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대표 목소리 성승헌 "나는 캐스터다"

일반입력 :2012/01/06 12:30    수정: 2012/01/06 18:19

김동현

성승헌 캐스터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눈 건 재작년 온게임넷에서 진행했던 ‘투혼 2010 스트리트 파이터4’ 녹화 방송에서였다. 기자라는 입장보다는 중계와 해설로 만나게 된 것이다.

8주간 진행된 방송 이후 제대로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이 이번 인터뷰였다. 물론 휴대전화를 통한 연락이나 페이스북 등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활용해 간간히 인연을 이어왔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그 동안요? 여러 방송의 중계와 게임 방송, 각종 e스포츠 중계 등으로 매우 바빴습니다. 요즘에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것 같아요. 그래도 새해에는 지금보다 더 바빠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요.(웃음)”

e스포츠 대회가 자주 열리는 용산에서 만난 성승헌 캐스터는 오전 일찍부터 있었던 스케줄을 소화한 후 인터뷰에 응했다. 다소 피곤한 기색이 보였지만 인터뷰를 시작하자 ‘입담’ 본능이 되살아났다.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그와의 대화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캐스터의 시작 “원래는 PD 하려고 했는데…”

나름 알고 지내는 인연이었지만 사실 기자는 성승헌 캐스터의 시작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러나 보니 인터뷰의 시작도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이 돼버렸다.

“원래 캐스터가 아니라 PD 지망이었어요. 캐스터는 순전히 우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유명했던 iTV 채널에 계셨던 이영수 PD님이 한 번 (중계를)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신 것이 시작이었죠. 지금 생각하시면 정말 과감한 결정이었어요.”

성승헌 캐스터는 2002년 iTV 채널을 통해 방송에 입문했다. 그러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중계했던 방송은 ‘iTV 게임 스페셜 명승부 베스트’였는데 지식도 부족했고 진행자로서의 역할도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욤 패트리 선수를 비롯해 3명이 함께 진행했는데 리드도 전혀 안됐고 중계 역시 깔끔하지 못했어요. 특히 우리말이 서툰 기욤 선수와는 호흡은 엉망이었죠. 방송이 모두 끝난 후에 후회를 많이 했어요. 잘한다고 생각만 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는 당시 진행에 대해 “사명감이 너무 부족했다”라고 말했다. 캐스터에 대한 사명감이 있었다면 진행부터 여러 부분에서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는 것. 이 일은 PD를 꿈꾸던 성승헌을 캐스터의 길로 완전히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

“정말 제 이름을 걸고 나간 첫 중계가 ‘스타크래프트 여성리그’였어요. 결승전이 특히 인상에 많이 남았어요. 그 동대문 한 가운데 바람 많이 불 때 해서.(웃음) 방송이 딱 끝나니깐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때부터 중계에 대한 욕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온게임넷 데뷔…만담성캐의 탄생

성승헌 캐스터는 이후 ‘게임플러스’를 통해 온게임넷에서 활동하게 된다. 게임플러스 진행과 WCG 중계 등을 거치면서 조금씩 입담을 과시하기 시작했고 ‘서든어택 마스터리그’에서 절정에 다다른 중계를 과시, 캐스터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게임플러스 당시까지만 해도 사실 저한테 자신이 없었어요. WCG 중계를 하면서 조금씩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고 서든어택 리그에서 캐릭터를 확고히 잡았죠. 감정을 조절하면서도 게임의 분위기를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처음 받았어요. 기분 좋았습니다.”

그는 e스포츠 중계가 다른 스포츠와 비교할 수 없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진행 과정에서 자유로움이 녹아 있는 e스포츠는 딱딱하거나 정교할 수밖에 없는 다른 중계와 달리 감정 전달이 리그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2년쯤 되니깐 적응돼 일이 어렵지 않았어요. 살짝 건방진 시기이기도 했죠.(웃음) 그때 우연히 저와 다른 캐스터를 비교해 놓은 글을 봤습니다. 그 글의 핵심은 ‘실수하지 않으려고 딱딱하게 말하는 점과 제비처럼 생긴 외모 때문에 정이 안 간다’였습니다.”

이 말은 성승헌 캐스터에게 상당히 충격이었다. 물론 제비 같다는 것보다 딱딱하게 말하는 점 때문이다. 어떤 상황을 그냥 틀리지 않고 전달하는 것보다 잘 살려서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너무 정석을 따라간 캐스터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든어택 리그는 그런 제 이미지를 깨는 계기가 됐죠. 온상민 해설과 함께 하면서 죽이 잘 맞은 것도 있고 e스포츠가 가진 특유의 자유로움과 실수도 재미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습니다. 더 욕심을 내는 계기도 됐죠.”

■UFC 중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언제나 즐겁다”

이후에 이종격투기의 메이저리그로 불리는 UFC의 한 리얼리티 방송에 내레이션으로 참가하면서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도 시작됐다. 이 영상은 UFC 현지화의 좋은 표본으로 대나 화이트 회장이 직접 칭찬을 했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격투기 중계도 우연한 계기로 접근하게 됐지만 할수록 욕심이 나는 영역이었습니다. UFC 중계는 게임 쪽 못지않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죠. 이를 통해 저는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도전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방송이죠.”

성승헌 캐스터의 도전은 e스포츠 중계나 진행을 넘어 격투 스포츠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이어졌다. 최근 ‘코리안 좀비’로 유명한 정창성 선수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김동현 선수로 큰 주목을 사고 있는 UFC 방송 중계에서 그의 입담은 계속되고 있다.

