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남혜현 기자>일이라는게 10년, 20년, 25년의 사귐과 다툼과 만남과 서운함이 녹아들면서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재경이랑은 20년 이상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기회만 되면 아키에이지 다음 것, 멋진 작품하는데 보탤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김정주 엔엑스씨 회장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뭘로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을까, 정주랑 얘길 많이 했다. 패키지 게임은 이미 너무 많아서 늦었다고 생각했고, 온라인 게임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그래픽을 넣은 첫 게임을 만든다고 이야기 하더라. 세상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프로젝트란 생각이 들었다. 그땐 (원작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김정주 대표가 굉장히 젊었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에 허락한 거 같다- 만화가 김진
바람의 나라 팀에 조인했을 때는 재경이 형은 이미 행방불명 됐던 상태였다. (송재경 대표가 짜놓은 코드를) 멋 모르고 넘겨 받았는데, 3만줄이었다. 그거 다 치기도 힘든 일이라 2년에 걸쳐 다 친 것 같다 - 서민 넥슨코리아 대표
삼성 그만두고 게임한다고 했을때 아버지가 노발대발 하셨다. 여자친구 불러다가 얘가 게임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물으시더라. 그때 여자친구가 지금 와이프인데, 하고 싶은거 해야 한다고 답했더니 결혼도 고민하시더라- 정상원 띵소프트 대표
국내 첫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를 만든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김정주 엔엑스씨 회장,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바람의 나라' 원작을 그린 만화가 김진, 정상원 띵소프트 대표, 서민 넥슨코리아 대표, 김경률 애니파크 모바일개발실장, 김영구 넥스토릭 대표 등, 지난 17년간 '바람의 나라'를 낳고 키워온 7인이 8일 제주 라온 호텔에서 바람의 나라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넥슨컴퓨터박물관 때문이다. 엔엑스씨는 이달 말 제주에 '넥슨컴퓨터박물관'을 개관한다. 국내 첫 컴퓨터 박물관인데, 개관과 함께 '바람의 나라'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약 50분간 진행된 이날 토크 콘서트에선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바람의 나라' 초창기 모습과 당시 개발 환경에 대한 소회가 주로 풀어졌다. 오랜 기간 함께 한 이들은 서로를 정주 아저씨, 재경이 형, 상원 씨 로 불렀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5년을 함께 한 세월이 호칭에 녹아 들었다.
사회는 15년만에 간담회에 나왔다는 김정주 회장이 맡았다. 그는 80년대 초 결성한 들국화가 다시 나오고 잘 나간다고 하더라라며 (비교하면) 우리는 젊은 밴드 느낌이 나지 않나라고 말했다. 멤버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는 벅찬 표정으로 여기 계신 분들이 용감한 창조자 개척자라고 표현했다.
옛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기업으로 꼽힌 '넥슨'이 서른명도 안되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당시는 개발자가 곧 유저고, 유저가 개발자였던 시절이었다. 사무실에 놀러왔다가 게임 개발에 합류하고, 바람의 나라에서 놀던 유저들이 직접 퀘스트를 만들어 건의하던 때다.
바람의 나라, 리니지의 아버지라 불리는 송재경 대표는 패키지 게임이던 단군의 땅, 주라기공원이 잘되던 때라 한달에 5천만원씩 벌고 있었다. 우리도 하면 당연히 그것보단 많이 벌지 않을까, 그런 소박한 꿈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소박한 꿈이 한국산 온라인 게임이 전세계적으로 톱을 먹게 된 몇 안되는 독창적인 것으로 발전했다는 감회도 밝혔다.
정주랑 같이 온라인 게임의 시발점을 끊게 된 것이 기쁘다는 그는 게임이 주류 문화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 대표는 요즘 애들 중에 게임 안하고 크는 아이들이 없다며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된 10년, 20년 후엔 게임이 당연히 주류 문화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람의 나라가 인기를 끌 무렵 넥슨을 이끌었던 정상원 대표도 김정주 회장과 만나 회사에 합류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같은 건물에 입주한 넥슨 사무실에 우연한 기회로 들어왔는데, 너무 신기했다며 조그마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대화하는 게임을 보고는 이런게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상원 대표는 넥슨에서 일하면서 직접 유저들을 만나 게임을 배포했던 경험도 털어놨다. 그는 바람의 나라 초창기 시절, 직접 김정주 회장을 졸라 재밌는거 만들자고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김정주 회장은 정 대표를 일컬어 회사가 100명, 200명이던 시절 몸무게로 회사를 이끈 인물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국내 첫 프로게이머로 소개된 박경률 실장은 고등학교 1학년때 PC 통신을 하다가 우연히 바람의 나라를 알게됐다며 NPC인줄 알았던 캐릭터가 진짜 사람이란 걸 알았을땐 세상에 이런게 되다니라는 생각에 굉장히 큰 충격과 공포에 싸였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관련기사
- 넥슨컴퓨터박물관 개관 "게임은 문화다"2013.07.08
- 인기 게임, 끝나지 않는 ‘오토’와의 전쟁2013.07.08
- 민효린·수지 이어 서든어택 女 누구?2013.07.08
- 넥슨, 서든어택 불법 프로그램 단속 강화2013.07.08
김정주 회장이 원년 멤버를 모으고, 과거 이야기를 계속 한 것은 바로 기억과 추억의 복원이란 박물관 고유 개념 때문이다. 박물관은 옛것을 모아 놓은 곳이지만, 죽은 곳은 아니다. 현재 진행형인 역사를 모아 놓고선 거기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낸다. 이들이 모였다는 것, 그리고 옛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한다.
바람의 나라에서 시작한 인연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송재경 대표는 세상 일이란 모르는 것이라 했지만 김정주 회장은 앞으로 기회만 되면 아키에이지 다음 게임, 멋진 작품을 하는데 보탤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며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