

1955년 4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정보기관으로부터 미국이 조만간 고위도에서 지구를 엄청난 해상도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받기에 이르렀다.아이젠하워대통령은 기존 관행상, 어떤 나라도 자국의 영공을 통과하는 위성을 영공침범으로 간주하고 능력만 있다면 합법적으로 감시위성을 격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세계에 위성이 비행기와 다른 합법적 상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감시위성의 가치는 심각하게 제한받을 것이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세계 과학계는 아이젠하워에게 법적 궤도위성 비행 원칙을 세울 수 있게 해줄 방법을 찾아 제시했다.

1954년 세계 과학계는 국제관측년(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1957~1958) 동안 지구와 관련된 유용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과학실험용 위성발사회의를 소집했다. 미국 과학자들은 아이젠하워 행정부에도 이같은 도전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다.

아이젠하워대통령은 다른 나라에 앞서 감시위성을 띄워 올린 전례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미국과학위성을 IGY계획기간에 맞춰 발사할 방침을 정했다.

1955년 7월 29일. 제임스 해거티 아이젠하워대통령 공보관이 지구에 위성체를 건설할 계획에 대한 미국정부의 입장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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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국제 관측년에 지구 관측을 위해 지구를 도는 작은 무인위성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전적으로 과학적 목적에 사용될 것입니다...기술적 자문과 지원은 국방부에서 지구상층권을 연구해 온 과학자들에 의해 제공될 것입니다. 국방부는 로켓발사에 필요한 시설을 제공합니다....미국은 1957년 7월1일부터 1958년 12월 31일 사이에 국제지구관측년(IGY)에 즈음한 기여하기 위해 지구를 도는 작은 위성을 발사합니다. 뱅가드프로젝트가 해군연구소(NRL)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대기상층부 탐사로켓을 기반으로 만들어질 겁니다. 이는 비군사적인 과학적 실험에 사용돼 온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AT&T의 존 피어스가 생각하는 위성발사에 대해 미국정부의 공식적 지원을 받을 가능성도 훨씬 더 높아진 셈이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