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EMC, 명운을 건 마케팅 전쟁

일반입력 :2012/04/04 22:00    수정: 2012/04/05 08:41

서버의 영혼을 가진 HP와 스토리지의 영혼을 가진 EMC 사이에 전쟁 조짐이 보인다. EMC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캐시 사업에 뛰어들면서 벌어진 일이다. HP도 x86서버에 SSD 캐시 기술을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표면적으론 HP와 EMC의 단순한 마케팅 싸움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면엔 두 회사의 명운을 건 전쟁이 용암처럼 흐른다.

■데이터 I/O 병목과 SSD

HP는 지난달 지능화를 앞세운 x86서버 프로라이언트 G8 제품을 내놨다. G8은 스토리지 컨트롤러인 스마트어레이의 지원범위에 SSD를 추가했고, 스마트캐싱과 데이터 워크로드 액셀러레이션 등의 기능이 투입됐다.

이를 이용하면 빈번한 IO를 일으키는 데이터를 스토리지로 보내지 않고 SSD에 임시로 담아두도록 한다. RAID 자동화를 통해 워크로드의 병목으로 특정 디스크가 멈춰버리면 복제본으로 빠르게 대체함으로써 성능저하방지와 성능개선 모두를 달성했다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EMC는 지난 2월 서버용 플래시카드인 'VF캐시'를 출시했다. VF캐시는 EMC 스토리지의 데이터계층화 솔루션 ‘FAST’를 사용해 빈번한 IO를 발생시키는 데이터를 임시저장한다. 사용빈도가 줄어든 데이터는 자동으로 사라진다.

두 회사가 내놓은 솔루션의 기본적인 배경은 동일하다. 자주 사용하는 데이터를 스토리지 영역으로 넘기지 않고 서버에 남겨 애플리케이션 처리 속도를 높이자는 것이다. 이를 커버하는 수단으로 SSD를 사용하는 것도 비슷하다.

■HP, EMC 침투에 방어와 역공을 동시에

HP는 회사 블로그를 통해 스마트어레이의 개선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프로라이언트 G8의 새로운 스마트어레이는 6G 임베디드 SAS 컨트롤러를 사용해 전보다 6배의 성능을 향상시켰다. SAS SSD와 G6, G7에서 지원했던 15k SAS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와 비교하면 60배의 성능을 향상시킨다는 점도 강조된다.

HP는 시스템 성능 병목의 첫번째 요인으로 스토리지를 지목했다. 블로그는 “스토리지의 급진적인 재설계는 컴퓨트와 스토리지를 통합하고, 민감한 데이터를 보호하면서 스토리지 워크로드 수요에 최적화된 올인원 플랫폼을 딜리버리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스토리지에서 사용되는 스마트 데이터 서비스 SW를 서버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할 것이라고 HP는 밝히고 있다.

HP는 다이내믹 워크로드 액셀러레이션이란 기술을 통해 빈번하게 사용되는 데이터를 캐시에 뒀다가, 이용빈도가 줄어들면 디스크로 보내는 작업을 수행한다.

HP의 궁극적인 목표는 서버의 플래시캐시와 내외장 스토리지 어레이의 통합이다. 캐싱 알고리즘을 가진 소프트웨어로 서버와 스토리지의 데이터 관리를 통합하는 것이다. 외장스토리지와 서버의 디스크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계층화를 지원해 효율적인 운영을 실현하겠다는 의중을 엿볼 수 있다.

블로그에서 HP는 스마트 데이터 서비스와 G8 스토리지 제품을 언급한다. HP의 백엔드 스토리지와 서버의 결합으로 워크로드 속도를 높이고 통합된 스마트 분석과 워크로드 인지 인텔리전스로 데이터를 보호한다는 설명이다.

블로그는 “HP의 유니크한 기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버플랫폼에 지능을 분배한다”며 “스토리지 시스템이 워크로드를 확인하고 시스템 전체의 성능을 최적화하는데, 이 수용범위는 스토리지, 메모리, 네트워크 시스템 전체 성능최적화다”라고 언급했다.

HP는 한발 더 나간다. 블로그 말미엔 스마트어레이는 스마트 데이터 서비스란 SW와 함께 SSD 수명감소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로컬 및 외장 스토리지의 성능을 최적화하는 미래의 SSD 가속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HP가 서버에 플래시캐시를 사용하는 티어0 스토리지를 만들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서버의 SSD 캐시에서 스토리지의 SSD, SAS, SATA로 이어지는 4계층 스토리지 시스템을 그릴 수 있다.

이는 명백히 EMC가 발표한 VF캐시의 사상과 동일하다. 현재로선 HP는 VF캐시와 동일한 제품은 내놓지 않은 상태로 다음 세대 제품에서 실현될 것을 약속한다. 즉 서버의 캐시와 외장 스토리지의 계층화 솔루션을 결합하는 방안이 HP에겐 현재 없다.

HP의 스토리지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스토리지와 서버 전부를 HP로 꾸며야 한다는 의미다. 3PAR나 레프트핸드 P4000 시리즈 같은 HP 자체 스토리지 제품의 판매증가를 노린다고 볼 수 있다.

VF캐시를 앞세운 EMC의 서버영역 침투를 막아내면서 동시에 EMC의 텃밭인 스토리지 영토까지 넘보겠다는 게 HP의 계산인 것이다. 실패할 경우 EMC의 스토리지 시장 공략은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

■EMC VF캐시, 임무는 ‘서버침투-입지 강화’

EMC의 VF캐시도 성격이 유사하다. VF캐시도 EMC FAST솔루션을 사용해야 하는 만큼 플래시카드와 외장 스토리지 모두 EMC의 것이어야 한다. EMC의 VF캐시가 서버를 지배한다기보다 지렛대 역할을 하면서 기존 외장 스토리지시장을 공고히 다지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VF캐시는 EMC의 새로운 먹거리이면서 동시에 스토리지 시장 장악력을 공고히 하는 수단인 셈이다.

EMC와 HP의 대결은 단순히 마케팅 전략의 격돌차원을 넘어 향후 사업의 영속을 좌우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만약 HP가 SSD캐시 기술과 스토리지의 결합 작업에 실패하거나 시기를 놓칠 경우 EMC와의 스토리지 시장 경쟁에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기 어렵다.

EMC 역시 HP에게 자리를 내줄 경우, VF캐시 사업의 실패뿐 아니라 스토리지 사업 전반의 영토를 빼앗기게 된다. 더구나 HP 외에 IBM, 델 역시 SSD와 캐시 기술의 결합을 준비중인 상태에서 EMC가 서버업체로부터 받을 역공은 상상 이상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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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HP의 하드웨어 사업을 지휘하는 인물은 EMC 출신의 데이브 도나텔리 부사장이란 점이다. EMC의 VF캐시 사업은 인텔 출신의 펫 겔싱어 부사장의 작품이다. 둘 다 친정을 공격하고 있다. HP의 데이브 도나텔리는 EMC의 서버영역 침투를 저지하려 나섰고, EMC 펫 겔싱어는 인텔의 시장을 노리면서 스토리지 시장을 방어한다.

HP는 서버를 갖고 있고 플래시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스토리지 계층화 기술을 서버와 접목시키려 하고 있다. EMC는 플래시를 내놨고 VF캐시와 계층화 기술의 고도화를 진행중이다. 승자는 누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