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장비업체 시스코시스템즈가 주력 사업을 잠식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크(SDN) 기술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한 배경을 다룬 외신 보도가 나왔다.
31일(현지시각)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존 챔버스 시스코 최고경영자(CEO)가 조직내 갈등과 주 수익원을 위협할 가능성을 무릅쓰고, 아마존과의 10억달러짜리 계약 실패 건과 시스코에서 수행된 시장 분석 결과 때문에 SDN 투자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앞서 시스코는 아마존에 10억달러치 규모의 네트워크 장비 공급 계약을 맺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마존은 겨우 1천100만달러치 장비만 사들였다. 아마존은 시스코의 고가 장비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하드웨어(HW)와 SDN 기술로 충당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챔버스 CEO는 고위 임원들에게 만일 시스코가 SDN 시장에 진출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분석할 것을 지시했다. 이 경우 시스코 사업은 430억달러 규모에서 220억달러로 줄어들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기존 스위치 및 라우터 장비 사업을 위축시킬 것이란 얘기였다.
보도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챔버스 CEO는 만일 시스코의 주 수익원인 장비 사업이 SDN에 의해 잠식될 경우 증권가에서 난리를 칠 수 있음을 걱정했다고 표현했다.
일례로 지난달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에서 낸 121쪽짜리 보고서 제목은 '시스코와 소프트웨어정의붕괴(SDN의 네트워크를 붕괴로 치환한 말장난)'였다. 보고서에는 업계 예상대로 SDN이 시스코 장비 사업의 '가장 수익성있는 부분을 위협'할 것이란 진단이 포함됐다.
그간 시스코는 아마존과의 계약 건에 대해 별 언급이 없었지만 SDN 사업이 자사 핵심 수익을 위협할 거라는 관측을 부정해왔다. 지난해 4월 파드마스리 워리어 시스코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게재한 블로그 내용에 따르면 SDN이 시스코에게 6억7천만달러를 벌어줄 유망 사업이 된다는 기대가 회사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시스코는 2013 회계연도 147억달러 매출을 스위치 사업에서, 82억달러 매출을 라우터 부문에서 얻었다. 이 2개 분야를 합친 매출 비중이 회사 총 수입의 60%를 차지한다. SDN으로 기존 장비 사업에 닥칠 수 있는 위협을 상쇄시킬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회사는 자회사 인시에미를 통해 다음주 SDN 기술을 적용한 첫 제품을 내기로 했다. 현재까지 회사가 여기에 투자한 자금은 20억달러다. 시스코 출신 핵심 엔지니어들이 이끌고 있으며 시스코가 1억달러치인 90% 지분을 투자한 곳이다. 시스코는 향후 인시에미를 인수합병할 가능성도 있다.
SDN은 기업들이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하는 방식을 확 바꿔놓을 것으로 기대되는 기술이다. 과거 고가의 라우터와 스위치에만 탑재됐던 고급 네트워크 기술을 값싼 HW에 소프트웨어(SW) 방식으로 구현해 돌아가게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확산시 시스코의 고가 네트워크 장비 사업에 타격을 줄거란 관측이 짙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기업들은 여전히 라우터와 스위치를 사야 하지만, (SDN 덕분에) 그 구매 장비의 수량과 가격을 낮출 수 있게 됐다며 이 분야는 네트워킹SW 영역에서 나타난 초기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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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일 등장할 인시에미의 신제품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것인지 관심이다. 시스코의 고가 네트워크 장비를 사려던 이들이 대신 SDN 초기기업의 기술을 도입할 생각도 해봄직하다. 비싼 장비 수요가 많았던 뱅크오브아메리카, 피델리티, 시티그룹, 갭 등 대기업의 IT담당자들이 모여 결성한 '오픈네트워킹그룹(ONG)'이 자사에서 원하는 SDN 제품을 제안하고 있다.
장비 업체들이 이를 팔지 않더라도 구글과 페이스북처럼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인터넷 업체들은 직접 SDN 장비를 개발 중이다. 페이스북은 '오픈컴퓨트프로젝트(OCP)'라는 인프라 설계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과 공유할 SDN 스위치 관련 기술과 디자인을 만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