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휴대폰 40년

일반입력 :2013/04/04 12:47    수정: 2013/04/04 23:20

남혜현 기자

휴대폰 탄생 40주년이다. 벽돌만한 크기의 휴대폰을 돌려 쓰던 시절을 지나, 이젠 초등학생도 개인용 PC로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세상이 됐다.

40년 전 휴대폰은 책보다 컸고, 벽돌보다 무거웠다. 개인이 들고 다니기 보다는 급할 때 나눠쓰는 제품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40년 만에 휴대폰은 필수품이 됐다. 전화 없이는 타인과 안부를 나누기도, 세상의 가치 있는 정보를 얻기도 힘들다.

3일(현지시간) 미국 씨넷이 역사적 순간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휴대폰의 역사를 소개했다. 감동적인 스포츠 우승 순간부터, 가슴 아픈 세계의 역사적 순간까지 사람들은 휴대폰과 함께 했다.

■1985년, 런던 마라톤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스포츠 경기에서 나온다. 각본 없는 드라마의 결과는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뉴스이기도 하다.

경기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만큼 많다. 런던 마라톤 창설을 주도한 크리스 브래셔가, 1985년 열린 마라톤 경기 중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아직은 벽돌폰...1988년

잘생긴 남자 선수가 환하게 웃으며 전화를 하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벽돌만한 전화기다.

이 선수는 1988년 캐나다 동계올림픽 남자 슈퍼G에서 우승한 프랭크 피카드다. 그는 이날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다.

■엄마! 나 우승했어!

초기 휴대폰의 기념비적인 사진들은 스포츠 경기에서 많이 나왔다.

1995년 11월, 월드컵 스키대회 우승자인 오스트리아 마이클 트리셔 선수(사진 왼쪽)가 전화로 가족들에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세번째로 결승지점에 도착한 알베르토 톰바 역시 전화를 하는 표정이 밝다.■1997년, 휴대폰 '개인'에 주목하다

휴대폰이 개인을 주목한 시점이다. 일본 교세라가 개인용 휴대폰 시스템(PHS)을 적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름은 '데이터스코프 DS-110'다.

데이터스코프는 IBM 칩카드를 넣은 컴퓨터의 일종으로, 175g이다. 컴퓨터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으며,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게 했다. 개인용 PC의 PCMCIA 타입II 슬롯에 연결해 무선 모뎀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교세라는 해당 제품을 일본 시장에 1997년 2월 출시했다. 가격은 5만엔. 우리 돈으로 약 46만원이다.

■AT&T와 TCI의 합병...이동통신의 지각 변동

미국 최대 통신사인 AT&T와 케이블TV 선두주자 텔레커뮤니케이션스(TCI)의 합병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휴대폰은 등장했다.

이동통신 시장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이 자리에서 마이클 암스트롱(사진 왼쪽) AT&T 회장은 새 휴대폰을 시연해 주목받았다. 존 말론 TCI 회장도 동석했다.

■지금은 정상회담 중

공산주의 이념 아래 49년간 쿠바를 통치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국가평의회 의장도 휴대폰을 사용했다.

이 사진은 지난 1998년 10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담'의 순간을 담았다. 정상회담의 두번째 세션에 들어가기 직전, 진지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카스트로의 얼굴이 인상 깊다.

■여기는 파푸냐, 타나미 사막 나와라

파푸냐 원주민인 데니스 마이노 씨가 오스트레일리아 타나미 사막에 있는 형제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다. 1999년 1월의 일이다.

■휴대폰, GPS-카메라를 만났다

지금은 쉽게 휴대폰으로 위치를 알 수 있지만, 이같은 기술이 도입된 것은 15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일본 세이코 엡손이 지난 1999년 도쿄에서 GPS와 디지털 카메라를 결합한 휴대폰 '로카이토'를 선보였다.

■방수폰, 시초는 1999년

1999년엔 여러 휴대폰이 선보였다. 첫 방수폰으로 기록에 남은 'R250프로'는 외부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마그네슘 프레임에 고무 성형으로 튼튼한 외형을 갖췄다.

