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로 쏘아올린 나침반,GPS⑮휴대폰속으로

일반입력 :2013/04/30 00:57    수정: 2013/04/30 14:01

이재구 기자

■E911 시행...GPS폰 확산 물꼬트다

“식당,호텔, 그리고 관광명소를 세이코 엡슨의 새로운 관심지역(POI Point of Interests)콘텐츠제공서비스로 찾아보세요. 다른 아이(i)포인트가입자들과 실시간으로 통화하고 위치를 확인하세요. 이메일에 데이터를 덧붙여서 위치정보를 보내세요. 로카이토단말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위치정보에 태그해 이메일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1999년 11월 8일. 일본의 세이코엡슨이 세계최초가 될 휴대폰을 광고하고 있었다. 그의 파트너인 미국의 트림블과 함께였다. 미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 소재한 트림블은 1984년부터 GPS칩을 만들기 시작, 250개 이상의 GPS특허를 확보했고 200개이상의 특허를 출원해 놓고 있는 이 분야의 강자였다.

세이코 엡슨은 6월부터 i포인트 네트워크인프라를 통해 서비스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12월이 되자 이 회사는 휴대폰에서 위치기반 정보서비스를 실현한 세계최초의 단말기 로카티오(LOCATIO)를 내놓았다. 이 단말기는 풀 컬러 디스플레이에 디지털 카메라, 트림블GPS수신칩, 내부 웹프라우저 등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위치(Location)'라는 영어 단어에서 'n'을 뺀 ‘로카티오(LOCATIO)’ i포인트서비스는 단말기 지도상에서 사용자들이 원하는 위치를 찾아주고 실시간 위치확인 기능을 제공했다. 심지어 지하 쇼핑몰이나 건물내부 등 GPS신호를 받기 힘든 곳에서도 PHS기반의 위치정보를 통해 대강의 위치, 즉 10~100m 이내의 거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출시 한 달전. 엡슨의 칩공급 파트너인 미 트림블사의 데니스 워크맨 부품기술 담당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세이코엡슨과 작업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습니다. 로카티오는 지금까지 나온 통신· GPS · 인터넷을 사용한 소비자용 단말기 가운데 가장 혁신적입니다.”

휴대폰 발상국 미국보다 앞서 일본이 GPS칩 방식의 휴대폰을 최초로 만들어 낸 것은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실제로 휴대폰과 GPS신호수신칩을 결합한 이른 바 GPS폰 시장은 발빠른 이 일본기업이 생각한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결정적 토대를 마련한 것은 미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마련한 긴급상황에 처한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한 강화된 911긴급전화 응대 대책이었다.

“통신사업자들은 무조건 발신자가 ‘911’로 전화를 걸었을 땐 비상콜센터담당자(PSAP)에서 발신자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서비스해야 한다.”

미국정부는 1994년 미연방통신위원회(FCC)의 위원회안건목록(CC Docket 94-102)을 법제화, 우여곡절 끝에 1999년 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무선통신 및 공공안전법(Wireless Communications and Public Safety Act of 1999, 9-1-1Act)’으로 불리었다.

목적은 화재, 범죄,재난,기타 긴급한 상황에서 공공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불필요한 과정을 생략하고 발신자의 위치를 즉각 확인해 보호하는 것이었다.

1968년 시작된 이전까지의 기본적인 911서비스는 무조건 전화건 사람이 911센터로 연결되도록 하면 됐다. 강화된 911법, 즉 E911은 이를 두단계에 걸쳐 보다 강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E911의 구축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1단계(Phase1)에서는 이통사들이 전화번호를 식별하고 전화를 건 인근기지국을 확인해 911콜센터가 요청한 지 6분 이내에 위치를 확인해 제공토록 해야 한다. 2단계(Phase 2)에서는 2005년 12월 31일까지 모든 이통사의 95%에 해당하는 가입자가 위치확인 가능한 단말기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통사는 ‘911’전화시 휴대폰 소유자의 위치를 300m 이내의 정확도로 경도와 위도까지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E911법은 일차로 모든 통신 업체들이 네크워크를 업그레이드해 자동적으로 9-1-1에 전화건 유선전화 번호와 위치를 911상황실에 뜨게 해 주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7년 12월 1일이 되자 FCC는 E911법 개정에 대한 개정을 재고해 달라는 수많은 의견을 받게 됐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1999년 10월 이 법안이 시행에 들어감으로써 GPS칩이 휴대폰으로 들어오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됐다. 미국 통신서비스사업자들이 사전 준비비용과 기술상의 어려움 등을 호소하는 가운데 2단계 E911서비스 제공은 결국 2005년 말까지로 연기됐다.

