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차별 없는 사회...지니네트웍스의 반란

일반입력 :2013/06/01 07:58    수정: 2013/06/01 09:08

손경호 기자

대학 좀 늦게 가면 어때요? 하고 싶은 일 먼저 해보고 나중에 필요하면 가려구요.

지난해 10월 보안업체인 지니네트웍스에 입사한 20살 동갑내기 신입사원들의 말이다. 경기도 평택 소재 동일공업고등학교 전자계산기과를 졸업한 이들은 동기동창이자 입사 동기이기도 하다.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보안회사에 입사한 3명의 사회 초년생들을 만났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보안회사에 취업한 이들은 또래 대학 새내기들보다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꿈을 그리고 있었다.

노진수씨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지방기능경기대회 컴퓨터 정보통신 분야에 출전했다. 당시 수업을 빠지고 밤을 새면서 까지 준비했던 대회에서 6등에 그쳤지만 이때부터 보안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회사에서는 장비검수와 품질관리(QC)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방병호씨는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다. 원래부터 개발자가 꿈이었던 그는 직접 보안제품을 만들어 보는 것이 목표다. 현재 회사에서는 국가정보원 보안적합성 인증(CC인증)을 받기 위해 필요한 문서를 작성하고, 고장난 보안 장비를 수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창수씨는 아직 구체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 합격하고 나서부터 보안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개발, 경영, 프로젝트매니저 등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아직 뭘 하고 싶다고 정한 것은 없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회사 내에서 이창수 하면 ***을 제일 잘 한다더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것이 현재 그의 목표다. 현재 지니네트웍스에서 보안정책감사 솔루션 지니안CAM과 같은 장비의 테스트 등을 맡고 있다.

■보안회사 특성화고 학생들 채용하기까지

특성화고는 전문 기능직을 배출하는 학교다. 더구나 IT기술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한 정보보안 회사에서 고졸 학생들을 채용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업무 특성상 보안 기술에 대한 전문성이나 숙련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산학연계 맞춤형 인력양성 사업에 참여해 3명의 신입사원들을 채용했다. 이는 중소기업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해 현장수요를 반영한 전문 기능 인력 양성을 위한 사업이다.

이동범 지니네트웍스 대표는 처음 사업에 참여해 인력을 충원했는데 이들을 어떻게 하느냐가 앞으로 특성화고 학생들을 계속 채용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며 현재까지는 매우 만족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습경험, 자산 되더라

3명의 신입사원들은 오히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보다 실무적으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시스코 네트워크시스템개발자(CCNA), 마이크로소프트 컴퓨터 활용 자격증(ICDL), 정보처리기능사 등의 자격증을 따는 것은 물론 실제로 네트워크 장비를 다뤄보기도 했다.

노 씨는 학교에 다니면서 이론으로만 배웠던 시스코의 실습용 툴인 패킷트레이서를 세팅해 보기도 하고, 네트워크 지원을 위한 커맨드라인인터페이스(CLI)도 다뤄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스위치와 라우터를 구분하게 된 것도 직접 본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회사 생활에 대해서는 세 명의 신입사원 모두 만족했다. 이들은 드라마 직장의 신에 나오는 것처럼 부장이 종이 던지고 때리기도 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닌다고 입을 모았다.

■보안회사 지망 후배들에게...용꼬리 될래, 뱀머리 될래?

보안회사에 입사한 선배로서 이들은 같은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내놓았다. 노씨는 용꼬리가 될지 뱀머리를 할지를 확실히 정해야 특성화고를 나왔다고 해서 실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사회적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와 공업고 혹은 특성화고에 대한 편견이 있는 만큼 이를 깨기 위해서는 확실한 목표의식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방 씨는 정보보안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공부가 많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 네트워크 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며 (대학에 가는 것보다) 보안회사에서 배우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이 씨는 어정쩡하게 대학에 갈 바에는 사회 경험을 먼저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친구들도 보안회사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밝혔다.

대학으로 따지면 1학년에 불과한 이들은 아직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도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만큼 회사 선배들을 대할 때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방 씨는 연배 차이가 나다보니 단어 선택을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스러울 때도 있다고 고백했다.

방 씨는 이 회사의 김계연 연구소장을 롤모델로 꼽았다. 그는 회식 자리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김 소장님이 컴퓨터 부품을 조립하다가 네트워크 공부를 시작해 자수성가한 분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어울림정보기술에서 방화벽 개발에 참여하고, 야후 코리아 등에서 개발자로 근무하는 등 업계에서 잘 알려진 개발자다. 그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보안 등 IT업계에 몸 담아 왔다.

■체계적인 취업교육도 입사에 한 몫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취업을 위해 세 번의 캠프를 다녀왔다는 점이다. 이 자리에서 회사 생활에 필요한 예의범절, 전화 받는 방법, 객체높임법, 주체높임법 등은 물론 술 따르는 요령까지 미리 배운다고 밝혔다.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노 씨는 소매가 보이지 않도록 잡고, 잔을 부딪칠 때는 상대 보다 아래로 하고, 술잔과 술병이 닿으면 안 된다라는 등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배웠다고 말했다.

중소보안회사와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조합은 예상보다 훨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4년제 대졸자들이 취업난 속에서도 대기업만 선호하는 현실과 달리 기술이나 실무적인 부분에서도 흡수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평이다.

이동범 대표는 기업에 적합한 맞춤형 인재로 육성하기에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아직 순수한 나이라 구세대가 갖지 못한 신선한 시각과 통통 튀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고, 성실하고 순발력도 뛰어나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다만 아직 사회 경험이 전무한 상태로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 예절 등에 대한 기업의 노력이 필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는 대졸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회 초년생에게 해당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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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8.4%로 전체 실업자 82만5천명 중 6만9천300명에 달한다. 같은 달 취업준비자는 61만2천명 수준으로 전년동월보다 4만6천명이 증가했다.

여전히 높은 청년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10년 뒤 이들 새내기 신입사원들의 앞날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