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내놓은 자체 전자책 플랫폼 '아이북스' 두번째 버전엔 IT기술 도입에 적극적인 교육시장을 팔걷고 공략하겠다는 의지가 실렸다. 지난주 애플이 콘텐츠 원작자와 전자책 출판사들이 끌릴만한 디지털 교과서 편집도구와 온라인 교육콘텐츠 유통시스템을 선보인 사실은 이같은 뜻을 분명히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최근 미국 지디넷 블로거 에드 보트는 지난주 선보인 아이북스2.0을 통해 의도적으로 그 표준에 족쇄를 채웠다고 비판하며 만일 당신이 전자책을 읽거나, 쓰거나, 출판하는 입장이라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애플의 아이북스 관련 저작권 정책과 전자책 콘텐츠 표준 형식에 대한 태도를 문제로 지적했다. 애플이 지난 2년간 열렬히 후원해온 'e펍(epub)' 표준을 미끼로 디지털북 저자와 출판사들에 구애 작전을 펼쳐왔지만 현재 드러난 방향으로 짐작건대 '독이 든 사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애플의 '사악한' 아이북스 정책
우선 그는 전자책 편집도구 '아이북스 아서(iBooks Author)'를 사용시 동의하게 될 '최종사용자라이선스계약(EULA)'을 문제삼는다.
애플 EULA의 '사악함'은 2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아이북스 아서를 통해 만든 전자책 콘텐츠를 아이북스가 아닌 다른 시장으로 판매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등록한 작품의 판매를 마음대로 금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트는 애플 EULA는 통상적으로 자사 북스토어에 접근하는 것과 그 콘텐츠를 안내하는 권리에 대한 내용이라며 만일 그들이 이 정책을 그대로 집행한다면 나도 물론 해당 결정을 지지하겠지만 실제론 그럴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글을 쓰고 책을 파는 나같은 사람이 (콘텐츠를 판매할) 여러 시장에 접근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그게 금지돼 있고 EULA 본문은 '저자가 애플에 상업용 콘텐츠를 등록시 그에 상응하는 자격을 갖춰야하고 애플은 어떤 이유 또는 독자적 판단에 따라 선택한 콘텐츠를 배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써있다고 지적했다.
보트는 만일 당신이 만든 파워포인트 자료를 갖고 발표할 할 때 MS가 30%씩 수수료를 떼어 간다고 생각해 보라며 그 발상의 황당함을 꼬집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MS가 오피스 워드 프로그램으로 만든 문서를 배포하는 권한이나 어도비가 포토샵으로 편집한 JPEG 사진 이미지를 판매하는 권한까지 제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례가 없는 희한한 발상'이라는 게 외신 평가다.
그는 또 최악의 시나리오는 당신이 카피당 5달러, 10달러값을 할만한 끝내주는 작품을 만들고 이를 아이북스 아서로 제작해 애플에 제출했는데, 이를 (흔한 앱스토어 사례처럼,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거부당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경우 저작자는 EULA규정상 해당 결과물을 아이북스에 팔지 못할뿐 아니라 다른 전자책 플랫폼 시장에도 올리지 못하게 된다. 빈틈이 없는 애플은 해당 결과물을 만들기까지 투입된 노력에 대해 보상해야 할 어떤 의무도 없음을 EULA에 명시해 뒀다.
이런 애플 라이선스는 통상적인 소프트웨어 저작권 개념을 넘어서고 있어 향후 업계 논란이 예상된다. 콘텐츠 저작도구 아이북스 아서에 대한 사용권뿐 아니라 그 결과물에 대한 권리까지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e펍 지원 자랑하더니…비표준 강화
애플을 경계하게 되는 또다른 이유는 전자책 콘텐츠를 담아내기 위한 산업표준 파일형식 e펍에 대한 애플의 태도 때문이다. e펍 표준은 국제디지털출판포럼(IDPF)이 주도해왔고 애플은 그 회원사 가운데 하나다.
