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통계 조사를 본 적이 있다.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직장인들은 본인의 상사가 ‘백마 탄 왕자’이길 기대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라는 것이다. 즉 상사는 여러 측면에서 완벽해야 하고 무슨 일이든 잘 처리할 수 있기를 막연히 기대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기대는 기업 측면에서나 개인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리더가 늘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경영 전략적인 측면에서 기업의 참모나 Think Tank를 활용해서 경영자나 리더들이 어느 정도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분야이자 남다른 통찰력과 이해력이 필요한 사용자경험(UX) 분야에서는 아직 많은 수의 리더들이 따라가기 힘들어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민을 터놓고 얘기하기도 쉽지 않으며 좋은 조언이나 교육을 받기도 참 어려운 게 리더들의 삶일 것이다.
그럼 이런 심각한 고민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책임은 막중하고 시간은 많지 않은 이 시대의 리더들에게 짧은 글로나마 도움을 드리려 한다.
■꼭 지켜야 하는 UX 목표(사용자의 입장에서 기대하는 UX 요소의 특징과 요건)를 조직 내에 공유하고 개발의 우선순위를 두자.
무언가를 만들 때에 꼭 지켜야 하는 UX상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조직 내에 확실한 인식 및 공유가 되지 않아서 개발 우선순위에서 늘 밀리는 처지라면, 좋은 UX의 최종 결과물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다.
리더라면 본인의 조직에서 만들고자 하는 경험재(경험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가 최소한 가져야 하는 UX의 목표를 조직 구성원들과 같이 설정하고 공유해야 한다. 이 목표에 대한 확신과 목표 수립, 사내 조직원의 설득 과정은 리더가 가장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최우선 업무 리스트이다. 스티브 잡스도 그가 추구하는 UX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타성에 젖어있던 조직원의 반대를 무릎 쓰고 시행착오와 실패를 넘었다. 그 결과물들이 현재 우리가 사랑하는 보석 같은 경험재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사용자의 핵심적인 니즈(수요)를 중심으로 한 UX 목표가 사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려면 UX 총괄이사(최근에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충원이 이루어지고 있음)도 중요하지만, CTO나 COO 등 제품(서비스)의 실제 생산과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의사결정권자들이 UX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업무에 늘 UX를 높은 우선순위로 고려해야 한다.
UX 목표가 자사의 제품, 서비스에 어느 정도 중요한지 아직 감이 부족하다면 CEO는 CTO, COO 등과 자사 경험재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의 실제 모습을 현장에서든, 사내의 사용자 관찰 실험실(Observation Room, 사용자 리서치 시설의 관찰 공간)에서든 오랜 시간 사용 행태를 관찰해 볼 것을 권유한다.
그러면 기존의 리서치 리포트들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사용자의 경험이나 UX 목표 설정의 중요성이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Focus on people–their lives, their work, their dreams’이라는 UX 철학을 가지고 있는 구글도 초기엔 UX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임원, 개발자들이 UX 조직장들과 함께 관찰실에서 사용자의 행태를 관찰하고 실수와 어려움들을 직면하며 비로소 UX의 중요성을 체험하고 깨달았음을 기억하도록 하자.
■새로 만드는 초기 단계의 프로토타입을 사용자의 목표, 감정과 시나리오를 대입하며 직접 써 보자. 본인의 주관을 말하기 전에 그리고 주변의 UX 전문가들과 이야기하자.
요즘은 제품 위주의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UX를 제공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에 단시간에 여러 명이 동시에 편안하지 않은 장소에서 제품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품평회의 형태로는 좋은 UX를 평가하기 어렵다.
경쟁사와 주변의 다른 경험들을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체험을 해보며 생각나는 점들을 정리하고, 같이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조언자를 늘 옆에 두는 것이 좋다. 이 경우, 자사가 개발중인 제품이나 서비스의 초기단계 프로토타입(종이나 스케치 형식)을 가지고 자사 경험재의 핵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용자의 체험 과정이 과연 Best인지 진지하게 탐구해 보도록 하라.
이렇게 사전비평(Early Critique)하는 자리를 자주 갖고, 초기 단계에 불필요한 아이디어나 기능을 잘 버리고 핵심 UX 요소를 집중적으로 개선할수록 UX의 성공 확률은 높아진다. 혹 본인이 UX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본인이 억지로 의견을 개진하려고 하지 말고 가장 믿을 만한 UX 전문가에게 이 과정을 일임하자. 그리고 경청하자.
앞서 언급한 관찰과 경청 과정을 통해 본인의 UX에 관한 통찰력을 끊임없이 높이려는 노력을 하자. 본인이 리더라서 UX에 관한 모든 요소를 의사 결정 해야 한다는 성급한 강박관념은 버리고, 본인의 UX 내공과 통찰력을 학습할 수 있는 관찰과 경청에 집중하자.
■교육, 책과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기본
UX가 기업의 성패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업의 리더라면 UX를 직접 공부 해야 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난감한 리더들을 위해 교육과 책, 자료 찾기를 위한 팁을 몇 가지 제공하고자 한다.
