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는 최근 '정보소통광장' 사이트를 열어 정보공개법이 제한한 8개 항목외 모든 시정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시가 그 전자문서 파일을 '한글 문서(HWP)' 대신 PDF로 배포하기 시작해 눈길을 끈다. 일부 사용자들 바람처럼 시가 여타 공공기관보다 '더 보편적인 수단'으로 정보를 공개할지 지켜볼 일이다.
지난달 열린 서울시 정보소통광장 사이트는 조직별 행정정보, 공공데이터, 회의록, 업무추진비 등을 PDF 파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해당 문서는 여전히 한글 워드프로그램으로 생산된 HWP 파일이지만 담당자들이 게재 시점에 이를 PDF 형태로 바꿔 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글 워드프로그램에 HWP를 PDF 파일로 바꾸는 기능이 내장돼 있어 어렵지 않은 일이다.
PDF 파일은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열어볼 수 있는 방법이 한글 문서 형식에 비해 다양하다. 윈도와 맥 이외에도 리눅스용 뷰어 프로그램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대다수 모바일 운영체제(OS)는 기본 브라우저에서 웹상의 PDF 파일을 곧바로 열어주는 기능도 지원한다. 뷰어 애플리케이션을 따로 설치할 필요가 적다는 얘기다.
물론 11일 현재 정보소통광장에 게재되는 모든 문서가 PDF 파일로 배포되진 않는다. 예를 들어 설문조사 결과나 비용처리 내역 등은 MS 오피스 '엑셀'에서 다루는 XLS 파일로 내려받게 돼 있다. 또 공공데이터를 내려받을 수 있는 '열린데이터광장'에 등록된 '서울시 공공정보 개방에 따른 경제적 가치 측정' 연구 보고서같은 과거 자료는 여전히 HWP 파일로 제공된다.
■문서 열람권 보장하는 '열린시정 2.0', 이제 걸음마
운영 취지에 비춰볼 때 향후 정보소통광장에 올라오는 자료들은 HWP보다 PDF 등 추가비용을 필요치 않는 형식으로 게재되는 게 적절해 보인다. 가능하다면 이미 게재된 HWP 파일도 PDF 형식으로 바꿔 올리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듯하다.
사이트의 슬로건 '열린시정 2.0'에 포함된 '시민 알권리 10대 원칙'도 이를 뒷받침한다. 원칙 3번 항목은 시민은 누구나 서울시의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하여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이며 4번은 서울시는 정보를 생산, 공개하는 과정에서 시민이 정보를 편리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이다.
그리고 이같은 방침은 정보소통광장 범주를 벗어나도 유효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본지 확인 결과 정보소통광장이 아닌 서울시 공식사이트에 일상적으로 게재되는 행정문서중 입찰공고, 사업소개, 선정결과 알림 등이 빈번하게 HWP로만 게재된다.
일례로 시의 도시교통본부 교통정보센터는 지난주 '통합 교통관리 및 분석시스템 구축사업 용역공고' 제안요청서와 입찰공고문을 HWP 파일로만 게재했다. 이 경우 담당 공무원에게 계약관계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입찰 지망 기업체들은 원치 않아도 입찰공고문을 읽고 제안서를 쓰기 위해 HWP를 다루는 유료 프로그램을 구입해야 한다.
최근 이를 지적한 우분투 리눅스 사용자 소 모씨는 트위터로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에게 소원이 있는데, 서울시에서 유통되는 공공문서 포맷을 HWP가 아닌 PDF로 해줄 수 있느냐며 HWP 파일을 리눅스 OS에서 열어볼 수 없어서(그런다)고 하소연했다.
지난주 6일 오전 작성된 이 메시지(트윗)는 65번 재전송(리트윗)됐고 6명에게 '관심글'로 저장됐지만 박 시장의 답글을 받지 못했다. 작성자 소씨는 지난해 10월 우분투 한국 커뮤니티 회원들과 '웹, 문서 표준 준수의 필요성과 오픈웹 캠페인 방안'이란 주제로 공공기관이 배포하는 전자문서 형식에 보편적이고 장기적인 접근가능성이 중요하다는 내용의 세미나를 진행한 사람이다.
■PDF로 게재하면 안 될 이유…없다
담당자가 시 웹사이트에 HWP 파일을 PDF로 바꿔 게재하는 게 극히 어려운 일은 아닌 듯하다. 사이트를 방문한 시민이 담당 공무원에게 요구해 이미 게재된 HWP 파일을 PDF로 정정 게재시킨 사례도 있다. 지난 5일 시 웹사이트 '마을공동체' 소개란에 HWP로 공개됐던 '우리마을프로젝트' 제안설명회 자료집과 '마을미디어활성화 정책에 대한 점검과 과제' 토론회 자료집은 8일 소씨의 뜻에 따라 PDF로 교체됐다.
