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열광하는 동안, 이들의 뿌리 격인 아이팟은 대중들의 관심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플이 지난 2년간 이렇다 할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팟은 여전히 잘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판매량 측면에서 MP3플레이어 제품 중 발군이다. 그러나 시장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든만큼, 아이팟의 성장세도 한 풀 꺾였다. 지난해 10월, 애플이 4분기 실적 발표 때 밝힌 아이팟의 판매량은 총 662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판매가 27% 감소했다.
아이팟이 외형적으로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2010년 9월이 마지막이다. 당시 애플은 크기를 절반으로 줄인 아이팟 나노와 셔플을 공개했다. 터치 역시 아이폰을 따라 잡을 만큼 기능 개선이 이뤄졌다. 그 해 가을의 주인공은 단연 아이팟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아이팟은 아이폰에 영광의 자리를 물려줬다. 소폭의 기능 개선과 가격 인하 외엔 아이팟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애플은 아이폰4S 홍보에 열을 올렸다. 외신들은 일부 아이팟 모델의 단종을 점치기도 했다.
최근 관련 업계에서 가장 많이 나도는 '루머'는 '크기를 줄인 아이패드'나 '크기를 키운 아이폰'이다. 애플 제품은 루머의 양에 인기도 비례해왔다. 그러나 최근 떠도는 소문 어디에도 아이팟의 존재감을 찾긴 힘들다. 용도는 아이폰에, 인기는 아이패드에 밀려 아이팟은 지금 '정체성'의 위기를 맞은 셈이다.
■힌트는 '아이팟 나노'에 있다
수익성이 낮아졌다고 해서 과연 애플이 아이팟을 버릴까?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아이팟은 지금의 애플을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이팟만한 물건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아이튠스와 연계한 음원 생태계는 아직까지 아이팟이 중심이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애플은 아이팟을 어떻게 바라볼까. 힌트는 '아이팟 나노'에 있다. 잡스가 크기를 반토막으로 줄인, 시계 모양의 '나노'를 들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 디자인의 깜찍함에, 그리고 그 작은 창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기능에 감탄했다.
그런데, 애플은 단순히 디자인을 달리 하려고 나노의 크기를 확 줄였을까? 결론은 '아니오'다. 그 시점은 이미 아이폰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MP3플레이어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한 때다. 애플은 아이팟은 여전히 잘 나가라고 주장했지만, 매출 곡선은 이미 둔화세를 보이고 있었다.나노는 화면 크기를 줄인 제품이 아니라, 그 용도를 달리한 제품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부담스러워 터치를, 운동할 때 가볍게 들으려 셔플을, 대용량 파일을 담아 다니려 클래식을 산다. 그런데 나노는? 구매자들이 굳이 '나노'를 사야할 동기가 없다는 게 애플의 숙제였다.
그러나 지난 2010년 9월, 애플이 새 아이팟 제품군을 발표했을 때 가장 큰 호응을 얻은 제품은 외관이 확 달라진 '아이팟 나노'였다. 애플은 긴 막대기 모양의 나노를 절반으로 뚝 잘라 버렸다. 줄만 달면 마치 '손목시계'처럼 쓸 수 있게 만든 대대적인 성형이었다.
애플은 디지털 시계에서 나노의 전환점을 찾았다. 나노는 전자 시계만한 크기에 터치 디스플레이를 채택하는 영리함을 보였다. 아이폰으로 전송한 사진을 화면에 표출시킬 수 있어, 손목 위의 액자 기능도 한다. 터치나 셔플과는 확실히 다른 정체성이다.
■차세대 아이팟, 어떻게 달라질까?
아이팟은 그간 두 가지 방향으로 걸어왔다. 아이팟 나노처럼 화끈하게 변신해서 독자적인 길을 가던지, 아니면 끊임없이 아이폰과 닮아갔다. 아이팟 터치는 이미 전화 기능을 제외한 모든 기능이 아이폰과 같다.
문제는 바로 끊임없이 스마트폰과 닮아가는 '아이팟 터치'다. 올해 애플이 아이팟 제품군에 대대적인 혁신을 부여한다면 '터치'가 그 대상이 될 확률이 크다.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지만, 그만큼 빠르게 스마트폰에 의해 대체되는 제품이라서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크기가 커진 아이폰이나 작아진 아이패드보다는 아이팟의 외형이 달라질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는 그 용도가 거의 확실해졌기 때문에 애플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지만 아이팟은 그 반대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애플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아이팟의 화면이 5~6인치로 커진다면 콘솔 게임 시장을 정면으로 노려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또 애플은 그간 용도에 따라 신제품을 선보였지, 단순히 경쟁업체들에 대항하기 위해 화면 크기별 제품을 내놓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이팟이 게임 전용 단말기, 또는 전자책 전용 단말기가 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단말기 특성상, 통화 기능이 빠진 탓에 배터리가 오래 간다는 점, 모바일 게임과 전자책 콘텐츠 확보에 그간 애플이 열성을 보여 왔다는 점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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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이 5~6인치로 커지며 가정용 게임기나 단말기로 자리매김하면, 연내 출시 가능성이 제기되는 완제품 애플TV와 연계될 가능성도 있다. 애플로선, 다 죽어가는 터치를 가정내 단말기 허브로 재탄생 시키는 셈이다.
무엇보다 특화된 시장을 겨냥해 정체성을 확보하면서, 마니아층을 확보하는 것은 애플이 그간 잘해온 전략이다. 무엇이 되든, 올 가을 애플이 아이팟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하는 것도 IT 트렌드를 읽는데 재밌는 관전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