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원전 관리 부실로 야기한 전력 부족 사태를 벗겠다고 기업들의 목을 조르는 모습이다.
최근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 등으로 원전 3곳의 가동을 중단한 상황이 여름철 전력수요 폭증시기와 만나 대정전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미 지난달말 기록한 올해 전력예비율 10% 미만일수가 지난해 같은기간 41일보다 34% 많은 55일이다. 전력수급 경보 '준비'단계도 사흘 연속 발령됐다.
정부는 지난해 겨울 '10% 강제절전' 지침을 강화해 이번 여름에도 전력 다소비 업체에 대한 절전 규제를 시행할 방침이다. 오는 8월 5일부터 30일까지 계약전력 5천kW 이상의 다소비업체들은 오전 10~11시와 오후 2~5시 사이 전력사용량을 최대 15%까지 의무감축해야 한다. 한여름 전력소비 집중 시간대에 전력부하를 줄여 '블랙아웃'을 막자는 취지다.
5일 현재 IT관련 제조업계나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절전이나 블랙아웃 이후 대응책을 구체적으로 밝히기 이르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개별 사업장에 '몇 % 절전하라' 등의 가이드라인을 전달하지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지난해는 사무실 냉방 끄기 등으로 정부 절전지침에 따랐기 때문에 가동중인 생산설비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며 기업 차원에서 예비전력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고 대응시나리오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고, 시기적으로도 이르다고 말했다.
일설에 따르면 삼성은 반도체 공정의 전력소비를 낮춘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발전소 전력을 한계까지 사용하고, 계열사에서 조달되는 중대형 리튬이온 배터리로 보조 전력을 공급받아 쓴다는 얘기도 있다. 일종의 '꼼수'로 보인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배경은 제조업계 특성상 24시간 전력 공급이 요구되고 운영설비의 소모량 조절이 어려운 만큼, 정부 방침에 적극적으로 따르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고온의 용광로 등을 계속 달군 채 생산하는 철강과 유리 등 산업은 한시적 가동 중단과 조업에 따른 손실이 크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생산설비(라인)은 기본적으로 24시간 계속 돌아가게 돼 있고 (이유가 절전이든 정전이든) 멈춘 걸 몇초 이내에 재가동시키지 않는 이상 만들던 물건들을 모두 폐기해 손실이 생긴다며 정부가 라인을 줄여 생산과 수출에 차질을 빚을 정도까지 절전을 요구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례로 현대제철의 경우 하루 15% 절전을 이행하려면 생산설비의 전기 사용을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씩 중단이 필요하다고 알려졌다. 가동 중단하는데만 2시간, 재가동하는데에도 2시간이 추가로 소요돼 24시간 정상 가동 대비 생산량이 절반가까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제조사들이 공정을 중단해도 설비유지를 위해 들어가는 전력량을 보면 조업중일 때에 비해 20~30%정도 아낄 뿐이라며 국내 전력부족에 대비한 정부부처의 제조업체 절전 요구와 관련 애로사항은 반복되는 이슈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IT인프라 역시 기본적으로 24시간 무중단 운영을 전제한다. 국내외 사업기반을 둔 기업들의 서버, 스토리지 등 IT인프라를 담당하는 IDC 업체들도 일정량 전력 부하 줄이기에 동참하자는 정부 방침에 따르긴 애매한 상황이다. 전기 소모량이 IDC에 입주한 외부 고객사 또는 기업내 업무시스템의 자원 사용량에 달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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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클라우드컴퓨팅 인프라를 운영중인 더존비즈온 관계자는 IDC에서 대부분의 소비전력은 입주한 기업들이 IT자원을 쓰는 만큼 발생하게 된다며 자체 전력소비 효율을 높이는 방안으로 냉매 대신 외부 찬공기로 냉각을 시키는 '프리쿨링'과 고발열에 견디는 서버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하는데 여름엔 제약이 많다고 설명했다.
다만 IDC는 사업 특성상 전력부족 사태에 대한 기술적 대응체제가 갖춰진 편이다. 일반적으로 IDC는 발전소 전력공급을 2중으로 받는다. 한 쪽의 발전소에서 공급이 끊겨도 다른 쪽을 통해 운영을 지속할 수 있다. 2곳 모두 공급이 끊기면 자체 '배터리'를 통해 예비전력을 가동시키고, 지속하기 어려워지면 IDC 시설내에 둔 발전기를 돌려 1일 가량 버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