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돈 많이 벌어요?
김준구 네이버 웹툰사업부장이 중고등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얘기다. 네이버 웹툰이 뜨고 나서, 강연 무대에 설 일이 잦아졌다. 열이면 열, 신기하게도 학생들의 첫 질문은 같았다. 아저씨, 돈 많이 벌어요?
아직도 만화가가 배 곯는다고 생각한다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다. 어떤 만화가들은 세상에 만화가 만큼 (삶의 질이) 좋은 직업이 어딨냐고 한다. 물론 인기작을 냈을 때 이야기지만, 그래도 상황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초창기 네이버 웹툰의 공략 지점은 이 무섭게 현실적인 10대들이었다. 다음과 파란이 먼저 웹툰을 시작한 상황에서 네이버는 후발 주자였다.
네이버는 블루오션인 1318을 공감과 개그 코드로 공략했다. 어른들은 절대 이해 못할 <패션왕>으로 신인 작가 기안84는 네이버 웹툰 스타 작가가 됐다.
■장태산 최규석 네이버 웹툰 두드린다
네이버 웹툰의 성과는 놀랍다. 매달 1천700만여명이 네이버에서 만화를 본다. 20대, 30대까지 저변을 넓힌 결과다. 10대를 대상으로 했던 개그 웹툰이 순정, 명랑, 추리, 공포, 심리, 무협, 판타지로 다변화 했다.
네이버 웹툰 편집장이 장르 중복 편집증이 있대, 라는 얘기도 들리더라고요.
김준구 부장은 사실 포털에서 일하는 IT 전문가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타이틀이 있다. 바로 웹툰 편집장이다. 작가들과 원고 방향을 논의하고, 마감하라 재촉하며, 싹수 있는 만화를 발굴한다. 딱 만화 잡지 편집장이다.
네이버 웹툰이 자리를 잡으면서 편집장인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웹툰 장르의 고른 분포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다양한 연령층을 웹툰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다.
예컨대 <낢이 사는 이야기> <나이스 진타임> <치즈인더트랩>은 20대 여성들에 읽힌다. 30대 이상 독자들은 신영우 작가의 <키드갱>에 홀려 웹툰에 입문한다. 베스트 댓글은 키드갱, 연재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다.
새로 연재하는 만화 조회수를 플러스 마이너스로 5만 단위까지는 맞춰요. 그러니깐, 조회수가 낮을 걸 알면서도 연재를 시작하는 만화가 있죠. 작품 라인업 다양성 확보를 위한 거죠.
중요한 이야기다. 네이버 웹툰 팀은 연령별 성별 분포도를 만들고, 비어 있는 공간에 맞춤한 만화를 찾는다. 때문에 인기 작가라고 무조건 연재하진 못한다. 장르가 중복된다면, 최소한 기존 연재 만화보다 2배는 재밌어야 한다.
그래서다. 김준구 부장은 최근 30대 이상 남성을 겨냥한 작품에 주목하고 있다. <라반>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를 그린 장태산 작가는 내년 상반기, 신작을 네이버에서 선보인다. 40대 독자들이 귀가 솔깃할 이야기다.
<습지생태보고서> 최규석 작가도 연말 새 작품 <송곳>으로 네이버의 문을 두드린다. <송곳>은 새내기 직장인이 노조 활동을 하며 커가는 모습을 담은 성장만화다. 네이버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색깔이다.
■만화가와 호형호제, 정색은 필수
김준구 부장은 시쳇말로 만화계 '미친 인맥'을 가졌다. 박재동 화백, 김동화 선생, 이현세 작가도 그를 너는 만화계 사람이라고 말한단다. 원로들 마음까지 잡은 것은, 그의 만화에 대한 열정을 빼면 설명할 길이 없다.
처음 선생님들을 봤을 땐, 'IT하는 사람이 뭘 알겠어, 그냥 또 장사하려는 거겠지' 생각하셨대요. 그런데 제가 '선생님들 만화 다 봤다, 어느 대사 어떤 장면이 어떤 느낌을 줬다' 했더니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네가 그 만화를 어떻게 알아? 너 정말 만화 좋아하는구나, 만화쪽 사람이구나' 하셨죠.