“UFC 처럼 완전히 새로운 것을 하고 싶습니다. 비주류 스포츠나 익스트림 스포츠 그런 것 말이에요. 최근에 한 영상을 봤는데 익스트림 줄타기(슬랙라인)이었나? 이것도 중계를 해보고 싶어졌어요. 온게임넷에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웃음)”

성승헌 캐스터가 색다른 중계를 원하는 이유 중 인상 깊은 내용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몫이 커지는 중계가 하고 싶다는 것. 성승헌 캐스터가 말한 용어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런 적극적인 중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도식 테이크다운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요. 페이스북에서 한 이용자분과 이에 대해 장문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용어 전달에 대한 만족과 좀 더 세분화된 용어를 사용해서 시청자들에게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것이었죠.”

이처럼 적극성을 살린 그의 생각은 이해를 높이는 중계로 연결되고 있다. 국내에서 생소한 격투 스포츠 UFC를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게 만들어준 점이나 중계가 복잡한 게임들도 성승헌 캐스터의 입을 거치면 어느 새 대중성을 띄게 된다.

■아나운서보다는 ‘나는 캐스터다!’

“캐스터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죠. 아나운서로 불리는 것보다 저는 캐스터 성승헌으로 불리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매번 방송에 임할 때 캐스터로 시청자들에게 목소리를 전달하겠다고 생각하죠. 그 생각의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에게 캐스터라는 직업을 지망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성승헌 캐스터가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이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현재 상황을 목소리 하나만으로 전달해야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과 기본이 매우 중요해요. 캐스터가 보여주는 측면이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뒤에서는 정말 피나는 노력이 수반 되어야 해요.” 성승헌 캐스터는 캐스터라는 직업에 기본이 갖춰지지 않으면 막상 기회가 와도 할 수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개그맨들이 단순히 웃긴 외모 때문에 개그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 번의 기회에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엄청난 회의와 노력을 하는 것과 캐스터 역시 동일하다는 것이다.

“캐스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으로 방송에 대한 소양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나쁜 버릇이 들기 전에 전문가들이나 방송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조언을 통해 자신을 발전 시켜나가야 합니다. 목소리가 좋고 외모가 준수하다는 것은 다음 이야기이에요.”

개인방송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특정 채널을 통해 개인 또는 여러 명이 함께 방송을 진행하는 것 중 주변의 반응에 취해 도를 넘어서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 특히 자신들이 웬만한 캐스터나 아나운서보다 실력이 좋다고 거들먹거리는 점은 안타깝다고.

“야구 선수가 스윙 연습을 할 때 정확한 자세를 배우잖아요. 이것과 캐스터도 비슷합니다. 정확한 자세에서 배우기 시작해야 도움이 되는 것이지 잘못된 자세에서 몇 만 번 스윙하는 건 도움이 안 됩니다. 몸만 망가져요. 캐스터도 확실히 기본을 배우고 시작해야 합니다.”

기자가 여성 캐스터들의 지원이 많은가라는 질문을 하자 아니라도 고개를 저었다. 현재 온게임넷에 전문 캐스터 중에는 여성도 있지만 대부분이 남자라는 것. 진행이나 보조 진행 등으로 많은 여성 아나운서나 캐스터가 거쳐 가지만 긴 수명을 가진 인물은 없었다고.

“게임 쪽은 여성 캐스터에 대한 니즈가 확실히 있죠. 다만 자신의 색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욕심은 있지만 기존 캐스터의 답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단순히 소리만 지른다고 되는 것은 아니죠.”

성승헌 캐스터는 부쩍 가치가 높아진 프로야구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리를 잡기 어려웠던 여성 아나운서가 지금은 프로야구 방송의 꽃이 됐다는 것. 게임 쪽도 이런 여성 캐스터가 나온다면 더욱 분위기를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e스포츠의 발전 위해 지금보다 즐기는 방향을 추구해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요? 음.. 중계를 가볍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요즘에는 도를 넘은 어긋난 팬심 때문에 e스포츠 리그의 벽이 높아지는 것이 느껴져요. 마니아들 스스로가 벽을 너무 많이 만들어요”

성승헌 캐스터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인터뷰에 참가하는 대부분은 “잘 부탁드린다” 또는 “많은 관심 감사드린다“ 등의 말을 하지만 그는 e스포츠를 걱정부터 꺼냈다. 특히 최근 e스포츠의 하락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스포츠에서 겸양은 미덕이지 표준이 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승자가 이긴 후에 멋진 세레모니를 하는 것은 스포츠의 재미잖아요. 이점이 상대편 선수를 비난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못하게 만들면 흥미가 없어져요. 이기려고 한 싸움이면 승자에게 많은 것이 가야죠.”e스포츠가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서는 ‘즐기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성승헌 캐스터는 말했다. 누가 언제부터 봤냐가 아니라 그냥 보면서 재미를 찾는 것, 이것이 e스포츠는 물론 비주류 스포츠 등이 대중화로 연결되는 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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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많은 관심을 사는 e스포츠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노력 할테니 팬 분들도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주셨으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와 인터뷰는 이렇게 끝났다. 성승헌 캐스터는 기자와 악수를 나눈 후 다시 중계를 위해 방송센터로 향했다. 매일 늦은 시간까지 이루어지는 촬영이지만 그는 이 직업 덕분에 힘을 얻고 웃는다고 말했다. 성승헌 캐스터의 입담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