최근 미주의 유수한 MBA 코스에서는 UX의 철학과 접근법을 가르치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라 베크만(Haas School of Business, UC Berkeley)이나 로저 마틴(Rotman School of Management, U of Toronto)과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그외 다수의 과정 리스트: http://boards.core77.com/viewtopic.php?t=21895)
학위 과정이 다소 부담스럽다면 가볍게 1주일만 투자하여 교육을 다녀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주일의 시간이 있다면 CEO나 기업의 리더가 직접 워크샵 형태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UX를 만들어 보는 과정을 체험하는 것을 가장 추천한다. Cooper나 HFI(Human Factors International), Adaptive Path 등에서 이러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본인의 나이가 너무 많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미국에선 오히려 기업의 리더나 부문장들이 UX를 배우는데 시간 투자를 많이 하고 워크샵 형태의 교육 현장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편이다.
더 시간이 없어 책을 위주로 참고하고 싶다면 Change by Design(역서: 디자인에 집중하라, 팀 브라운저), Subject to Change(역서: 사용자 경험에 미쳐라, Adaptive Path의 컨설턴트 3인저),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보는 UX 디자인(배성환, 김동환, 이지현 공저) 등을 추천한다. UX가 왜 중요한지 어떤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잘 풀어주고 있는 가벼운 책들이다.
그 밖에 우수한 연구 결과와 UX 성공 사례들을 접할 수 있는 리포트로는 앞서 언급한 사라 베크만이 참여한 Leveraging Business Value: How ROI Changes User Experience (http://www.adaptivepath.com/uploads/documents/apr-005_businessvalue.pdf)가 있다. 포레스터 리서치의 리포트들도 UX에 관한 좋은 컬럼, 사례 연구, 방법론과 프로세스에 관한 글들을 다룬다.(http://www.forrester.com/rb/search/results.jsp?N=0&Ntk=MainSearch&Ntx=mode+MatchAllPartial&s=1&Ntt=user+experience)
그 밖에, UX를 다루는 온라인 공간은 참 많은데 최근의 정보와 컬럼들을 보고 싶다면, 마크 허스트의 컬럼(http://goodexperience.com/resources/), 제이콥 닐슨의 Alert Box(http://www.useit.com/alertbox/), Putting People First에 담긴 Daily Insight (http://www.experientia.com/blog/)도 자주 시간 내서 공부할 것을 추천한다.
■외부 컨설턴트, 외주 업체와 협업(Cowork) 하는 방법
좋은 UX를 경험하기 위해 해외 유명 컨설턴트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거나 외부의 전문가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며 UX를 수행하고자 하는 기업들도 발견할 수 있다. 이 경우 대다수의 기업들은 프로젝트도 실패하고 UX의 조직화에도 실패하곤 한다. 예산만 낭비하고 UX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남긴 채 새로운 UX에 대한 시도를 더 이상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 편이다.
UX를 새롭게 도입하고자 하는 기업의 리더는 우선 사내에 UX를 책임지고 완수할 수 있는 내부 책임자와 팀(경력이 많은 전문가 위주로 팀을 구성하고,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책임 인력 찾기에 공을 들이자!)을 우선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이 내부 팀에서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담당해 베스트 프랙티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 회사의 UX 조직화의 첫걸음이 돼야 한다.
이 내부 팀은 사내의 개발 프로세스에 영향력이 있어 반드시 UX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야 하며, 프로젝트의 특성상 외부 컨설턴트를 고용한다고 하더라도 내부 팀과의 긴밀한 협력 작업이 전제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경험을 주는 제품·서비스를 끊임없이 접하고 통찰하라.
스티브 잡스는 원래부터 완성도 높고 우아한 경험에 통찰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포드 모델 T에서 비로소 이루어진 대중화 된 자동차란 경험(고객의 자동차 유지보수 경험과 기업의 생산관리 시스템 차원의 경험)의 패러다임 시프트에 감명받았으며, 제록스 PARC 연구소의 마우스와 WISIWIG(What You See is What You Get) 연구 성과를 탄복하며 보면서 응용 방법을 고민했다.
또 GAP 스토어의 단일화되고 훌륭한 소매점 경험을 참고해고, 대학의 미학과 타이포그래피 관련 과목을 들으며 우아한 디자인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티파니 악세사리의 높은 완성도와 매끈한 마감에 감동하며 컴퓨터가 지향해야 할 제품 디자인의 방향성을 깨달았으며, 일본 전기밥솥의 구조와 기능을 고찰하며 컴퓨터 전원 기계장치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원래부터 창의력이나 통찰력이 있었던 것 아니고 이러한 학습들이 점점 쌓이면서 점차 컴퓨터, 미디어가 지향해야 할 멋진 경험에 대한 통찰력이 생긴 것이다. 즉 좋은 UX를 고민한다면 평소에 좋은 경험을 주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고 자신만의 체험 여행을 시시때때로 즐겨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여행은 매우 짧게 자기의 방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시내의 고급 백화점, 편집매장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새로운 경험을 주는 장소로의 여행 등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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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야기한 조언들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UX를 쉽게 마스터할 수 있는 꼼수나 지름길은 없어 보인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UX가 중요한 이 시대에 리더는 이제 더 이상 막연한 감이나 얕은 수준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UX에 대한 의사결정 강박관념도 버려야 한다.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UX를 직접 느끼고 사용자,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학습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조직, 내외부 조언자, 업무 프로세스를 비롯한 업무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긴 안목을 가지고 꾸준히 UX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하고 체험하며 주변의 전문가들과 터놓고 교류하며 지속적으로 통찰력을 키우는 방법만이 이 시대 리더들의 UX 지침 No.1이 될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