E911법에 따라 무선전화로 ‘911’을 눌러 비상전화를 걸었을 때 이통사가 긴급전화수신 콜센터에서 발신자 위치를 제공하는 방식엔 두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기지국전파를 이용해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전화 건 사람 근처에 있는 최소 2개의 무선기지국에서 전화 신호 각도의 교차점을 이용해 위치를 계산하는 방식(AOA), 그리고 세 개 이상의 무선기지국의 신호도달시간 차를 이용해 단말기 위치를 계산하는 방식(TDOA)이 있었다. 하지만 이 기지국을 이용하는 방식은 높은 산이나 건물에 막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또다른 방식이 GPS위성 수신기 칩을 휴대폰에 내장하는 것이었다. 손톱만큼 작아진 GPS위성신호 수신칩을 장착, 시간과 장소 등을 가리지 않고 위치를 알려주는 GPS폰은 마술과 같았다.

미국 2위의 이통사 AT&T도 처음엔 TDOA방식을 사용했지만 2006년이 되자 GPS폰 방식으로 바꾸기에 이르렀다.

미국정부의 E911법 시행의 의지는 강력했다. FCC는 모든 이통서비스 사업자들에게 “어떤 휴대폰으로부터 오는 911전화라도 위치를 확인해 주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다.

뉴올리언즈가 사상최악의 허리케인 피해로 끔찍한 여름을 보낸 2005년 연말이 왔다. 미국의 모든 이통서비스업체가 위치확인 가능한 휴대폰 보급률을 95%까지 올려야 하는 최종 시한이었다. 즉 모든 미국의 이통통신 서비스업체들은 자사의 어떤 가입자가 휴대폰으로 ‘911’을 누르더라도 즉시 그 발신자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일부 이통사들이 이를 지키지 못했고 FCC는 엄청난 벌금형이란 강력한 제재를 단행했다.

2007년 8월30일 미연방정부는 미 3위이통사 스프린트 넥스텔, 그리고 올텔, US셀룰러 3사에 총 283만달러의 벌금을 추징했다. 이들이 911법 상의 위치확인가능한 휴대폰 보급률을 95%까지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41세의 웃음띤 얼굴인 케빈 마틴 FCC의장은 발표문을 통해 긴급상황에 처한 미국민 보호에 대한 거침없고도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사실 스프린트 넥스텔의 GPS단말기 보급률은 81%에 불과해 여전히 정부의 요구수준에 못미칩니다. 사상최대의 벌금 133만달러를 추징합니다. 올텔은 84%에 달했다고 밝혔지만 17개월 지나도록 FCC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100만달러를 부과합니다. U.S.셀룰러는 89%의 이행률을 보였고 8개월 후에 95%이상이 됐습니다. 5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각 회사는 마감시한 유예를 요청했으나 FCC는 지난 1월 이를 기각했습니다.”

케빈 FCC의장은 “공공구조단체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손쉽게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FCC의 최우선 고려사항이었다”며 “이 같은 강력한 법집행은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가치있고 필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앤드류 모로 올텔 대변인은 즉각 “고객들에게 휴대폰을 바꿀수 있다는 점을 확신시키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휴대폰 교환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FCC의 일정은 고객들이 휴대폰을 교환하기 싫어하는 의지를 간과했다고 믿는다”며 볼멘소리를 보탰다.

스테파니 월쉬 넥스텔 대변인은 자사의 경우 E911법을 준수하기 위한 자사고객 위치확인작업에 있어서 엄청난 차질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2004년 7월 SW오류발생으로 인해 당시 넥스텔의 iDEN망을 사용하던 모토로라 휴대폰 470만대의 위치추적능력이 무용지물화 됐었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FCC의 의지는 확고했다.

최초의 GPS칩이 들어간 위치기반 서비스용 휴대폰 로카이토가 등장한 지 14년 째인 2013년. 시장조사기관 IDC보고서는 1분기 전세계 휴대폰 출하 규모 집계 결과 스마트폰 일반폰(피처폰)규모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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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전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12억대의 스마트폰 가운데 7억7천만대가 GPS기반의 단말기일 만큼 엄청난 확산이 이뤄졌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스마트폰 혁명시대로 진입한 이래 세계 휴대폰 시장은 애플-삼성 양대산맥이 주도하는 형국을 맞고 있다. 최초의 GPS기반 서비스를 제공한 세이코엡슨은 현재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그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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