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찾아가는 동반성장’ 현장 가보니…

일반입력 :2012/11/21 17:40    수정: 2012/11/21 17:59

정윤희 기자

이제 ‘동반성장’이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대부분 ‘상생’을 모토로 내걸었다. 문제는 실행의지다. 남들 따라 내놓은 구호로는 공염불에 그치기 십상이다.

이런 가운데 KT가 직접 협력사를 찾아가 고충을 듣겠다고 나섰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정말 제대로 된 동반성장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다. 21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협력사 엠티아이(MTI)를 찾은 권상표 KT 구매전략실장(상무), 신금석 상무, 김선일 물자협력사팀장 등을 따라나섰다.

사실 대기업 임원이 직접 1, 2차 협력사까지 챙기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보통 협력업체와 함께 일을 한다고 해도 사업부서 실무자들 사이에서 얘기가 오가는 정도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갑을이 확실한 관계에서 제대로 된 건의사항이 나올까 궁금하기도 했다.

“걱정하지 마시고, 허심탄회하게 말해주세요. KT 욕을 해도 괜찮습니다(웃음). 동반성장을 위해 협력사 관계관리(SRM) 담당까지 따로 만들었는데, 상생이 안 되면 연말에 저희 목이 위태로우니까요. ‘구매는 예술이다’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권 실장이 던진 농담 섞인 말에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임기호 MTI 대표, 김도용 경도시스템 대표의 얼굴에서도 긴장이 가신 기색이다. 기다렸다는 듯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소 협력사에 물량 보장…건의에도 귀 쫑긋

MTI는 기지국 중계기 등을 KT에 납품하는 물자협력사다. 현재 ‘성과공유제’, ‘벤더코칭’, ‘경영닥터제도’ 등 KT의 다양한 동반성장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MTI의 경우 성과공유제를 통해 중계기 장비의 투자비를 절감할 수 있는 고출력확장장치를 KT에 제안한 후 개발에 성공해 현장적용을 시험하고 있다. 경도시스템에는 2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하는 벤더코칭 제도를 도입했다.

임기호 MTI 대표는 우선 KT가 대기업이 납품하는 물건의 절반을 중소기업이 생산토록 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건의사항과는 별개로)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한다”는 얘기다.

KT는 삼성전자가 만들어 공급하는 LTE 기지국 중계기의 50%를 MTI와 같은 중소기업이 무조건 생산토록 했다. 말로는 간단하다지만 실행은 쉽지 않다. 삼성전자의 협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임 대표)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엄청난 도움이죠. 물량을 보장해줌으로써 매출이 일어나게 하는 것을 넘어서 OEM 방식으로 개발, 제조를 하면서 실제로 대기업이 어떻게 제품을 생산하는지 노하우를 보고 배우는 기회가 되는 겁니다.”

예의바른 공치사가 나오는가 싶더니 날카로운 건의가 이어졌다. 기지국을 생산하는 당사자인 KT, 삼성전자, MTI가 한자리에 모여 커뮤니케이션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즉, 삼성전자의 물량 중 50%를 생산하다보니 KT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와도 얘기할 일이 많은데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양측의 눈치를 모두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업부서의 적극적 협조도 당부했다.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동반성장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실제 협력사와 일을 진행해야 하는 사업부서쪽의 도움이 없으면 일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토로다.

이에 대해 권 실장은 “사실 KT에서도 많이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라고 답했다. 실제로 협력사 아이디어 제출만 해도 자유롭게 접수토록 하고 있지만, 사업부서에 밉보일까봐 겁내는 회사가 많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협력사 아이디어도 SRM팀이 담당하고, 이후 함께 사업부서와 진행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했다.

신 상무는 “아예 처음부터 사업부서 담당자를 해당 프로젝트의 PM으로 매칭을 시켰다”며 “성과는 사업부서에서 가지고 가고, 구매전략실은 동반성장의 장을 열겠다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수의계약 강화”…우수품질 협력사와 장기 협력

MTI에 이어 2차 협력사인 경도시스템도 현실적인 건의사항을 내놨다. 기지국 중계기 외부의 함체를 만드는 업체다보니 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 상승폭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도용 경도시스템 대표는 원자재비용 비중이 전체의 60~70%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계약을 맺을 시점과 실제 제품을 만들 시점에 원자재 가격 변화가 클 경우 힘들 수밖에 없다.

신 상무는 “이달 말경 원자재 가격 상승을 반영한 구매계약 내용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며 “예컨대 원자재비용이 일정 비율을 넘을 때, 가격이 20% 이상 상승할 경우 깎아주는 방식 등을 계약에 반영하도록 생각 중”이라고 설명했다.

KT는 “수의계약 비율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도 내비쳤다. 단순히 입찰을 통한 가격경쟁만을 추구하다보면 우수한 품질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KT가 먼저 계약방식을 언급하자, MTI와 경도시스템은 반색하고 나섰다. 임 대표가 “파격적인 말씀”이라며 “그동안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말을 꺼내니 감사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품질을 추구하다보면, 비용을 과도하게 떨어뜨리기는 어렵다. 이 경우 가격입찰 경쟁에 들어가면 품질이 우수한 업체가 불리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권 실장은 “KT로서도 가격은 싸지만 품질은 자신 없는 업체보다는 우수한 품질이 확보된 업체와 일을 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며 “수의계약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투명성 확보 부분을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 적용해 비율을 높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KT는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총 30개의 협력사를 방문했다. 이달에도 20여개 협력사를 찾아가 현장 이슈에 귀를 기울였다. 향후에도 월 1회 2개사 이상을 방문해 직접 애로사항을 챙긴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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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사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전담 부서까지 만들었다. KT는 구매전략실 내 SRM 담당팀을 따로 만들어 약 15명의 인원을 배치했다. 그만큼 협력사와의 관계를 소중히 하겠다는 의지다. 김선일 KT 팀장은 “협력사의 입장에서 생각하다보니 회사 내부에서는 반은 KT, 반은 협력사라는 얘길 들을 정도”라며 웃었다.

권 실장은 “누가 보면 ‘이게 무슨 동반성장 과제인가’ 할 정도로 사소한 아이디어까지 검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단순히 거룩한 말에 끝나지 않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통해 협력사의 매출 향상, 비용 절감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