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의 나는 그림...TV의 발명⑭SF맨의 TV혁명

일반입력 :2013/02/10 06:00    수정: 2014/04/21 22:55

이재구 기자

16■ 샌프란시스코맨이 가져온 TV의 혁명

“샌프란시스코 맨의 발명품 텔레비전의 혁명을 가져왔다.(SF MAN'S INVENTION TO REVOLUTIONIZE TELEVISION)”

1928년 9월 3일.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독자들은 이날 아침 특집헤드라인에서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발견했다.

이어지는 기사는 필로 판즈워스의 발명품에 대해 “청색 빛속에 있는 아주 이상하게 보이는 선이 이미지가 자주 얼룩지고 흐리게 보인다. 하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완성됐으며 이제 완성은 단지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기사는 “이 이미지 디섹터(Image Dissector)는 일반가정에서 주부들이 사용하는 작은 과일을 보관하는 병크기”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또한 전면 기사에 콧수염기른 파일로 판즈워스 자신이 수백 번 시험한 마술유리병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사진을 함께 실었다

하지만 판즈워스가 갑작스레 카메라텔레비전을 세상에 공개했음에도 사람들은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판즈워스도 모르는 새 조지 에버슨, 제시 맥 카거가 크로커, 페이건,비숍 등과 크로커 그룹의 투자금 철수를 협의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신문기사가 난 지 얼마 안돼 그린스트리트 202호의 2층 건물에 화재가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판즈워스의 모든 실험실 장비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포타슘같은 화공약품은 매우 휘발성이 높은 약품이어서 때때로 예고없이 폭발하곤 했다. 게다가 연구실 주변에는 항상 강력한 전류나 전압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돌아다니다가 뭔가를 잘못건드려 폭발을 일으킬 가능성도 늘상 존재했다.

그렇지만 판즈워스와 랩 갱(lab gang)은 열정을 가지고 그들의 성과를 재정리하면서 상업적 경쟁적을 가진 제 품을 만들기 위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듬해 1929년 그 어느 일로도 꺾이지 않는 랩갱들에게 뭔가 좋지않은 변화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1929년. 판즈워스는 그의 발명에 투자되던 자금줄이 이유없이 막혀버리자 변화가 임박했음을 알아차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판즈워스도 직원을 자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모든 마술을 만들어 낸 이른바 랩갱(lab gang)이 해고됐다.

판즈워스는 재무상황이 호전 되는대로 다시 고용하겠다고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크로커 그룹이 조용히 떠났다. 크로커그룹 지분을 사들인 조지와 제스는 텔레비전 연구소(Television Laboratories)라는 이름의 벤처를 다시 세웠다. 제스가 사장이자 최고경영자(CEO)로 선언됐다. 조지는 재무담당, 실질적으로 거대 지분의 가진 대주주인 판즈워스는 연구이사로 임명됐다.

크로커그룹을 정리한 제스 맥카거는 주식문제를 띄우면서 새로운 연구자금 마련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가 적임자였다. 그에게 텔레비전은 아주 중요한 광고거리였던 것처럼 보였다. '텔레비전'이란 이 단순한 단어는 당시 라디오가 주도하던 산업계에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투자자들은 이 전자로 이뤄진 놀라운 발명품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다. 텔레비전은 시작부터 스스로 팔기 시작했다. 맥카거는 어렵지 않게 자신의 주식을 팔 적절한 투자자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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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즈워스는 조심스럽게 열정을 되살려 갔다. 적어도 당분간 매각의 위협이 없어졌다는 것은 확실했다. 물론 상황이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발명을 둘러싸고 판즈워스의 TV시연은 사기야 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럼에도 파일로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