최근 애플은 아이북스2.0을 공개하며 e펍 형식에 CSS 확장 기능을 추가했다. CSS는 HTML 언어로 작성되는 웹문서에 글꼴, 이미지와 단락 배치, 배색과 시각 효과 등을 입히는 디자인용 언어다. 문제는 애플이 지원하는 e펍 CSS 기능이 월드와이드웹컨소시엄(W3C)에서 제정하는 웹표준을 벗어난다는 점이다.
보트는 아이북스2.0 형식의 CSS 기술은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애플 XML 네임스페이스를 사용한다며 자문을 구한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개방형 표준을 의도적으로 깨뜨리는 시도로 읽힌다고 썼다.
실제로 애플은 아이북스 환경에서 다루는 콘텐츠 파일 형식에 '산업 표준'을 중시하지 않으면서 기존보다 한층 모호한 설명을 제시한다.
보트는 애플은 '업계를 주도하는 e펍 디지털북 파일 형식을 지원'한다고 과장할 정도로 표준 지원을 자랑스레 여기고 있다며 아이튠스 내부 설명을 보면 '아이북스 앱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개방형 전자책 형식 e펍을 사용한다'고도 돼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지난해말 최종 갱신된 아이북스 질의응답(FAQ) 내용을 보면 아이북스는 e펍 파일 형식을 사용한다고 써 있다. 수정 전인 지난해 4월 아이북스는 오직 e펍 형식으로 출판된 전자책만 사용한다는 문구보다 훨씬 모호하다는 평가다. 이전까지 애플은 업계 표준인 e펍 포맷을 지원한다며 출판업체와 콘텐츠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아이북스 e펍, 전자책 시장의 액티브X 되나?
최근까지 애플은 아이북스와 관련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통해 향후 디지털콘텐츠와 전자책 시장 흐름에 비상한 업계 관심을 끌어모았다. 애플이 교육용 콘텐츠 제작, 배포, 활용이라는 디지털교육 시장을 선점하고 생태계를 틀어쥘 포석을 보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23일 주요 외신들은 시장조사업체 에쿼티즈리서치의 자료를 인용, 애플 제품 사용자들이 iOS용 아이북스2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공개 사흘만에 35만건 내려받았으며 맥 운용체계(OS)에서만 돌아가는 전자책 편집도구 '아이북스 아서(Author)'도 9만건을 받아갔다고 전했다.
당시 애플은 이 제품들을 무료로 내놓고 온라인 교육서비스 '아이튠스U' 전용 앱도 맥과 iOS용으로 공개했다. 아이튠스U는 온라인으로 26개국 교육기관 800여곳의 강의를 디지털콘텐츠로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아이튠스 일부 기능으로 제공되던 서비스를 개별 앱으로 끌어낸 배경은 그만큼 사용자 기반들 다지고 콘텐츠를 강화할 의지를 높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런 애플의 노력들은 회사가 앞서 2년간 공들인 디지털콘텐츠 표준과 어울릴 수 없다는 게 블로거 에드 보트의 분석이다. 그는 애플의 움직임을 두고 과거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독점시장을 구축할 때 취한 '포용, 확장, 소멸' 전략이 연상된다고 평했다.
포용, 확장, 소멸 전략은 우선 널리 쓰이는 표준을 지원하는 분야에 제품을 선보이고 그 표준에 기반해 확장된 자체 기술 역량을 갖춰나간 뒤 해당 이점을 이용해 해당 특성을 지원하지 못하는 경쟁자들과 차별화시켜 시장 우위를 확보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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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는 어떤 기업이 새로 진입하려는 시장에 지렛대로 작용할만한 다른 시장에 지배력을 갖고 있다면 이 전략은 더욱 효과적이라며 지난 1990년대 (PC플랫폼 시장에서의) 윈도, 2012년 현재 (태블릿 단말 시장에서의) 아이패드를 생각해 보라고 예를 들었다.
애플이 태블릿 단말기 시장의 영향력을 이용해 전자책 플랫폼 시장을 쥐고 흔들게 되리라는 우려다. 이미 유용한 전자책 단말기로 인식되는 태블릿 시장의 선두주자 애플이 전자책 등 디지털콘텐츠 기반 기술과 시장을 접수하도록 놔둘 경우 현재 관련 기술 표준화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 노력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