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비즈니스 생태계의 목적은 성장이다. 이것은 자연과학에서의 생태계와 달리 실제로 성장이 주요 목표인 기업이 참여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비즈니스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가 바로 시장의 성장 정도이다. 여기서 생태계는 성장의 딜레마와 진화의 필요성이 발생하게 된다.
과거 PC 산업의 예를 들어보자. 8비트 시절에 애플 사는 ‘Apple II’라는 제품으로 개인용컴퓨터(PC)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블루오션이다. 이 시기 스티브 워즈니악의 해커 기질로 Apple II의 기술 대부분은, 지금의 안드로이드처럼, 오픈소스같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가 공개돼 있었다. 그래서 애플 이외에도 다양한 회사들이 똑같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개방은 양면성을 가진다. 시장 전체를 성장시킬 수 있지만, 반대로 기술을 만든 애플은 경쟁사를 키운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후에 IBM은 PC 사업을 시작하면서 Apple II와 유사한 전략을 통해 PC산업의 초기 시장을 성장시킨다. 즉 ICT 업계에서 비즈니스 생태계를 성장시키는데 플랫폼 기술의 개방은 어느 정도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pple II 기반의 8비트 시장을 만든 애플이 다음 단계로 생태계 전체를 진화시키지는 못하고, MS와 인텔이 16비트 PC 시장을 주도하면서 생태계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이후 애플은 Apple II와 달리 매킨토시는 폐쇄적인 정책으로 다른 제조사를 생태계의 핵심 파트너로 끌어들이지 않았지만 IBM과 MS, 인텔은 다른 PC제조사와 기술 플랫폼 성격의 ISA버스 같은 시장 표준을 함께 사용하면서 이러한 비전을 공유했다.
그러나 애플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PC 시장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면서 복잡성 등으로 소비자 불만이 증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바로 이것이 애플에게 아이폰과 아이패드라는 새로운 ‘모바일 컴퓨터’의 원형을 만들도록 기회를 내준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PC 시장을 주도했던 인텔과 MS가 왜 모바일 컴퓨터라고 부르는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분야에서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는지 설명될 수 있다. 두 회사가 분명 모바일 컴퓨터라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애플과 구글만큼 혁신적인 수준으로 진화시키는데 실패한 것이다.
어떤 생태계를 규모 있는 회사가 주도한다 해도 그 생태계가 영원할 수는 없다. PC 생태계에서 보듯, 초기 시장의 성장 단계에서는 플랫폼의 점진적 개선이 있으면 되지만 성장에 한계가 오면 시장 파괴적인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플랫폼 제공자 이러한 진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생태계에서 써드파티와 소비자가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비슷한 모습이 벌써 스마트폰 업계에서도 보이고 있다. 구글은 아이폰에 대항하기 위해 보다 개방적인 안드로이드로 삼성전자 등 여러 제조사와 연합해 빠르게 시장을 성장시켰지만 이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마트폰 업계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오해를 살만한 모토로라 인수가 그렇고, ‘안드로이드 마켓’이 ‘구글 플레이’로 바뀐 것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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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구글TV에서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개방성은 분명 스마트폰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스마트폰과 스마트TV는 시장의 성숙도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패쇄적인 플랫폼 전략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장이 시작된 스마트폰 시장에서 구글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분명 이에 대한 반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필자는 여기서 하나의 가상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만약 구글 없는 안드로이드 연합이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모토로라를 제외한 주요 제조사와 통신사가 가칭 ‘네오드로이드(Neo Droid)’라는 연합을 만들어 구글을 제외하고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공유하는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는 구글 플레이를 대신할 수 있는 통합 ‘앱 마켓’이 핵심일 것이다. 조만간 이런 필자의 가상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모습을 꿈꾸어본다. 혁신은 늘 시장에 정반합의 과정이라고 믿는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