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수년 사이 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 자리를 두고 미국과 경쟁하는 위치에 올랐다. 전통적인 강국 일본도 수시로 1위 자리를 노크하는 상황. 한국을 제외한 동북아의 두 나라가 미국과 최첨단 IT기술의 상징에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세계 무대서 슈퍼컴퓨터의 변방이다. 매년 두차례 발표되는 전세계 슈퍼컴퓨터 순위 ‘톱500’에서 한국 슈퍼컴퓨터의 순위는 매번 하락한다. 올해 상반기 톱500에서 한국은 기상청의 해담, 해온 등이 91위와 92위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 4호기 타키온이 107위를 기록했다. 각각 전년보다 30위 가량씩 떨어진 것이다.
현재 세계 1위 슈퍼컴퓨터는 중국의 텐허2다. 미국의 세콰이어에 1위를 내준 뒤 3년 만에 선두를 되찾은 것이다. 중국 국방대학의 텐허2는 312만 코어에 최대 33페타플롭스의 부동소수점연산속도를 냈다. 텐허2는 2위인 미국의 타이탄 17페타플롭스보다 2배 가까이 빨랐다. 텐허2 이전 지난해 상반기 1위였던 텐허1A도 10위에 올랐다. 일본은 4위에 후지쯔의 K컴퓨터를 올렸다.
■ 중국 슈퍼컴퓨터 강세 요인 '정부 집중투자'
세계 1위를 다툴 만큼 발전한 중국 슈퍼컴퓨터의 비결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이달초 열렸던 ‘2013 한국 슈퍼컴퓨팅 컨퍼런스’에 참석했던 멜라녹스 APAC 시장개발디렉터인 리우 통은 중국정부의 집중투자계획을 1번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중국정부는 5개년 계획을 통해 세계 1위 슈퍼컴퓨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최우선에 두고 투자해왔다”라며 “모든 정부 슈퍼컴 프로젝트가 세계 1위 슈퍼컴 개발에 집중돼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수십년간 정부산하 연구기관과 대학교를 통해 슈퍼컴퓨터 개발에 집중투자해왔다. 중국의 슈퍼컴퓨터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건 2000년대 들어서다. 2001년 세계 10위에 도달한 다우닝4000부터 중국 슈퍼컴퓨터는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텐허2는 초당 3경회 이상의 부동소수점 연산을 할 수 있다. 정부와 중국 국방대학은 텐허2의 속도를 2015년까지 100페타플롭스에 도달시키겠다고 공언했다.
■ 中 '활용' 보다 '자산 확보'에 치중...비판 목소리도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 확보에 치중해왔다는 인상도 있다. 슈퍼컴퓨터가 국가의 IT위상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급되는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중국 내외부에서도 이 같은 외양에 치우친 투자에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꽤 있다.
‘2013 한국 슈퍼컴퓨팅 컨퍼런스’ 기조연설에 나섰던 IDC HPC 담당 어얼 조셉 부사장은 “중국이 슈퍼컴퓨터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실시한 국가별 투자수익율(ROI) 측면은 다른 국가에 비해 오히려 낮다”라며 “중국은 슈퍼컴 활용율보다는 자산 확보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활용보다 슈퍼컴퓨터의 양적 성장에 치중했다는 지적이다. 5년 내 각 분야별로 최소 17개의 페타플롭스급 슈퍼컴퓨팅센터를 설립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정부가 이 같은 지적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건 아니다. 기류변화가 이미 감지되고 있다.
리우 통 이사는 “최근 중국의 슈퍼컴 투자는 국가위상 측면에서 벗어나 애플리케이션으로 중심을 이동하고 있다”라며 “세계 1위 슈퍼컴은 만들어냈지만, 실제로 국가에 돌아오는 혜택이 별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대학교, 연구소, 기업이 공동으로 200개 가량의 고성능컴퓨팅(HPC) 연구커리큘럼을 진행하며 황발하게 활용방안 마련에 협력하고 있다”라며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대학교가 50개정도이며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정부 과제에 이름을 올리고 명성을 높이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HPC 활용을 위한 연구개발에 참여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를 보면, 중국 정부가 슈퍼컴퓨터에 대한 정부투자금을 어떻게 사용해 최고의 성과를 낼 것인가 고민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부의 명확한 계획과 함께 경쟁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존재하는 것이다.
치열한 연구를 통해 성과를 발표하면, 정부가 그 수준을 인정해 정부 프로젝트 일부에 수용하게 된다. 그럼 해당 학교와 연구진은 명성을 얻게 되며,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식이다.
한국은 사실 정부의 투자의지가 일단 명확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슈퍼컴퓨터 특별법을 제정했다고 하지만, 이후 후속조치는 별로 이뤄진 게 없다. 사실상 KISTI 홀로 활동하는 듯 보일 정도. 정부의 투자계획은 정치권의 선거철에나 조금 언급되는 수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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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러운 것은 국내 대형 제조기업을 중심으로 산업용 HPC 활용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상 톱500에 이름을 올린 슈퍼컴퓨터보다 산업계와 연구진들을 위한 저변확대가 더 중요하므로, 제조업계의 슈퍼컴 활용 확대는 고무적인 소식이다.
조셉 부사장은 “한국은 자동차, 메모리 등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어, 이 분야에 대한 슈퍼컴퓨터 활용도를 높여 제품 설계를 더욱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