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내기와 갑을병폐, IT로 풀자

일반입력 :2013/07/26 08:17    수정: 2013/07/26 09:54

밀어내기로 대표되는 갑을 횡포가 사회적 현안으로 떠올랐다. 가장 큰 폭발력을 보였던 남양유업 사태가 최근 본사와 대리점주 간 합의로 일단락됐지만, 아직도 국내 산업계 곳곳엔 드러나지 않은 갑을 갈등이 여전하다.

지난 5월 한 욕설논란으로 촉발된 남양유업 사태는 밀어내기라는 유통관행이 만들어낸 사건이다. 정해진 기간의 매출목표를 맞추려 제조업체가 대리점에 물량을 떠넘기고, 대리점이 다시 판매점으로 떠넘기는 식의 밀어내기는 비단 남양유업뿐 아니라 도처에 존재한다.

어느 산업분야든 대부분의 유통구조는 ‘제조사-대리점-판매점’ 형태다. 법적으로 각 사는 동등한 관계지만, 실제론 계층이 형성된다. 갑(甲), 을(乙), 병(丙) 등의 표현은 현대판 주종관계를 대변한다.

갑을관계에서 나타나는 온갖 불공정한 거래관행은 그 종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밀어내기는 그 일부로서 대표적인 예일 뿐이다.

■ 현재의 폐쇄적 재고관리체계가 문제

일부에선 밀어내기가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단계에 걸친 유통구조와 각 구성자의 재고관리체계가 근거로 설명된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폐쇄적인 시스템에선 언제든 밀어내기를 할 수 있다”라며 “만약 제조사, 유통사, 판매점의 재고가 항시 동기화되고 공유되면 전반적인 재고관리가 훨씬 투명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가령 의류업계에서 A라는 제조회사, A회사 제품을 판매점에 납품하는 B라는 유통사, 실제 소비자에게 옷을 파는 C라는 판매점이 있다. 이는 피라미드 형태로 아래쪽인 판매점으로 갈수록 그 수가 많다. C는 하나의 제품을 10명에게 팔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그리고 B유통사는 C와 동일 규모의 판매점 100곳에 물건을 공급한다. A는 B와 동일 규모의 유통사 10개를 갖고 있다.

정확한 수요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C는 B에게 한 제품 열 개를 주문하지 않는다. 더 팔릴 것을 생각해 15벌 정도를 주문한다. 이같은 회사가 100곳이라면 B는 한제품에 1천500벌의 주문을 받게 된다.

이 매커니즘은 B가 A에게 주문할 때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B 역시 갑작스러운 주문증가에 대비해 여유 재고로 1천800벌을 A에 주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시장수요는 1만벌이지만, 제조사 A가 생산해야할 물량은 1만8천벌이 된다. 수요예측이 맞았다면 문제없지만, 반대의 경우 8천벌이 밀어내기 물량이 되는 것이다. 반복되면 그 물량규모는 점점 더 불어난다.

현재 국내 유통구조는 각자의 재고관리가 폐쇄적으로 이뤄진다. 판매점은 대리점의 재고를 알 수 없고, 대리점은 제조사의 재고를 알 수 없다. 제조사 역시 대리점의 재고현황을 파악하지 않는다.

이처럼 폐쇄적인 재고관리는 자연스럽게 밀어내기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한다. 제조사의 영업담당자가 도덕적 책임감을 버린다면, 언제든 대리점에 억지로 추가주문을 압박할 수 있다. 실제로 남양유업의 밀어내기는 대리점의 주문을 제조사가 임의로 변경하는 형태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 재고와 대리점 주문량을 비교해, 재고보다 주문이 적으면 대리점에 임의로 추가주문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 IT활용한 '실시간·개방형' 재고관리 시스템 필요

재고관리시스템을 개방형으로 만들 경우 최소한 밀어내기의 암약을 방지하는 단초를 확보할 수 있다. 전체 시장의 재고 흐름을 볼 수 있으므로 일부에서 일어나는 불공정 관행을 쉽게 파악하는 게 가능해진다. 제조사의 불필요한 생산을 방지해 재고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같은 형태가 전무한 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전사적자원관리(ERP)시스템이나 실시간재고관리시스템(POS)이 효율적인 재고관리를 위해 활용된다. 그러나 실시간처리보다 배치작업처리가 더 많고, 시스템에 대한 전문적인 관리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재고관리가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결과를 만들어 폐쇄형 시스템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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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남양유업과 대리점주 간 갈등은 양측 협의로 봉합됐다. 양측은 ▲피해보상기구에서의 실질 피해액 산정·보상 ▲상생위원회 설치 ▲대리점 영업권 회복 등에 합의했다. 이에 더해 대금결제시스템 개선이란 기계적 대책도 합의됐다.

또 다른 IT업계 관계자는 “IT나 시스템이란 건 결국 쓰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라며 “그렇다고 해도 아예 부조리한 일을 용인하는 시스템보다 그를 최대한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데서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