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열풍과 함께 개방과 참여로 요약되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났습니다. 기존 밸류체인이 모두 깨지면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변화를 맞닥뜨린 업체들은 고달파졌죠.”
지난 12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고진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MOIBA) 회장은 유독 ‘위기’라는 말을 자주 꺼냈다. 스마트폰 열풍으로 국내 무선인터넷 환경이 활짝 꽃폈지만 기존 생태계를 구성하던 솔루션 업체들은 오히려 밥그릇이 위태로워졌다.
“콘텐츠와 솔루션 업계는 위기입니다. 스마트 혁명으로 통신사는 마진이 줄었고 솔루션 회사와 콘텐츠 유통 업체는 역할이 사라졌습니다. 플랫폼은 아예 애플이나 구글 같은 거대기업이 장악하면서 경쟁 자체가 힘들어요. 어떻게 위기에서 기회를 찾아야할지 모두가 고민하는 시기입니다.”
그는 지난 9월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회원사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이 때 출범 후 갓 두 돌을 넘긴 연합회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중책을 맡았다.
그동안 무선인터넷 관련 업체들은 거대 통신사 우산 아래서 비교적 배곯을 걱정 없이 지냈다. 하지만 편안한 시절은 잠시, 눈 깜짝할 새 경쟁의 틀이 바뀌었다.
“이통사가 구축한 폐쇄적 울타리인 월드가든은 안전하긴 했지만 수익 배분에 있어 불만스러운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만 찾으면 얼마든지 클 수 있어요. 기존 업체들은 달라진 밸류체인 아래서 자기 역할을 새로 찾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죠. 그렇지 않으면 애플리케이션 개발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는 구호는 쉽다. 하지만 그 말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그 역시도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한 회사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고 회장은 지난 1994년 바로비젼(현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을 설립한 후 비디오 CD용 동영상 압축에 쓰이던 MPEG-1부터 최신 기술로 주목받는 H.265(HEVC)까지 동영상 압축 기술이라는 외길을 걸었다.
“저 역시 부침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동영상을 버렸으면 오히려 덜 까먹었겠죠. 하지만 다시 동영상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방송통신 융합이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뉴미디어의 등장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3D, 초고화질방송(UHD) 등이 모두 줄줄이 기회입니다. 한 번 두각을 나타내면 세계 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비즈니스 모델은 각 회사들이 치열하게 고민해야할 몫이라는 메시지다. 그렇다면 연합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 둘째 번호를 붙여 할 일을 나열하는 모습에 위기의 시대 먹거리를 고심하는 회원사들의 후방지원 역할을 맡겠다는 책임감이 읽혔다.
고 회장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는 건 인력수급이다. 스마트 바람이 불면서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인력들을 많이 데려갔다. 문제는 뽑아가기만 하지 새로운 인력 수급이 어렵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대기업으로 가려는 직원들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때문에 대기업들이 뽑아가는 만큼 일정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인풋(input)을 원활하게 해주면 중소기업은 인력 수급의 파이프라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정부 지원을 받는 방안이나 대기업과 상생협력하는 방안을 연합회 차원에서 협의 중입니다.”
글로벌 진출 지원 사업도 고민 중이다. 수익모델을 찾아 해외로 나가려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필수라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시장이 개방되면서 국내 시장에서는 설 자리가 줄었지만, 이 참에 외국으로 나가겠다는 기업들이 늘었다.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적극적으로 전시회도 나가고 매체에 광고도 해야 합니다. 로컬시장마다 특성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데 중소기업들은 여력이 없죠. 이 부분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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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사들 간 소통을 통해 내부적으로 힘을 결집하는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그동안 이사회나 회장단 멤버 간 폐쇄적으로 이뤄졌던 모임을 개방하고, 이메일을 통한 양방향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내년 하반기 정도면 연합회도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구체적인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단위 협회들을 독려해 모든 회원사를 대상으로 공지사항 전달과 조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많은 의견을 모으기 위해 소통채널도 늘리는 중이예요. 출범 초기 연합회가 먹고 살기 바빴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산하 단위협회나 회원사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에 나서야죠.”