R250프로는 또 GSM phase 2+ 기술과 GSM 프로를 결합한 첫 휴대폰이기도 하다. GSM폰 방식에 개인 모바일 라디오 기능을 결합한 기술로 주목받았다.

■중국, 휴대폰 최대 시장으로 부상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 행사에 두명의 여성이 노키아 모바일폰 홍보에 나섰다.

중국은 1999년에도 2천300만명이 휴대폰을 사용하는 거대 시장이었다. 2012년엔 중국내 이동통신 가입자 수가 10억명을 넘어서며 미국을 제치고 전세계서 가장 큰 시장으로 부상했다.

■삼성전자, 차세대 이동통신 'IMT-2000' 시연

차세대 이동통신 시장도 1999년 열렸다. 그 해 10월, 삼성전자는 이동통신전시회인 '텔레콤99'에서 밀레니엄 멀티미디어폰이라 불린 'IMT-2000'을 시연했다.

제품 상단에 박힌 '애니콜(Anycall)' 로고가 선명하다.

■휴대폰, 인터넷에서 길을 찾다

일본 노키아 모바일커뮤니케이션이 이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게 한 휴대폰 '도코모 노키아 NM502i'를 2000년 3월, 도쿄에서 공개했다.

이 회사 니엘 런드스톰 부사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이 휴대폰을 들어보이고 있다. NTT도코모의 i모드 서비스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휴대폰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언제, 어디서나... 웹 접속 시대

왑(WAP)과 웹(WEP)을 모두 지원하는 휴대폰. 소니가 선보였다. 2000년 8월 1일, 소니 마케팅 담당자 로살리 종이 프레스 컨퍼런스를 열고 'CMD-Z18'을 시연했다.

이 휴대폰은 무선인터넷의 두가지 방식인 왑과 웹을 동시에 지원, 사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휴대폰으로 사진 전송을

휴대폰에 탑재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친구에 전송한다. 노키아가 사진을 전송할 수 있는 휴대폰 '6610 GPRS'을 2002년 6월 소개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노키아 자체 행사에서다. 문자 메시지에 사진을 첨부해 보낼 수 있는 기능으로, 당시 참가자들에 큰 반응을 얻었다.

■노키아, 세계 첫 '비디오폰' 공개

노키아는 확실히 휴대폰의 명가였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가장 빨리 도입한 회사기도 하다.

2002년 9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노키아가 공개한 '3650 비디오 모바일 폰'은 사진을 넘어 동영상 촬영을 가능하게 했다. 사진 속 핀란드 노키아 부사장이 이 제품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터치다운, 관중들의 환호와 함께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승리의 기쁨을 전하는 기분은 어떨까.

2003년 12월 뉴올리언스 슈퍼돔에서 조 혼 선수가 터치다운의 흥분을 휴대폰으로 전하고 있다. 조 혼 선수는 뉴올리언스 세인츠 미식축구팀에서 뛰었다. 상대팀은 뉴욕 자이언츠.

■휴대폰, 그 오래된 미래

휴대폰 사용은 빠르게 전세계를 뒤덮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개발도상국에서도 휴대폰은 보편적인 제품으로 인식됐다.

고대 유적지에서도 휴대폰은 필수품으로 사용됐다. 오래된 옛 도시의 폐허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모습은 이질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여기, 한 이란인이 고대 성채의 잔해 위에서 전화를 걸고 있다. 2003년 12월 28일, 이란 케르만주 유적도시에 지진이 강타한 날, 폐허가 된 유적지에서다.

■디지털 카메라를 뛰어넘다

1천300만 화소 카메라를 휴대폰에 탑재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소니 에릭슨은 2004년 3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전시회 세빗에서 1천300만 화소 카메라를 탑재한 휴대폰 'S700'을 공개했다.

S700이 메모리 스틱 포트를 갖춰 컴퓨터로 사진을 전송할 수 있게 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휴대폰?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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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아이폰을 2007년 선보인 이래, 지금의 세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삶의 필수적인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