그가 평생 모은 만화 콜렉션은 총 8천800권. 남들이 10분이면 읽는 만화 한 권을 그는 한시간에 걸쳐 읽는다. 술을 입에도 못 댄다는 그는, 만화가가 부르면 새벽 6시라도 달려나간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이현세 선생의 <아마게돈>은 아이큐점프 연재본과 단행본 결말이 달랐고,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물량도 충분치 않았다. 이현세 선생조차 단행본 마지막권을 갖고 있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걸 김준구 부장이 갖고 있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한 권에 100만원 짜리다. 그 <아마게돈> 마지막권은 이현세 선생이 빌려간 상태다. 준구야, 나 좀 보고 돌려줄게 라면서.
시트콤 같은 일화도 많다. 웹툰이 인지도가 별로 없던, 그러니까 김준구 부장이 대리였던 2006년 겨울의 일이다. 만화가들과 송년회를 하고 싶은데, '김 대리'가 무슨 돈이 있겠는가. 결국 그는 만화가들을 집으로 불러모았다. 밥이나 한 끼 하자면서.
고생한 만화가들한테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집으로 불렀죠. 그 다음부터 제 와이프가 유명해졌어요. 작가들이 재밌어 한다며 코스프레를 하고 고기를 구웠거든요. 만화가들이 '김준구는 만화를 위해 태어난 애'라고 하더라고요. 와이프까지 코스프레를 한다고요.
마감을 앞두고 연락이 끊긴 작가를 잡으러 안 가본 동네도 없다. 부산, 원주, 청주, 광주. 참, 자유로운 작가들이다. 마감 안 하고 게임 하는 작가들 추적하는 건 일도 아니다. 웬만한 작가 게임 ID는 그의 머릿속에 있다.
그렇지만 그가 만화가에 무조건 헤픈 것은 아니다. 아무리 친해도 일은 일이라 강조한다. 웹툰 연재 계약을 할 때 그의 철칙은 '공과 사 분리'다. 심사는 '블라인드 테스트'다. 지금 네이버 웹툰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만화가 아니라면 친분으로 연재 계약은 배제하겠단 의지다.
■웹툰, 시장 넓혔다는 관점에서 봐달라
네이버 웹툰이 만화 시장의 파이를 키웠다는 것은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아쉽다는 목소리는 있다. 웹툰으로 독자들이 '만화는 무료'란 인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시장이 웹툰 하나로 좁혀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들린다.
김준구 부장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콘텐츠 시장에선 유료냐, 무료냐 보단 어떻게 해서 창작자가 돈을 더 버느냐가 중요하단 주장이다. 예컨대 인터넷으로 언제든 최신 영화를 볼 수 있지만 극장은 망하지 않는다.
웹툰으로 만화 시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봐줬으면 좋겠어요. 2차 판권 시장만 해도 되게 크게 열렸어요. 원소스멀티유즈에 네이버를 포함한 포털들이 새로운 규칙을 제시했죠. 기본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콘텐츠를 만들게 됐고, 여기서 드라마나 영화같은 또 다른 콘텐츠로 수익을 넓힐 수 있게 한거에요. 판권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작가가 100% 가져가죠. 그 어느곳보다 작가 수익이 우선이 된다고 자신해요.
그가 자신을 보인 부분은 더 있다. 웹툰 수익 모델이다. 총 9가지 모델을 네이버 웹툰 팀이 3년간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냈다. 최근 여러 매체서 선보이고 있는 '부분 유료화'도 그 중 하나다. 무료로 공개하되, 연재가 끝났거나 새로 올라온 게시물에 대해서 일부 유료 판매하는 수익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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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으로 비즈니스는 굉장히 긴 연구 기간을 거쳤어요. 제 자부심 같은 거죠. 3년간 테스트를 거쳤거든요. 그래서 지금 그 모델들을 여러 곳에서 쓰고 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또 작가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두 시간의 인터뷰에 지치지도 않았는지 일어서자 마자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누른다. 옆 방서 기다리는 작가와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가 아무리 대형 포털이라 하더라도,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거다. 일을 즐기는 정열맨을 누가 이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