지난 10일 시 정보화기획단 정보화기획담당관실의 배상미 웹서비스관리팀장은 편집과 수정 작업이 필요한 신청양식을 게재시 담당 부서가 보통 HWP로 사용하는 것 같다며 웹사이트 자료를 가급적 PDF로 게재토록 권고하는데 강제사항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강제성이 없다는 사실 외에 각 부서 담당자가 소수 사용자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입찰공고를 게재한 부서 담당자에게 HWP 파일을 써온 이유를 묻자 (업무상 유관조직인) 대다수 학교와 기업 등 사업 입찰자들이 HWP 프로그램을 쓰는 걸로 알고 있다며 업무간 특정 문서 형식을 쓰라는 별도 지침은 없고 이 때문에 외부에서 불편함을 제기한 사례도 없었다고 답했다.
이처럼 공익적 성격을 띤 국내 기관이나 단체는 HWP 파일, 일명 '한글 문서'를 즐겨 쓴다. HWP 형식과 이를 다루는 워드프로그램 '한글' 개발사, 한글과컴퓨터에 따르면 사용처의 요구에 알맞은 기능과 성능을 꾸준히 지원해온 결과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세계 업무용 소프트웨어(SW) 시장을 평정한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피스가 국내기업과 경쟁중인 흔찮은 곳이다. 국내 SW업체가 외국 기업에 맞서 사용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칭찬할 일이다.
다만 HWP 파일 자체는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관공서, 국공립 학교 등이 '대외적으로' 쓰기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 파일에 담긴 문서 내용이 조직 내부에서 생산, 소비되고 끝나면 상관이 없는데 조직 특성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HWP로 꼭 써야 할 이유…없다?
근본 문제는 당장 HWP 파일을 읽거나 고치거나 쓰는데 특정 기업의 SW를 사는 것 외에 적절한 대체수단이 없다는 사실이다. 불편함이 소수에 국한되더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움직이는 공공 조직과 단체들이 오히려 HWP 파일을 적극적으로 생산함으로써 몇몇 기업의 영리활동에 앞장서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HWP 파일을 오프라인 환경에서 다루려면 사용자가 반드시 한글과컴퓨터가 만든 '한컴오피스'나 한글 워드프로그램, 또는 '한컴오피스 뷰어'를 써야 한다.
이가운데 윈도용 한컴오피스와 한글 워드프로그램은 유료로 판매된다. 무료로 제공되는 한컴오피스 뷰어는 유료로 판매되는 MS 윈도 운영체제(OS)나 애플의 맥 PC를 이미 갖춰야 쓸 수 있다. 데스크톱에 공짜로 사용 가능한 '리눅스'용 최신 한글 워드프로그램이나 HWP 뷰어 프로그램은 없다.
한글과컴퓨터는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 시장 비중이 작은 일부 사용자 환경까지 일일이 맞춰 제품을 개발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따라 지난달 시가 강조한 '열린시정 2.0' 추진계획이 실현될 때 구체화될 문서 게재 관련 세부 지침에도 관심이 쏠린다. 당시 시는 정보소통광장을 열며 기록관리법과 정보공개법에 준해 내년(2013)부터 국장이 결재한 문서를, 그 이듬해(2014)부터 과장이 결재한 사업계획서를 시민 누구나 볼 수 있게 한다고 공언했다. 필요한 기록물 관리시스템은 내년 정보시스템담당관실이 발주할 사업을 통해 구축될 전망이다.
시 관계자는 향후 구축될 시스템이 보관하는 원문공개용 행정정보 문서는 당장 어떤 규격으로 하겠다는 지침을 두지 않았지만 사실상 표준인 PDF로 제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관련기사
- 서울시, 건물·도로 등 공간정보 67종 공개2012.09.11
- 아이패드용 한컴오피스, 이제 아이폰도 OK2012.09.11
- 서울시 전자정부, 세계행정학회 협력2012.09.11
- 새해부터 HWP 보려면 한컴 허락 받아야2012.09.11
앞서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은 지난 3월 오픈소스 블로그 툴로 유명한 콘텐츠관리시스템(CMS) '워드프레스'를 기반으로 시 웹사이트를 개편, 5월 온라인 생중계라는 방식으로 취임식을 진행한데 이어 트위터를 일반 시민과의 대화창구로 쓰고 있으며 이달중 지리정보시스템(GIS)기반 지역현안 시민참여서비스 '커뮤니티매핑센터' 구축을 예고해 시정에 IT와 온라인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일각에선 기술에 무관심한 관행과 그에 종속된 행정을 펼쳐온 여타 정부부처나 공공기관과 대조적이란 평가도 내놨다. 향후 시가 진행할 정보화사업들의 세부 추진 방향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