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는 무언가를 처음 본 뒤 프로토타입으로 인지했다가 다시 관찰하고, 조금씩 바꿔가는 프로토타입 정제에 익숙합니다. 일단 한번 해보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는 게 중요합니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지난 26일 다쏘시스템코리아가 개최한 ‘3D익스피리언스고객포럼’ 특별강연자로 나서 이같은 말을 남겼다. ‘3D 사고, 혁신의 근원’이란 주제로 발표한 정재승 교수는 뇌과학 측면에서 경험과 혁신의 연결고리를 풀어내 관심을 받았다.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 얘기로 발표를 시작했다. 미국 자본투자의 40%를 빨아들인다는 실리콘밸리의 화수분 같은 창의력이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실리콘밸리 특징은 차고 창업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건 차고에서 창업하는 사람들의 다음 행동이에요. 그들은 머리 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차고 주변의 잡동사니를 모아서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더해 눈앞에 만들어봅니다. 신경과학자 입장에서 보면, 머리 속에서 근사하게 그려진 것이 막상 눈앞에 보였을 때 문제점과 현실적 장애가 단번에 보여요. 시각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정제하면서 더 나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는 거죠.”
상상을 눈앞에 만들어본다는 것은 3D 경험이란 말로 치환될 수 있다. 이 3D 경험이 더 훌륭한 성과를 낸다는 건 과학자들의 실험으로도 증명됐다는 정 교수의 설명이 이어진다.
그는 마시멜로 챌린지를 이용한 실험을 소개했다. 마시멜로 챌린지는 4명이 모여 18분동안 스파게티면 스무가닥과 실, 테이프로 탑을 만든 후 마시멜로를 꼭대기에 올려 붕괴되지 않으면 그 높이를 재는 것이다.
“포춘 50대기업의 CXO 임원을 모아 마시멜로 챌린지를 하게 했습니다. 결과가 재밌었습니다. MBA 학생과 로스쿨 학생이 만든 탑 높이가 유치원생의 탑보다 현저하게 낮았던 거에요. 그래서 이들 집단이 18분동안 어떻게 탑을 만드나 봤더니, 서로 인사하고, 오리엔테이션을 한 후 3분정도 계획을 짜고, 탑을 쌓아 18분만에 완성했습니다. 그러고 마시멜로를 올렸더니 탑이 무너지는 거에요. 반면, 유치원생은 처음부터 계획없이 무작정 탑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3분만에 첫번째 탑이 완성됩니다. 거기에 다리를 붙이고, 가지를 뻗어나가는 방식으로 2번째 3번째 탑이 나오죠. 그 결과 유치원생이 훨씬 더 높은 탑을 쌓게 됩니다.”
이 결과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린 논문을 통해 알려졌다. 정 교수는 유치원생들이 탑을 쌓듯 경험을 통한 아이디어 실험과 확장의 반복이 두뇌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렇게 상상, 논리적인 분석, 수학적 계산은 좌뇌에서 수행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생각을 시각화하고 만들어보는 데엔 우뇌가 많이 작용한다.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고 목업을 만들고, 수정하는 과정이 좌뇌와 우뇌 골고루 사용하게 하는데 기여한다는 설명이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뇌의 연관성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어진다.
“창의적인 리더의 뇌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뇌작동 모니터링을 위한 기계로 실험한 게 있습니다. 머리 속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반복될 때가 언제냐 보면, 유머를 주고 받을 때였어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뇌의 특정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평소 연결되지 않았던 부분들, 멀리 떨어져 있던 부분들이 연결되는 현상이 나타났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메타포, A와 B의 공통점을 파악해서 과감하게 연결하는 것이 뇌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이는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벌어집니다. 상관없는 것에서 공통점을 찾고, 그를 생산적으로 재배열하라는 슘페터의 혁신,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창조적 아이디어는 상관없는 걸 연결하는 것이며, 서로 다른 영역의 것 사이의 관계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 교수는 자동차 에어백의 작동원리와 게임기를 결합해 만들어진 ‘닌텐도 위’를 언급하며 이같이 결론 내렸다.
“느슨한 것, 상관없는 것을 거 연결하고, 동종업계의 영역 말고 완전히 다른 영역의 새로운 혁신을 보고, 내가 고민하는 문제의 솔루션 찾으려 시도하는게 창의적인 사람의 일반적 특징입니다. 이런 식의 상관없는 것을 연결하는 사고를 할 때 3D가 중요합니다.”
다음은 조나 솔크라는 소아마비 바이러스 연구자의 사례가 이어졌다. 조나 솔크는 소아마비치료제를 만들게 되는데, 연구 초반 피츠버그대학교 실험실에서 특별한 해법을 떠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조나 솔크는 연구실을 벗어나 이탈리아의 한 성당에서 휴가를 보내게 됐다. 그는 그 성당에서 문득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고, 그 후 백신을 개발했다.
“조나 솔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학계에서 솔크인스티튜트란 연구소를 지어줍니다. 학계는 노이스 칸이란 유명 건축가에게 연구소 건축을 의뢰하죠. 그때 조나 솔크는 노이스 칸에게 천장을 높게 지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연구실에서 도무지 안 떠오르던 아이디어가 성당에서 나왔는데, 천장이 높은 곳에 있었더니 사고 영역이 넓어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천장을 높게 지은 그 연구소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10명이나 나왔습니다.”
과학자들은 높은 천장과 아이디어의 연관고리를 검증하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3D 공간을 만들고 천장 높이를 달리하면서, 그 안에서 사람들에게 창의적 문제를 풀게 한 뒤 뇌를 촬영한 실험이다.
“놀랍게도 천장이 높아지면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3D 공간을 경험하고 우뇌를 활동시켜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놓는 퍼포먼스가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우리는 3차원에 살고 있지만, 천장이 한차원을 가로막는데, 천장을 높이면 경험하지 못했던 공간을 체험하면서 사고가 자유로워집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위해선 이처럼 추가적인 차원의 경험을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기사
- "아이폰식 경험경제, 전산업으로 퍼져"2013.11.27
- 3D 모델링 경험이 굴삭기 개발에 미치는 영향2013.11.27
- 포스코 "PLM이 제품 차별화의 힘"2013.11.27
- 불황 이긴 기업들의 해법 '3D익스피리언스'2013.11.27
좌뇌와 우뇌의 고른 활용, 그리고 2차원을 3차원, 4차원으로 확장시키는 과정, 그것은 상관없는 것들을 연결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어쩌면 3D에 대한 산업계와 세간의 열광은 두뇌 속 창의력 발현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인지 모른다. 정 교수는 이렇게 말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늘 갈구합니다. 좌뇌와 우뇌를 골고루 쓰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거나 상관없는 분야를 잇고, 다른 분야 혁신을 자신의 솔루션 스페이스로 가져오는 것이 창의적인 뇌에서 벌어집니다. 그들의 뇌는 3차원, 4차원일 것이고. 그들의 네트워크가 세상에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구요. 소비자를 빠르고, 편리하고, 값싼 제품 소비 넘어 근사한 경험을 제공하려 하는 산업계의 노력이 세상을 흥미롭고 풍성하게 만들 거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