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 타파’…KT 써드파티 정책 변화

일반입력 :2012/06/27 18:02    수정: 2012/06/27 20:22

정윤희 기자

“아무리 좋은 API를 개방하면 뭐합니까. 개발사들이 필요한 것이 아닌 것을요. 안 쓰면 소용이 없습니다.”

써드파티 입장에 선다. 그동안 ‘갑’으로 군림하던 통신사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개발사와 플랫폼 제공사가 함께 뛰지 않고서는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KT 역시 마찬가지다. 써드파티 개발사와의 공생을 넘어선 공진화를 내걸었다. ‘개발자 지원’이라는 기본 전략은 변함없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변화를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27일 메가뉴스 지디넷코리아가 개최한 제7회 CVISION 컨퍼런스에서 이현규 KT 통합플랫폼개발본부 상무를 만났다. 그는 이 같은 변화를 “과거에는 일단 통신사 입장에서 먼저 만들어놓고 ‘쓰세요’ 했던 것들을 이제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전략의 틀은 바뀌지 않았지만 초점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플랫폼 인프라 구축도 ‘통신사가 하는 일을 위해 구축’하는 것에서 ‘써드파티와 함께 하기 위해 구축’하는 것으로 내부 인식이 바뀌었다.

그는 “당장 외부에서 보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구성원들의 마인드 자체가 변하고 있다”며 “이런 변화 때문인지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활기차게 변했다”고 말했다.

KT의 ‘써드파티 중심’으로의 변화가 와 닿는 것은 이 상무 본인이 써드파티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987년 KT에 입사했다가 3년 만에 회사를 떠났다. KT 복귀는 21년만이다. ‘을’로서의 생활이 훨씬 더 길었던 셈이다. 그는 핸디소프트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이 상무는 모든 것을 독점하려고 했던 것이 최근 통신사가 어려움에 빠진 이유라고 지적했다. 써드파티를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함께 개발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생각에는 그의 써드파티 시절 경험이 작용했다.

“당시 느낀 것이 많았어요. ‘그 사람들의 능력을 인정해주면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항상 했죠. 다시 KT로 돌아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써드파티가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소프트웨어 제 값 주기’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최근에는 API, 플랫폼, 데이터 등의 자산을 개방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히 개별 기능을 오픈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정보 자산과 엮거나 빅데이터 솔루션도 제공한다. 개발자들이 언제든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이미 운영 중인 에코노베이션센터 외에도 클라우드 인큐베이터 센터 오픈을 준비 중이다. 벤처기업이나 개발자들이 실제로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사업적인 지원을 담당한다는 계획이다.

개발자와의 소통 모델로는 계열사 KTH의 컨퍼런스 H3 사례를 꼽았다. 경직된 세미나가 아니라 자유롭게 의견이 오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결과물이 얻어지는 모델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단상 위의 발표자와 아래의 참관객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H3의 분위기에 나조차도 놀랐다”며 “해외에서도 동일한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토론하듯 우리나라에서도 개발자와의 소통에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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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무는 현재 국내의 모바일 플랫폼 시장과 써드파티의 관계에 대해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KT뿐만 아니라 타 통신사, 포털사 가리지 않고 같은 방향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나를 위해 만드는 것과, 남을 주기 위해 만드는 것은 개발자의 눈빛부터 다릅니다. 결국 그들이 잘하는 것이 우리가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올바른 것이죠. 지금은 써드파티를 단순한 ‘을’로 보거나, 환경만 만들어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개발하고 같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